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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Jun 16. 2023

카톡 친구가 29명이 됐다

반백의 물건들 _ 6. 인맥

"친구가 너무 없어 고민이에요. 결혼식에 친구가 10명도 오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돼요. 하객 알바라도 써야 할까 봐요."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헛헛합니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저 공적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죽마고우들도 삶에 치여 이런저런 이유로 멀어지다 보니 주위에 남은 사람이 별로 없어요."


가끔 이런 사연을 접하면 가볍게 놀란다. 세대와 성별을 불문하고 의외로 많아서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따위 SNS에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인싸들의 플렉스 인생,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각계각층 사람들과 친분을 과시하는 하루하루는 이들의 열패감을 더 부채질한다.


과연 카톡에, 연락처에 많은 사람들이 저장되어 있으면 내 인맥은 좋은걸까? 그 숫자만큼 깊은 관계를 맺고는 있을까? 각종 SNS에 즐거운 모습으로 함께 한 사람들이 많으면 행복한 걸까? 의문이 생겼다.


나는 학창 시절을 포함해 직장인 시절까지, 인싸였던 적이 거의 없다. 2000년대 초반, 군 제대 후 한때 7080 사이에 크게 유행했던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커뮤니티에서 3년 가까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며 인싸가 된 듯 지냈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전형적인 내향형답게 아싸를 자처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도 크게 변함은 없었다. 하필 맡은 일이 육성, 조직문화 업무였던 탓에 뒷풀이 자리에서 현장 사람들을 만나고 술자리에서 친분을 만들 기회가 많았지만, 공적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지점에 머물렀다.


특히나 인맥을 바탕으로 한 사내 정치는 거의 어린아이 걸음마 수준이었다. 누군가의 눈에 들어 어떤 특혜를 받거나 내 힘이 아닌 제삼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Y팀장은 S전무의 사람, K차장은 D사장의 사람 이라는 말이 돌아도 콧방귀 뀌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제 실력, 제 힘이 아니라 남의 도움으로 무언가를 먹게 되면 반드시 체하게 되어 있다는 신념 또한 한몫했다. 좋게 보면 자아가 강한데다 독립적인 편이고 나쁘게 보면 독단적이고 고립된 독불장군이었던 셈이다.


자연히 윗사람들보다는 마음맞는 동료나 후배들과 어울렸다. 인맥이라는 개념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으니 관리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마음맞는 사람끼리 퇴근 후 한잔 하며 속마음도 털어놓고 이런 저런 삶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그들을 '내 편' 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40대 중반 부장 진급을 앞둔 16년차 고인물 치고 사내 정치의 현실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예정된 패배자의 길을 걷고 있던 꼴 아닌가?


반면, 몇몇은 패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볼을 잡은 리오넬 메시처럼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잡으면 이때다 앞뒤 가리지 않고 튀어나갔다. 타고난 자들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상황이 주어지면 사적 만남도 주저하지 않고 어디에나 꼈다. 조직 내 힘을 가진 유력자들의 술자리에는 최우선 순위로 참석했고 그들의 카톡 친구 리스트, 연락처 목록은 빼곡했다. 이게 다 자산이라며 친구목록을 내게 들이밀던 J 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나는 회사와는 안맞는 사람' 이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듣기 좋은 소리도 한 두번이지 3년 가까이 이어지는 푸념에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을지도 모른다.


그 즈음 읽은 데이빗 소로의 '월든'은 자발적 고립에 대한 로망을 심어줬다. 세상과 단절된 월든 호숫가의 통나무집 같은 곳에서 1년이든 2년이든 완전히 잊힌 존재로 살아 보면 어떨까? 떠나고 싶었다. 인맥이랄 것도 없으니 혹여나 그 알량한 인간관계가 끊어질까? 계산에도 없다. 묵은 과제를 털어내듯, 3년간 품은 퇴사라는 씨앗이 발아 되던 날


"퇴사해도 종종 만나서 한잔 해!"

"꼭 연락하세요, 언제든 달려 나가겠습니다."


'내 편' 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작별인사가 이어졌다. 그런 말들이 대개는 허언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애초에 같은 회사, 동료라는 울타리 안에서라면 별다른 의도나 노력 없이 자연스레 이어졌던 일상이 서로의 위치와 위상이 근본적으로 바뀌면 어느 한쪽은 일단 마음을 먹고 시간을 내고 합을 맞춰야 하는 '일'로 변한다. 그 어느 한쪽은 대개 남은쪽이다. 퇴사를 하면 인맥이 끊어지는 이유다.


3년이 넘는 단절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천운이라면 천운. 사람과의 관계에 에너지 부족과 번아웃을 겪었던지라 그 단절이 일종의 치료제 역할을 했다. 관계에 관한 본질을 깨닫고 나름의 원칙을 세운 것 역시 도움이 됐다.


