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릭스 leex Jan 27. 2023

'내 책'으로 선물하기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만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책을 지인들에게 선물로 줄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대한 재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대학 입학 후 연재소설이랍시고 써서 각 대학 자유게시판에 올려 약 36회까지 이어나간 경험을 보면 확실히 글쓰기에 대한 호기심만은 상당했음이 분명하다.


결국 첫 책을 내게 된 건 마흔 중반, 그러니까 퇴사 후 본격적인 글의 세계로 들어온 지 2년이 되던 무렵이었다. 퇴사라는 사건은 책 출간을 단순한 버킷 리스트가 아닌 남은 인생을 지탱할 마지막 보루로 만들었다. 치열하게 읽고 썼다. 그 사이 거의 모든 인간관계는 끊어졌다. 나를 찾는 사람도 없었거니와 스스로 납득할만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는 한 세상에 나갈 자신 또한 없었다. 스스로 찬란한 고립이라고 이름 붙이고 혼자를 견뎠다.


첫 책이 나오던 날, 카톡 상태 메시지를 '세상으로 나갈 준비'라고 바꿨다. 그 수준이 어떻든 퇴사 후 2년간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증명할 결과물을 마침내 얻었다고 생각했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저자 증정용 10권은 누구에게 줘야 할까? 나름의 리스트를 고심하기도 하며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잘 지내십니까?]

마침내, 카톡 친구목록에서 지우지 못한 왕년의 인연들에게 2년여 만의 안부를 물었다.


응답의 형태는 다양했다. 반가워하는 사람, 놀라워하는 사람, 무덤덤한 사람,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사람, 책을 사서 인증하고 그것도 모자라 약속을 잡고 밥과 술을 사겠다는 사람, 책을 봐줄 테니 증정본을 보내고 밥과 술까지 사라는 사람.


퇴사라는 단절이 없었다면 평생 몰랐을 왕년 관계의 민낯.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몇 가지 진실들이 비로소 보였다. 변함없이 아니, 예상보다 훨씬 큰 폭으로 반겨주었던 소수의 몇을 제외하고 대다수에게 '나'는 이미 잊혀진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는 왜 이들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받을 것이라 착각했을까? 왜 아무런 조건 없이 '나'라는 존재의 귀환(?)을 기꺼이 반겨주리라 믿었을까? '나 퇴사 후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뜬금없이 2년 만에 나타나 '내 책을 사주세요' 라는 은근한 압력으로 읽힐 것이라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몇 날 며칠 공들여 넣었다 뺐다 했던 저자 사인 증정본 리스트가 무색해졌다. 내 이름이 박힌 책을 펼쳐 사인을 하고 건네는 일이 본인에게는 근사한 일일지는 몰라도, 실은 상대방에게 달갑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더구나 책의 내용마저 별로 관심 없는 분야라면, 유명인도 아닌 이제 겨우 첫 책 출간한 무명작가의 책을 시간을 들여 읽고 그 감상까지 전해야 한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대단히 부담스러운 숙제를 지우는 일임에 틀림없다.


세상으로 나가기는커녕 '진실'의 열병으로 앓아누웠다. 판매량 또한 형편없었다. 조금 부풀어 올랐던 '나'가 다시 쪼그라들었다. 다시 읽고 쓰는 일로 피신했다. 잠깐 이어졌던 연이 다시 끊겼다.


지난해 12월, 두 번째 책을 출간했다. 가족을 포함해 최소한의 지인에게만 출간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말했다. "책은 절대로 사지 마~" 혹여 그 말 자체가 '제발 좀 사줘' 라는 반어법으로 들리지 않을 사람들만 추렸다. 그래도 그들은 저자 몰래 책을 사주었다. 밥도 술도 샀다.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움츠렸던 마음이 일부 열렸다. 부끄러움에 쳐다보기도 싫었던 책표지를 열어, 천하의 악필로 낯간지러운 고마움의 말을 쓰고 날짜와 이름을 남겼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증정본은 여전히 넉넉하다.


부디, 선물이 되었기를





작가의 이전글 회사를 그만둔 13가지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