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릭스 leex Jan 18. 2023

카카오에서 카톡이 왔다

[까톡~]

오후의 정적을 깨고 알람이 울렸다. 까톡 고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이모티콘 '마음 패키지'를 어서 받으란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독촉 아닌 독촉 알림이 온 게다.


이모티콘 3종을 준다는데 알고 보니 1종만 무료고 2종은 90일인가 제한이 있단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감사의 '마음패키지'라니...얼핏 들으면 초일류 기업 카카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전 국민에게 고마운 마음에 무료 이모티콘을 자발적으로 선물하는 훈훈한 선행으로 착각할 뻔했지 뭔가? 


분명 몇 개월 전 전 국민을 강타했던 '카톡 불통 사태'에 대한 보상 차원 아니었던가? 금세 그 사실을 전 국민이 잊기라도 한 것처럼 그 뻔뻔한 워딩에 헛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장난하나~'


내 경우 다음 메일을 주메일로 쓰고 있었는데 무려 6일간이나 먹통이 됐다. 카톡이야 연락할 사람도 딱히 없었으니 그럭저럭 참을만했지만(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카톡이 막혀 답답한 일이 더 많았을 테지만), 메일이 막혀 내심 며칠을 기약 없이 답답한 상황에 놓여야 했다. 


두 번째 책을 막 발간한 직후 표지 날개에 인쇄해 둔 주메일이 다음 메일이었다 보니 그 사이 어떤 메시지를 놓쳤다면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 사이 중요한 메시지는 타 메일과 전화로 오고 갔지만(사실상 백수에게 무슨 큰일이 있겠는가 만은) 주메일을 바꿔야겠다는 생각만은 확실해졌다.


이 사고는 명백히 카카오라는 독점 기업의 안일한 운영으로 생긴 인재였다. 회사 내부 사정이야 어쨌든, 그 정도 규모의 기업이 백업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전 국민 대상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거니와 사건 발생 후 경영진들이 보여주었던 '어쩌라고!' 식 적반하장 태도에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이모티콘을 보상으로 주기로 했다는 결정도 기가 막혔지만, 진심으로 반성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뼈를 깎는 예방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낮은 자세를 보여도 부족할 판에, 마치 그 일과는 전혀 무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듯, '마음패키지'라는 워딩이라니...


"아, 너희는 아직 멀었구나. 그 사태에서 아무것도 배운 게 없구나." 싶었다.


나는 이들이 선심 쓰듯 던져준 공짜 이모티콘을 감사한 마음으로 내려받아 쓰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 어느 순간 카톡창에 똑같은 모양의 이모티콘들이 도배되는 모습을 보며 이왕 주기로 한 거, 각자 취향에 맞게 '선택'이라도 할 수 있게 했다면, 조금은 덜 분노했을까? 웃픈 생각마저 해본다. 에잇! 최소한의 배려도, 성의도 없는 것들.


거 무료로 준다는데 그냥 받아서 쓰면 그만이지 뭐가 불만이냐 싶을 테지만 나 같이 마음이 꼬인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기업의 조직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직업병 같은 것이랄까). 얼마나 대중을 우습게 알면 이런 식으로 문제를 덮으며 눈 가리고 아웅 할까? 싶은 거다. 


하인리히 법칙. 1건의 대형 사고가 터지기까지 26건의 중형사고 300여 건의 소형사고가 발생한다는 이론. 자잘한 사고에서 대형 사고에 이르는 시그널을 포착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인사이트. 지난날의 '카톡 불통 사태'는 하인리히 법칙의 전형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내부의 누군가는 어?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이런 문제를 덮으면 큰일 날 텐데.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말해봤자 뭐 바뀌겠냐? 이런 체념이 광범위했다면 아무런 조치도 없었을 터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그 일로 인해 배우는 것이 있다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카카오는 그날의 사고 이후로 무언가를 배웠을까?


오늘, 이모티콘을 배포하는 그들의 솜씨를 보건대 글쎄. 또다시 두려워지고 있다면 기우일까?

작가의 이전글 무책임한 위로가 다 무슨 소용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