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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Mar 10. 2023

첫 인세를 받는 기분

2020.12.31일 내 첫 책이 세상에 나왔다. 어느덧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출간 계약을 하던 당시 인세는 8%, 1년 후 정산을 하고 재쇄를 찍을 시 인세 10%로 상향한다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여기저기 귀동냥으로 출간계약 프로세스를 대략이라도 알고 있었기에 뭔가 떨떠름했지만 난생처음 책을 낸다는 기쁨? 흥분? 설레발 때문이었을까? 별 고민 없이 도장을 찍었다. 


누구나 책을 내면서 장밋빛 꿈을 꾼다. 중쇄는 기본이고 1만 부, 10만 부 막 팔리면 어떡하지? 너무 유명해져서 내 사생활에 지장을 받으면 어쩌지? 따위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하루에도 몇 번씩 구름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더란 말.


미안하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유명인도 아니고 애초에 천부적인 글쓰기 재능을 타고나지 않은 다음에야 첫 작품부터 빵 터지는 기적은 글쎄, 로또 1등까지는 너무 갔고 그래 2등에 당첨되는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런 클리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으니, 첫 책부터 대박이라는 꿈을 꾸며 부질없는 유명세 걱정부터 사서 했지만 출간 1개월도 지나지 않아 북극 냉기 같은 출판계의 현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고야 말았다. 1년 후 정산이라는 조건이 차라리 잘된 거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요즘 기준으로 1000~1500 부 정도인 1쇄를 채 못 파는 작가들이 90%를 넘는 실정에 왜 출판사 대표가 2쇄부터 인세 10% 라는 조건을 순순히 제시했는지 뒤늦게 이해가 갔다. 중쇄 그거 힘들어! 라는 속마음이 아니었을까? 


월 6000 여종, 1년이면 약 7~8만 여 종의 신간이 쏟아진다. 왜 대부분의 책들이 1쇄의 벽도 넘기지 못하고 기억너머로 사라지는 걸까? 책을 읽지 않는 요즘 세태 때문일까? 내용은 정말 좋은데 운이 좋지 않아서일까? 

답은 의외로 심플했다. 책이 별로니까. 


'첫 작품은 지구 곳곳을 뒤져서라도 찾아내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싶어!'를 외치며 이불킥하는 작가들을 심심찮게 본다. 집필할 때만큼은 영혼을 갈아 넣었으니 완성 그 자체만으로 뿌듯하고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내 자식 같지만, 출간 후 시장에 나와 독자들의 냉엄한 선택을 받게 되면 콩깍지가 벗겨지고 마는 것이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엉성하고 깊이도 없고 구조도 뒤죽박죽인 못난이로 돌변하고 만다. 이런 걸 책으로 낼 생각을 했단 말이야? 귀부터 발갛게 달아오른다. 책이 좋으면 어떻게든 시장은 반응을 하게 되어 있다. 마케팅, 홍보 한번 않고도 입소문을 타 1만 부, 10만 부, 100만 부가 되는 책들은 책 그 자체로 그만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출간 후 약 2개월 이후부터는 내 책에 대한 기대를 접고 매일 체크하던 온라인 서점 순회도 관뒀다. 첫 시작으로서의 의미만 고스란히 남겨둔 채 다시 읽고 쓰는 세계로 들어갔다. 첫 작품을 포함한 과거의 결과물들은 양면의 동전과도 같다. 견딜 수 없이 초라해 보일수록, 허점과 부족한 부분이 보일수록 그만큼 더 성장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거가 하나둘 축적될 때 재쇄도 1만 부도 10만 부도 팔게 되는 진짜 작가가 되는 것일 터.


1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 사이 두 번째 책도 세상에 나왔고 출간과 관련한 크고 작은 일들이 간간히 생기면서 첫 책에 대한 관심은 더 멀어져 갔다. 저조한 판매량만큼 출판사 대표와 초보 작가 서로 무심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면 연통이 닿겠거니 싶었지만 2월이 되고 3월이 돼도 감감무소식, 담담한 어조로 메일을 넣었다. "잘 지내시죠?"


내용이야 계약서상 1년이 지났으니 정산이든 결산이든 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였지만 사실은 내 책에 대한 안부인사였다. 내 책은 잘 지내죠? 그렇게 1년간 팔린 첫 책의 안부가 왔다. 대표는 100만 원이 채 못 되는 인세가 책정되어 이달 안으로 입금이 될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일로 바빠 정산 일정을 놓쳤고 출판사가 부족해 죄송할 따름이라는 자책이 함께 달려왔다. 1 쇄도 채 팔지 못했다는 공식적인 선언! 무안했다. 내 책이 부족해서 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못난이였을 망정, 너는 죄가 없다. 그 조차 나의 한 부분인 것을 알고 그 어제가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또 내일의 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1년 3개월 만에 받게 된 첫 인세는 수억만금과도 같다. 


감사히 인사.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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