'내가 찾지 말고, 나를 찾게 하라'


어떤 형태로든 내가 나를 일으켜 세우면 그 수준에 맞게 새로운 네트워킹이 생길 것이라 믿었다. 이미 끊어져 변질되어 버린 기존 관계를 능동적으로 정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카톡의 친구 리스트를 정리하는 일.


최대 2년을 생각했던 단절이 이제 4년을 향해 성큼성큼 달려가고 있는 오늘 이 시간, 카카오톡 친구목록을 헤아려 보니 29명이다. 가만있자 그 이전엔 몇 명 정도 있었더라? 못해도 100명 이상은 있지 않았을까? 150? 아니 200?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누군가는 애개? 겨우 그 정도 뿐이야? 참 빈곤한 관계를 맺고 살았네 라며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최후 29명의 절반이상은 그나마 가족과 친척들이다. 숫자로 보니 그 얄팍함이 두드러진다. 연락 한 번 없어도 먼지 한톨만한 영향 없이 살아지는 사람들, 그들을 리스트에 넣기 위해 얼마나 큰 에너지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까? 때로는 나를 죽이고 상대를 치켜세우며...그게 사회생활이라며 마음에도 없는 진정성이라곤 1도 없는 가식적 찬사를 투척하며...


까톡~

어쩌다 폰이 울리면 대개는 단체 카톡이다. 많게는 10여개에 이르렀던 단체톡방에서 대부분 빠져나왔지만, 불가피하게 딱 하나 남겨진 단톡방에서 '살아는 있는 거죠?' 생사여부를 묻기라도 하듯 캔디폰의 고요를 깬다. 케익과 고깔을 쓴 캐릭터 따위 이모티콘이 잔뜩인 걸 보니, 누구의 생일인 모양이다. 누군가의 선빵으로 단톡방 멤버들의 생일 축하 메시지 릴레이가 이어진다. 요란하다.


나 역시 이모티콘을 곁들여 생일축하해요! 메시지를 보내야 하나? 정말이지 축하하는 마음은 별로 안 드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손가락 하나 까닥해서 축하를 전할 수 있는 간편함이 우리의 관계에 진정성을 더해 주었을까? 나쁜 말도 아닌데, 그런 표현들이야 얼마든지 넘치면 좋은 것 아닌가? 글쎄다. 기어코 나 혼자 묵묵부답으로 남는다.


 '다들 그렇게 살아. 그렇게라도 안부 주고받으며 사는 거지 뭘 그렇게 재고 따져?' 마음속 한켠, 대충 남들처럼 살자는 쪽의 내가 불쑥 끼어들며 시니컬한 쪽의 나를 책망한다. 그래도 침묵한다. 진짜 축하하는 마음이 든다면 하다못해 아메리카노 한잔 기프티콘이라도 건네리라.


던바라는 학자가 관계에 관한 재밌는 법칙을 내놨다. 제아무리 발이 넓은 사람이라도 진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최대 숫자는 150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후 150 -> 50 -> 15 -> 5 의 순으로 좁혀질 수록 관계의 밀도가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최대 150명까지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는게 가능하다는 요지이지만, 실제 던바는 진짜 끈끈한 관계는 20명 이하 그 중에서도 약 5명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 것이 틀림없다. 5명 모임을 클랜으로 묶어 따로 제시한 걸 보면 말이다. 던바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여겼든, 실제 돌려 보니 우연히 맞아 떨어졌든 수많은 기업들이 150~200명을 기준으로 큰 조직을 분리해 운영하고 팀이라는 최소 조직을 5~10명 이내로 묶어 운영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다.


SNS상에서, 카톡에서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까지 아는 사람의 목록을 가진 오늘날 인싸들을 던바가 보게 된다면 기겁할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지위든, 실력이든 같은 레벨이 아니라면 그 사람과 안다는 사실이 인맥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보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 많다면 그 인맥은 허상이다.

S그룹의 L차장과 그 배경을 벗은 자연인 L의 인맥은 그 밀도와 성분이 다르다.


아닌데, 니가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못 맺어봐서 그래, 인간관계는 의리야! 내가 어려움을 겪거나 위기에 처하면 만사 제쳐두고 나를 돕기 위해 달려와 줄 죽마고우들이 있으니 든든하다고! 우리 친구 아이가.


이것저것 따질 것 없고 비교할 일 없는 20~30대의 청춘이라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그마저도 한두 번이다. 매번 반복되면 그냥 민폐다. 삶이라는 현실 앞에, 너와 나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 앞에 의리처럼 허망한 것도 없다. 최후에 이르러 구차하게 발동되는 의리 따위 필요 없을 만큼, 크고 단단한 '나'가 되는 일이 먼저가 아닐까?


최후의 카톡 친구 29명의 리스트를 열어놓고 또 한번 중얼거려 본다.


'내가 찾지 말고, 나를 찾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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