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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Jan 31. 2023

기다리게 한다면, 미련을 버릴 것

약 3주 전 브런치를 통해 제안 하나가 왔다. 모 대기업 웹진에 주 1회 글을 올려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었다. 브런치 제안은 이번이 세 번째로 하루정도 고민 끝에(사실 고민할 이유도 없었지만) 수락했다.


구체적인 단가, 글의 분량, 대략적인 주제 등이 오가고 마지막으로 이력을 정리해서 송부했다. 제안자는 내부 승인을 받아 최종결정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별다른 수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반백수 프리랜서에게 그런 제안이 온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매주 1회일 망정 고정적인 일이 생기겠구나 라는 희망이 생겼다. 설 명절 전에 확답이 오면 나름 근사한 명절 선물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설 명절이 한참 지나고 그다음주가 된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어떻게 된 거냐? 따져 물을 수도 있지만 내키지 않았다. 그 일만 목매고 기다린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일의 성사여부와는 별개로 제안자의 태도에 은근한 부아가 치밀었다. 먼저 제안을 하고 수락만 하면 즉시 결정이 될 것처럼 개인이력까지 받아갔으면 그 사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다 중간점검은 고사하더라도 어찌 될 것 같다 언질이라도 줘야 할 것 아닌가?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무례'


비록 밥을 굶더라도, 제아무리 대단한 제안이라도, 기본을 갖추지 못한 상대와의 일은 거들떠보지 않겠다는 신념에 따라 진즉에 마음은 접었지만 끝맛은 영 개운치 않다.


퇴사 후 3년,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첫 책과 두 번째 책을 내는 과정에서 무수한 거절을 겪었다. 원고 투고 후 출판사들은 판에 박힌 뻔한 멘트로 혹은 묵묵부답으로 거절의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퇴사 초기 간간히 면접 제안을 해오던 헤드헌터들 역시 면접 후 결과가 좋지 않으면 통보조차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답 없으면 거절인 줄 아세요. 라는 암묵의 동의라 한 걸까?


될 만한 원고는 빠르면 투고 후 몇 시간, 늦어도 하루 이틀 사이에 연락이 온다. 미팅을 하고 바로 계약을 하자는 메시지를 즉각 받는다. 의례 최소 2주~1달의 검토기간이 필요하다는 답이 오지만 사실상 거절의 메시지에 가깝다. 정말 책이 되고 팔릴 것 같은 원고라면 다른 출판사에 뺏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즉각 연락을 하게 되어 있다. 수십 군데 투고를 했지만 일주일, 이주일, 한 달이 되도록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는다면, 별다른 매력이 없다는 반증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메일이 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는 작가지망생의 까맣게 타들어가는 마음만 안타까울 뿐.


원고 투고만 그럴까? 재취업이든, 글의 청탁이든 결정이 늦어진다는 건 마땅치 않고 탐탁지 않고 급하지 않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 연락하지 않아도 다른데 뺏길 것 같지도 않거니와 놓치더라도 그만한 대안은 얼마든지 차고 넘친다는 은연의 메시지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때 그 대상을 헷갈리게 하지 않는 것처럼, 좋은 소식은 결코 그 대상을 궁금함 속에 기다리게 하지 않는 법이다.


사정이야 무엇이든, 어떤 일이 오고 가는 과정에서 묵묵부답은 최악의 무례다. 갑의 입장이라고 생각했다면 더 신중히 처신해야 할 일이다. 을의 입장에서, 상대적 약자 입장에서 사소한 마음씀 하나가 감동을 주기도 하고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순리를 안다면, 제 일을 사랑하진짜 프로페셔널이라면, 이런 기본을 놓칠 리 없다.


더 이상 나는 기다리지 않는다. 스스로 인내가능한 최후의 선을 설정해 놓고 그 선을 넘으면 깔끔히 내려놓고 앞을 보기로 했다. 기본도 안된 자들이 쏘아 올린 '무례'라는 화살을 스스로 집어 가슴에 꽂을 이유는 없다.


언젠가는 내가 보낸 원고가, 내 이력서가, 내 제안이 '아! 서두르지 않으면 놓치겠어.' 의 수준에 이르도록 갈고 다듬는 일, 다만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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