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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Mar 14. 2023

내 모교가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자기 인식에 대하여 2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학벌이 요소요소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느니 실력이 먼저라느니 이런 건 사실 다 개소리다. 대리 이전 까지라면 그럭저럭 눈 가리고 아웅 할 수 있지만 차부장 이상 특히 임원들의 리그는 그렇게 돌아가지가 않는 것이다.


학벌은 하나의 인증이다. 이 사람은 초중고 정규 학습 과정을 우수하게 이행했다는 일종의 사회적 증명 같은 것이다. 겉으로는 어리숙해 보이고 뭔가 부족해 보이지만 꺼내드는 순간 탐관오리를 벌벌 떨게 만드는 암행어사의 마패 같은 효험도 가졌다. 가진 사람은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못 가진 사람은 죄지은 것도 없이 움츠러들게 하는 요물이다.


10년이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마련이다. 학벌도 학력도 성격도 일머리도 천차만별인 사람들과 이런저런 관계로 엮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묘한 지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류대 출신에 분명 똑똑하고 집중력도 있고 암기력도 좋지만, 어쩐지 일을 하는데 뭔가 구멍이 송송 뚫린 것 같은 사람들이 종종 보이더라는 말이다. 특히 어느 학교 출신 입네 은근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이름값에 턱없이 모자란 실력을 보일 때가 많았다. 


학교의 이름값에 안주해 별다른 노력 없이도 승승장구하는 선배, 동료들을 수 없이 목격한 탓일까? 또 하나 단서는 실제로 지능지수와 일머리에 필요한 현실지능, 인간관계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감성지능 사이에는 서로 연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특정 지능이 비대하게 높으면 또 다른 지능은 그에 반해 현저히 떨어지는 일종의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이미 수많은 학자들이 증명해내지 않았던가? 


인간이 가진 여러 다중 지능 중에 언어와 수학논리 지능이 뛰어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엘리트로 각광받던 이들이 회사에 들어와 일머리가 떨어져 오히려 눈총 받거나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자연스러울 지경이다. 


이런 인식의 시작은 조직 내에서 사람과 관련한 일(조직문화, 육성)을 맡은 관계로 인간의 본성, 지능, 동기 등이 궁금해 공부를 하게 되면서였지만, 더 솔직한 계기는 고백하건대 소위 일류대학 출신 동료들에 대한 부러움, 혹은 열등감이 내면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회기동에 위치한 K대를 나왔다. 내신이 부족했지만 수능성적이 그럭저럭 나왔고 본고사도 나름 잘 쳐서 법과대학 소속 40명 정원인 행정학과에 95학번으로 운 좋게 입학할 수 있었다. 사실 국문과나 신방과를 가고 싶었지만 공무원이 되었으면 하는 부모님의 입김이 조금 더 많이 작용했던 탓에 전공은 전혀 취향이 아니었다. 입대 전까지의 성적은 초일류 투수 평균자책점에 근접할 지경이었지만 고된 수험생활에 찌들었던 20세 새내기에게 대학생활은 그저 신세계였다.


캠퍼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모교는 4월이면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로 청춘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중앙도서관 앞 뜰에 앉아 봄볕을 즐기거나 중세 고딕양식으로 만들어진 본관 앞 잔디밭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새내기의 달뜬 마음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것을 보면 더 좋은 곳에 이르지 못한 아쉬움은 비교적 근래의 일임에 틀림없다. 지금에서야 졸업생으로서의 심정을 묻는다면, 마치 험난한 산맥의 최고 봉우리를 눈앞에 두고 두세 번째로 높은 지점에서 멈춰서 버린 등반가의 회한 같은 것이랄까? 


졸업 후 입사한 회사 역시 공교롭게도 비슷한 처지였다. 2년 간 근무했던 첫 회사는 대형 반도체 기업이었지만 후공정이라는 그다지 부가가치가 높지 않은 사업을 하던 곳이었다. 이후 이직해서 14년을 근무한 회사도 명색이 손꼽히는 대기업 소속이었지만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마이너에 가까운 관계사였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차장이라는 직위까지 나름 승진 누락도 없이 수월하게 올라오는 동안 학벌이니, 정치니, 연 따위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았다. 높은 곳에 오르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고 했던가? 그 좁은 피라미드 최상층부에선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룹의 브레인 심장부, 회사의 핵심 경영층에는 이른바 SKY는 기본, 해외 유수의 대학 출신들도 가세해 피라미드 상층부 끝단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이들의 진짜 실력과는 논외로 저곳에 이를 수나 있을까? 혹여 이르더라도 경쟁할 수 있을까? 화려한 면면 앞에 어깨가 움츠려 들었다. 사실 전의를 상실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맡은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면 그만이지 그깟 대학 이름?이라는 자신감 하나로 살아왔지만, 막상 뒤돌아보니 내 분야의 전문성, 실력마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야 내가 조금만 더 열심히 했어도 거기는 갔어!" 전의를 상실한 40대 중반의 차장 4년 차는 술자리에서 허세가 늘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부딪힐 생각은 못하고 뒤에 숨어 만만한 후배들에게 빗나간 좌절감, 열등감을 부끄러움도 없이 쏟아내고 울분을 안주삼아 시간을 죽이는 시간이 많아졌다. 술이 떡이 되어 숙취 속에 깨어난 어느 아침, 두통과 함께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그때 열심히 했더라면 이미 지나간 후회가 무슨 소용일까? 화려한 학벌에 가려 형편없는 실력을 가진 이들을 수두룩하게 목도했음에도 말만 앞세울 뿐 왜 진짜 실력으로 스스로를 도모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나는 그 벽에 굴복해 회사를 나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던가, 회사라는 옷은 내게 맞지 않다는 그럴싸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자존심을 세워본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7년여 전 고3의 나는 최선이었다. 내 노력만큼 받은 결과물이고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때로 되돌아간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음이 분명했다.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모를까. 분명 그 결과에 승복했고 내심 만족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쌓여온 과거의 합이 오늘날 내가 된 것 아닌가? 


이미 지나간 일은 접고 새로운 무기를 갈고닦아 장착했어야 했다. 학벌이라는 이름값만으로 진짜 실력도 없이 철옹성처럼 쌓아 올린 그들만의 리그를 욕하고 비웃을게 아니라, 실력을 쌓아 정면으로 부딪혔어야 했다.


"인간에게 자신의 현재 모습이 어떠한지 알려준다면 인간은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될 것이다"  극작가 안톤 체호프는 말했다. 그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고뇌하는 50줄의 백수가 아닌 안톤 체호프가 될 수 있었을까? 


나는 내 모교가 자랑스럽지 않다. 그리고 부끄럽지도 않다. 이름값만으로 덕을 볼 처지도 아니지만 더 높은 봉우리에 오르지 못했다는 뒤늦은 회한으로 울분만 토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를 만들고 구성한 한 요소로서 덤덤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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