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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Feb 03. 2023

빛나는 삶 혹은 빚내는 삶

퇴사한 Fe차장이 사는 법_ 경제관념

내 스마트폰은 노트10+다.  2019년 8월에 출시됐는데 그해 9월에 중고로 공기계를 구입했으니 햇수로 약 4년째가 된다. AMOLED의 고질병인 액정 번인 현상이 미세하게 남은 것 외에는 여전히 쓸만하다. 배터리도 충분하고 게임을 하지 않는 터라 성능이나 용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중고라 봤자 고작 1개월 남짓도 안 쓴 새것 같은 물건을 신품 대비 약 75% 가격으로 구매했는데 그 이전에도 같은 방식으로 구매해서 썼다. 100만 원에 가까운 목돈이 들어갔지만, 덕분에 통신사에 얽매이지 않고 약 2만 원선에 6기가 데이터+소진 시 무제한 요금제를 수년째 쓰고 있다.


"아니, 스마트폰을 공기계로 구입한다고? 나는 똑같은 모델 거의 반값으로 샀는데 왜 그런 짓을 했어?"


누군가 내 스마트폰 구매 스토리를 듣고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푹 쉬며 한마디 거들었다. 매달 나가는 요금이 기기 할부값을 포함해 10만 원에 육박하지만 그래도 최신형 휴대폰을 대폭 할인받아 샀으니 그게 어디냐고 했다. 같은 방식으로 2년마다 최신형으로 바꾸면 그 또한 큰 이득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인생 참 바쁘고 이것저것 신경 쓸 일도 많은데 휴대폰 하나 사는데도 재고 따져야 하나? 싶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봐도 100만 원이 넘는 물건을 2년마다 턱턱 바꾸면서 고가의 요금제에 할부 이자까지 더해 따지고 보면 할인받은 기기값보다 훨씬 더 많은 웃돈을 통신사에 상납하는 모양새 아닌가? 


수 만 원짜리 물건을 살 때는 다나와, 에누리 등 비교 사이트를 뒤져가며 비교하고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물건을 사려고 애쓰면서 왜 휴대폰은 통신사의 약정 장난질과 노예계약과 다를 바 없는 요금제에 별다른 저항감 없이 따를까? 


그러고 보니 휴대폰뿐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동차나 아파트 등 자산과 비용의 덩어리가 커질수록 외려 빚을 지는데 별다른 거부감 없는 통 큰 손들이 수두룩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차량가의 1/10도 안 되는 원금을 내고 수년의 장기 할부로 고급 자동차를 구매하는 일과 자기 자금 일부에 수억을 빌려 집을 사는 일은 크기만 다른 쌍둥이 형제와 같다. 비록 자동차는 감가가 되어 0원에 수렴하고 아파트는 한번 사두면 오를 일밖에 없는 영원불변의 자산처럼 여겨지긴 하지만, 결국 빚이란 이야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은 자산의 레버리지로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지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수익을 끌어와 현실을 돌려 막는 데 있다. 수입이나 경제규모 자체가 예상한 만큼 성장하지 않으면 자칫, 상환은 커녕 기존 자산까지 몽땅 날릴 위험을 안은 양날의 검과 같다.


십 수년간 금융위기니 코로나니 위기를 핑계로 만들어낸 제로금리, 돈잔치 광란은 영원할 듯 보였다. 그 사이 코인이니 부동산이니 남의 돈으로 투자를 가장한 투기가 판을 쳤고 땀 흘려 일하고 착실히 저축하는 사람들은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나는 빚의 무서움을 안다. 어린 시절, 집이 경매로 넘어가며 끌어다 쓴 사채 빚에 시달리는 부모님을 보며 갖게 된 경각심이 가장 컸다. 성인이 되어 돈을 벌면서도 빚이라면 온몸으로 거부반응을 보였다. 부동산이 미친 듯 치솟을 때 새가슴으로 자산 레버리지도 하지 못한 투자꽝손, 루저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나는 빚의 집요함을 안다. 언젠가는 반드시 토해내야 하는 남의 돈. 생애 처음 자동차를 샀을 때도 할부가 아닌 전액 일시불로 샀다. 여유가 넘치는 부자여서가 아니라 내가 땀 흘려 만든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을 끌어와 내 이득을 꾀하는 방식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요행으로 일확천금을 노리지도 않는다. 내 힘으로 벌고 남은 것을 차곡차곡 모으는 진짜 개미의 성실함을 더 믿기 때문이다. 


인생 한방이야 그런 식으로 언제 부자 될래? 누군가 혀를 끌끌 찬다면, 그런 방식으로는 부자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그렇게 벼락부자가 된 사람을 봐도 전혀 부럽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인간사는 널뛰는 부침 속에 비선형의 궤적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경제 시스템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에 지나지 않으니 같은 운명이다. 부동산 불패론이라며 언제까지 우상향만 할 것이라는 신념 또한 괴이하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제로금리의 시대는 한순간에 막을 내렸고 투기판은 언제 그랬냐는 듯 펄펄 끓던 용광로에서 북극 한기로 냉각됐다. 물론 이런 하락세 또한 언젠가는 바닥을 칠테고 또 다시 돈을 펑펑 풀어가며 '거봐 내가 뭐랬어. 부동산은 불패라니까?' 빚을 권하고 너도나도 빚잔치에 뛰어들도록 사회 전체가 다시 들끓게 될지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 인구는 출산율 0.8%를 찍고 소멸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인구절벽은 가속화될 것이라는 예상은 지나가는 강아지도 알 법한 수준이다. 사람이 없는데 무엇으로 미래의 부를 보장할 수 있을까? 


세대를 막론하고 피땀흘려 일하는 노동의 신성함보다 한탕 주의에 빠져 일확천금의 광풍이 여전한 지금, 10년 후 20년 후 미래가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무주택자이며 통장에 생활비 잔고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인 반백수 신세지만, 빚이라는 두려움을 갑옷처럼 덕지덕지 바른 덕에 적어도 타인의 돈에, 미래에 저당 잡히지 않은 셈이다. 


오직 내 힘으로 실력을 키워낼 수 있다는 자신감만 충만하다면, 빚내는 미래가 아닌 빛나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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