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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Jan 04. 2023

프라이탁과 골든구스, 특이점이 온다

[골든구스]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여러모로 충격을 받았다. 그저 흔한 컨버스 스타일의 운동화를 1년 정도 거칠게 신고 의류 재활용함에 내다 버린 누더기 같은 겉 생김새에 놀라고 가격에 두 번 놀랐으니 말이다.


내 경우 패션 트렌드를 좇는 부류는 아니었다. 오히려 누군가 나와 같은 옷을 입거나 신발을 신기라도 하면 신경이 쓰여 그 자리를 뜰만큼 우~ 몰려 유행하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유행 따위 개나 주고 그저 내 스타일을 고집하는 고인물에 가까웠달까?


스타일이라 봐야 브라운이나 카키, 블랙 계열의 색상에 과하게 집착하고 폴로 스타일의 깔끔, 심플을 추구하는 정도인데, 제3자가 보면 그냥 사십 대 중후반의 아재 스타일일터


"난 가격이나 신었을 때의 불편함 따위 명품 브랜드를 위해서라면 문제없어!" 자기 선언이라도 하는 걸까? 주변의 패션에 관심 좀 있다 싶은 사람들이 죄다 한 켤레씩 사서 신고 다니는 것을 보면, 브랜딩이라는 세계의 무한한 다양성과 의외성에 무릎을 탁 치면서도 '저런 걸 그 돈 주고 사서 신을 바엔...' 이런 생각이 드는 것 또한 내 마음이다. 


골든구스까지야 뭐 그러려니 했는데 또 하나의 물건이 심기를 건드린다. 이번엔 [프라이탁]이다. 이건 뭐 숫제 공장에서나 쓸 법한 비닐 가방에 프라이탁이라는 딱지 하나 붙여서 수십만 원을 받는다. 


뭐 유럽의 디자이너 형제가 5년 묵은 자동차 덮개, 안전베트 따위를 재활용해서 재미 삼아 만들어 본 것이 주위에서 너도 나도 하나씩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는 통에 입소문을 타고 '힙'한 브랜드가 된 케이스다. 해지고 닳고 낡고, 심지어 흠집이 결대로 살아 있어야 진짜라나...


거기에 재활용과 환경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이 붙고 가방이라면 이래야 돼! 라는 정답을 비틀고 보니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컨셉이 됐다.


하긴 변기를 뜯어다 뒤집어 놓고 이것이 예술품이다 하기도 하고, 먹던 통조림캔을 그냥 전시만 해놓아도 그걸 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수억을 호가하는 창의적 작품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니 돈 벌기 참 쉽다 싶으면서도 그 결과물에 이르는 과정을 생각하면 또 엄두가 나지 않는 양가감정이 널뛴다.


심지어 가품 논란도 있다고 하니, 그 와중에 정품과 가품을 가르는 기준은 또 무엇인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를테면 산업 쓰레기 같다고 느껴지는...)을 누군가의 열광으로 연결하는 그들의 저세상급 브랜딩 실력에 혀를 내두른다.


남과 다름을 열망하는(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금세 하나의 스타일로 도배되어 버리는) 요즘 세대의 레이더에 우연히 얻어걸린 것인지, 처음부터 인간은 허점투성이인 데다 비이성적인 소비를 한다는 본성을 간파해 체계적으로 전략을 짠 의도적 성공 스토리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재활용품이나 산업쓰레기 같은 물건도 '힙'하다는 흐름을 타게 만들면 수십, 수백을 호가하는 명품 대열에 올라설 수 있다는 것뿐이다.


'저런 형편없는 걸 이름값이라며 수십수백을 주고 사 입느냐' 며 무지성, 허영, 군중심리라 폄하하고 혀를 차던 속마음이 뒤늦게 아차 싶었다. 대체 뭐지? 유사 이래 가장 독특하고 저밖에 모른다는 이기적인 세대(이마저도 사실 오해에 가깝긴 하지만)를 움직이게 만든 것은? 


그저 이쁘면 그만이라는 '취향저격',  기만하고 사기를 쳐서라도 팔면 그만이라는 양아치 같은 기업 말고 '진정성'이나 인류나 환경이라는 고차원적 가치를 내세운 '착한 기업'에 열광하는 '가치소비'가 대세로 떠올랐다. 한마디로 그런 것들이 있어 보이는 '있어빌리티' 물건 하나를 사도 '난 이렇게 달라!' 라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취향으로야 앞으로도 골든구스와 프라이탁을 내 돈 주고 살 일은 없겠지만(트렌드에 열광하는 것이 가장 트렌디 하지 못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불과 엊그제 까지 통했던 정답들이 하나둘 무너져 내리고 새로운 질서, 뉴노멀로 재편되는 이른바 '특이점'에 도달했다는 서늘한 사실이 피부로 내려앉으며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문득 마흔이 넘은 고인 물들 그리고 그들이 모여 있는 집단은 목전에 둔 '가치소비'의 시대에서 어떤 존재로 남을지 궁금해졌다. 그냥 만들어 놓으면 팔리던 대량 생산과 소비의 시대를 살던 사람들. 과정이야 됐고 그저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사회적 소시오패스들이 성공을 거듭해 높은 자리를 꿰차고 있는 명백한 현실 속, 그들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개성을 짓밟히고 뾰족한 부분을 다듬기를 강요당했던 세대는 그저 취향에 맞고 예쁘고 평소의 신념에 걸맞은 철학을 가진, 찐 브랜드를 알아서 찾아온다는 특이점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고 있을까?


그들은 골든구스를, 프라이탁을, 파타고니아를, 그리고 남양유업이나 대한항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는데,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불거지는데 우리 때는... 을 반복하며 우리를 집어삼킬 변화의 거대한 쓰나미를 어어 하며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


고인물들끼리 모여있으면 스스로 고인물인지 알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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