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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Jan 10. 2023

퇴사 후 3년, 먹고사는 일

달과 6펜스를 읽다

2023년이 시작된 지도 벌써 10일째다. 2020년 2월에 회사를 그만두었으니 이 생활(작가지망생이라 쓰고, 백수라 읽는)도 어느덧 만 3년째로 접어들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감행하던 당시에는 길어야 1년 정도면 무언가 결정이 날 테지 싶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멋지게 꾸려가든, 어쩔 수 없이 재취업을 하든... 그동안에는 모아놓은 돈과 퇴직금으로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결과적으로 그 생각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누구의 간섭도 방해도 분노도 없이 내가 원하는 일(책을 읽고 글을 쓰는)을 원 없이 하게 되었고 일부 결실도 맺었지만(책 2권 출간), 3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여전히 정기적인 수입 구조를 만들지 못해 생활고에 쪼들리는 삶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나마 2022년은 유의미한 변화가 있던 한 해였다. 계약금도 없던 첫 책과 달리 두 번째 책은 작으나마 계약금도 받았다. 10월 출간 이후 메이저 일간지에 신간소개와 인터뷰 기사가 실렸고 모 방송사 북토크에 출연해 난생처음 출연료도 받았다. 이후 모 대기업과 지방 교육청 두 곳에서 조직문화 혁신 워크샵과 책 관련 강연 요청이 잇따르며 나름 큰 수익이 생겼다. 


돈이 입금되던 날, 3년 만에 생활비를 보태며 만감이 교차했다. 숨 쉬듯 당연히 나오는 걸로 알았던 월급을 받았을 때의 느낌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감. 그것은 액수의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님께 용돈도 드렸다. 동생에게 빌린 돈을 갚았다. 아들에게 겨울 패딩을 사주었다. 마지막으로 신세 진 이들에게 밥을 샀다. 


내 글이 돈이 될까 싶었다. 그 기적 같은 경험이 믿기지 않았다. 어떤 감정이 차올라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성취감에 취해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 12월 말과 새해 연초에 이르러 더 이상 강연 요청이나 인터뷰 요청은 이어지지 않았고 간만에 만져본 목돈은 스치듯 안녕...불과 한 달 사이에 마치 휘발유처럼 증발해 버렸다.


3년 만에 드린 용돈을 극구 사양하던 부모님의 표정엔 "잘됐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 라는 말과는 다르게 여전한 그늘이 얹혔다. 빌린 돈에 얹은 얼마 되지 않은 이자를 되돌려 주던 동생의 마음씀에도 아직 불투명한 내 앞날에 대한 걱정이 읽혔다.


정신 차려보니 한 여름밤 꿈같았던 작은 성취의 축제도 끝나고 차가운 겨울이 와 있었다. 달뜬 마음과 부풀었던 자의식을 추스르고 또다시 끝을 알 수 없는 터널 속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간다. 겨우 내 몸을 웅크리고 영양분을 빨아들여 곧 찾아올 찬란한 봄을 준비하듯, 세 번째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마흔의 나이에 가족도 평온한 삶도 버리고 화가의 길을 택했던 찰스 스트릭랜드의 역겨운 이기심_ 내 선택으로 주변의 모두가 상처를 받건 삶이 파괴되건 알바 아니라는_을 좇지는 않겠지만,  그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는 내적 욕망의 부름만은 온전히 받아들인다. 그래, 나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느덧 마흔 후반, 생활고는 여전하고 책 읽는 속도는 늘었다. 어찌 된 일인지 글을 쓰는 일은 뜸해졌다. 연말연초라는 분위기에 알게 모르게 휩쓸리고 본질적으로는 내게 글 쓰는 재주가 있는가? 하는 자기혐오에 잠시잠깐 빠졌던 모양이다. 


요 며칠 빠져 읽은 [달과 6펜스]는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내게 찾아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죽은 후 비로소 그 천재성을 인정받게 되었다는 소설 속 가상의 인물인 찰스 스트릭랜드(고갱이 모티브가 된)나 실존 인물인 반 고흐처럼 역사에 남는 위대한 예술가가 될 가능성은 1%도 안 되겠지만, 혹은 죽은 후 명성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겠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를 마음속에 충만한 명령을 따르는 일만은 오직 내 의지로 가능한 영역임을 깨닫는다.


매일 삶이라는 비극과 이상이라는 희극 사이에서 책을 펼쳐 읽고 글 몇 자를 끄적인다. 확실히 오늘보다 내일이 한 끗 더 나을 것이다. 뭐 뒤쳐진다 해도 어쩔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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