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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Jan 20. 2023

회사를 그만둔 13가지 이유

13일의 금요일. 강남역에서 대학원 동기들을 만났다. 송년회 겸 신년회자리. 코로나로 후반 3학기를 내리 비대면 수업을 했고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아 거의 3년여 만의 자리였지만 어색함보다는 반가움이 컸다. 11명 전원이 빠짐없이 참석했다. 술잔이 오가고 간단한 게임과 가볍게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면서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굽고 소주 3, 맥주 7 비율로 폭탄주를 말아 돌리는 북적북적한 회식 분위기가 얼마만인가? 대학 동기처럼 20대를 함께 보내며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사이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기라는 유대감이 생긴 덕분이었을까? 반백수라는 초라한 처지를 잠시 잊고 비교적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었다. 물론 각자 재직 중인 회사 이야기가 나오면 어쩔 수 없이 화제에서 비켜나 뻘쭘한 상태로 애꿎은 물 잔을 들이켜야 했지만...


"형님, 지금 회사 옮기는 게 나을까요?"

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한 귀갓길. 지하철을 타고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가게 된 동기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회사가 견디기 힘들다는 이야기. 이미 타회사 면접을 봤고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평소에도 밝고 붙임성 좋은 성격인 데다 동기모임의 총무를 맡아 이날의 프로그램(?)을 주도하며 시종 유쾌해 보였는데 지금 보니 눈이 풀리고 혀가 꼬였다. 거리상 약간의 불이익도 감수할 각오라는 말에 문득, 3년 전의 그 시간이 다시 떠올랐다. 나와 3살 차이였으니 공교롭게도 내가 퇴사를 고민하고 결정했던 딱 그 나이다. 나는 왜 회사를 나오겠다고 마음을 먹었을까?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 아직 인생 길다. 이제 절반 왔을 뿐이야. 그 답은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겠지?"

반전도, 인사이트도 없을 뻔한 이야기를 전해주고는 강변역에 도착해 우산도 쓰지 않고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퇴사를 하고 한동안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회사를 나온 이유에 대해 말하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위대한 스토리텔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글을 쓰고 책을 내고 강연을 하고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내 주장과 뜻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랐으니까'라고. 


어쩌면 "그 나이에 국으로 붙어 있을 것이지 이 무슨 경솔한 짓이야?" 라고 누군가 혀를 찰까 봐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말야... 종종 술기운을 핑계로 숨은 이야기를 꺼내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세상의 연이 모두 끊어지고 나니 좀처럼 취할 기회가 없었기도 했고...


따지고 들면야 둘, 서이, 너이, 다섯, 아홉, 열은 훌쩍 넘지 않을까? 상사가 싫어서, 지루해서,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여기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사실은 더 높이 올라갈 자신이 없어서, 아니 이곳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지 않아서...오 그렇지. 점점 양파를 벗기듯 그제야 마음속 진짜 이유가 그 실체를 드러낸다. 일단 열세 가지쯤 된다 치고


"말해 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아니, 그런 것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


영화 [달콤한 인생]의 보스(김영철 분)는 최후의 순간까지 멋져 보이고 싶었는지 포장된 이유를 뱉었지만, 실은 어린 애인이 제 부하(이병헌 분)에게 흔들렸다는 사실에 질투가 났기 때문이었지.


양파껍질을 벗겨낸 끝에 정면으로 마주한 퇴사의 진짜 이유는, 내 능력의 한계를 봤고 위로 올라갈수록 그것을 뚫어낼 자신이 없었다는 것. 


내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그럭저럭' 일 것이다.

그럭저럭 공부해서 그럭저럭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인서울 대학에 진학했고 그럭저럭 졸업해서 손꼽히는 대기업이지만 그 안에서는 마이너한 관계사에 그럭저럭 입사해 그럭저럭 일을 하고 그럭저럭 승진을 거듭해 별다른 성취감도 그렇다고 위기감도 없었던 그런 삶.


마흔 중반에 이르러서야 내 주변을 돌아보니 아니, 더 높은 곳 그 위를 올려다보니 이전에 보지 못한 무언가가 보였다.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입장권은 더 좋은 스펙과 배경,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기 영역에서의 전문성이었다. 그마저도 충분조건은 아니고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었던 것.


결정적으로 한 때 믿고 따랐던 K대 출신 상사는 '마음의 거리' 라는 진짜 속내를 드러내면서 더 위의 세상이 움직이는 매커니즘을 은근히 흘렸다. 속시원히 까발리자면 기업의 경영진이 되기 위한 세계 그 중심에는 학연이 있음을, 다시 말해 학벌주의가 엄연히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니, 그 당연한 걸 지금까지 몰랐단 말이야? 정확히는 알았으면서도 몰랐다고 해야 할까?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테지만 능력만 있다면, 성실하다면 한계는 없다!라는 립서비스를 믿고 자기 합리화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놓고 정작 제실력을 키우는 일마저도 손 놓고 있었던 걸 보면.


43세 차장 3년 차에 뒤늦게 대학원에 관심을 둔 이유는 북극 빙하보다 냉혹한 현실의 벽을 '앗 뜨거라!' 뒤늦게 체감하고 부랴부랴 선택한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학벌, 자타공인 전문성, 인맥(정치) 이 셋 중 적어도 하나는 특출 나게 갖춰야 한다. 어느 하나 특별함이 없었던 사십 대 중반의 중도 하차, 퇴사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럭저럭, 안온했던 직장인의 삶이 50대 이후 후반전의 삶에 겨눈 살벌한 경고. 어쩌면 선택이 아닌 선택을 강요당한 것이었을지도...


불행 중 다행으로 여전히 내겐 하나의 가능성이 남았다. 자타공인 전문성을 갖추는 일. 그 길은 변함없이 힘들고 어둡고 습기로 가득차고 언제 출구가 나올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든 후회가 남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그 힘으로 또 다시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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