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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Mar 04. 2023

시급이 700만 원입니다.

이름값에 대하여

700만 원

데이터 마이닝으로 유명한 S 씨가 초청료로 받는 돈이다. 월급도 주급도 아닌 무려 시급이다...최저시급 1만 원이 안 되는 시대에 1시간 일하고 웬만한 직장인 두 달 치 월급이라니. 이거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냐 싶겠지만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들의 몸값은 대략 비슷한 수준이거나 더 높을 것이다. 이마저도 1~2년 전의 이야기니 지금은 1천 단위로 올라섰을지도 모르겠다.


[딜버트]라는 오피스 카툰으로 유명한 스콧 애덤스는 저서 <더 시스템>에서 강연료 관련 일화를 풀었다. 딜버트가 유명세를 타면서 여기저기 강연요청이 밀려들어왔는데 어느 날 영 내키지 않는 요청이 들어와 고민에 빠진다. 거리도 멀고 컨디션도 별로라 어떻게 거절할까? 생각 끝에 지인에게 털어놓았더니


"단가를 씨게 불러~"


스콧은 에라 모르겠다. 시간당 1만 달러(당시 스콧의 강연료는 평균 1500달러 정도였다고)를 불러버렸고.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흔쾌히 오케이. 한술 더 떠 1등석 비행기 왕복티켓과 5성급 호텔까지 예약해 놓겠다는 특전까지 제공했더란다.


이 일을 계기로 스콧의 이름값은 급격히 치솟게 된다. 물론 그의 콘텐츠, 딜버트의 값어치가 미국 전역으로 치솟는 중이었고 강연 역시 재미와 유용성이 증명되었기 때문이겠지만 내심 '내게 이럴만한 값어치가 있었던가?'라는 두려움과 함께 이름값의 위력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경험을 생생히 증언한다. 그 후 스콧의 시간은 무려 5만 달러 약 우리 돈 7천만 원까지 수직상향된다. 어마어마한 시간당 단가에도 몇 년 치 강연 스케쥴이 풀로 차있다고 하니, 유명인의 삶이란... 이쯤 되니 S의 이름값 700은 스콧의 5만 달러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이기 까지 한다.



다시 S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S의 이름값에는 단순히 이름값이 얼마냐의 문제를 넘어 또 다른 핵심 메시지가 숨어 있다. '내 시간은 이 정도로 값어치가 있으니 시답잖은 일로 나를 부르지 말라!' 라는 강력한 사전 거절의 시그널.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시간에 700을 태우는 곳은 분명 있다. 밥 한 끼를 먹던 짧고 굵은 조언을 얻던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만 생긴다면.


문득, 나의 시간당 단가는 얼마일까? 싶었다. 월급을 하루 단위로 계산해 보면 답이 턱 나온다. 월급이 500만 원이라고 치자. 주 5일, 40시간 기준이라면 월 200시간. 대략 시급 2.5만 원 정도다. 세후냐 세전이냐 차이는 있겠지만 월 500이라는 그럴듯한 숫자뒤에 숨은 시급의 정체는 우리를 헉! 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만 받아도 감지덕지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면, 괜찮다. 쭉 그 길을 가면 된다. 사실 현실에서 월급 500을 받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다만 내 노동력과 들이는 시간, 스트레스 따위를 감안할 때 이거 너무 턱없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거 큰일 났다. 당장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부터 되짚어 봐야 하는데 회사를 벗어나면 시간당 700은커녕 당장 시급 1만 원을 받기도 버겁다면 어쩌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시급 50, 100, 700, 혹은 스콧처럼 5만 달러를 목표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다시 현실에 순응해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에 안도하며 안온한 직장인으로서 가늘고 길게 갈 것인가? 그 본질적 질문은 인생의 절반 지점인 마흔 즈음에 청구서를 내밀듯 반드시 찾아온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전자의 길을 택했다. 그것도 나이 45에. 3년간의 노력 끝에 지난 16년간 현장에서 일했던 분야의 책을 두권 냈고 작년 겨울 몇 건의 강연도 했다. 이때 받은 강연료를 시급으로 따지니 딱 50이다. 물론 프리랜서의 일이란 게 일반 직장인의 그것처럼 매일 계산되는 것은 아니기에 직접 비교에 무리가 있지만, 어쨌거나 나만의 콘텐츠로, 내 이름값만으로 시간당 50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물론 내 목표는 그 이상이다. 목표를 높게 잡고 꾸준히, 묵묵히 정진한다. 그렇다고 TV에 얼굴을 내미는 유명인이 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그럴 가능성도 없지만) 오로지 조직문화, 인적자원이라는 내영역에서의 전문성만으로 이루어나가겠다는 꿈은 매일 조금씩 커져만 간다.


'그 돈 못줄 거면 부르지도 말라'라는 건방진 인간이 되겠다는 말이 아니라, 돈만 바라는 돈벌레가 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있어 그 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염원이다.


누군가의 시급 700이 내 꿈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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