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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Jun 09. 2023

무직 is my life?

반백의 물건들 _ 2. AKG 블루투스 헤드폰

Music is my life ~~

CM송이었나 가요였나? 아무튼 음악은 내 삶의 전부라고 외치던 노래 마디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공감되지 않았는지 수십 년 인생에 작정하고 음악을 듣는데 시간을 쓰는 일은 딱히 없었다. 7~80년대생 치고 학창 시절 저마다 한 번씩은 빠져봤음직한 메탈이나, 하드롹, 팝 등은 물론이고 재즈나 클래식 따위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티비에 나오는 발라드나 아이돌의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정도였을 뿐.


회사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분노가 수시로 치밀어 오르던 그즈음, 공황증세와 역류성 식도염으로 몸과 마음이 땅콩 한 줌 마냥 쪼그라들었던 그 시절, 길을 걷다 문득 들려온 노랫가락에 마음속 무언가가 덜컥 떨어졌다. 아마도 가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부쩍 높아진 하늘은 이제 막 해가 저물어 황톳빛으로 물든 구름 사이로 저녁을 알렸고, 선선한 바람은 새 계절에 맞춰 색을 갈아입기 시작한 나뭇잎들 사이에서 불어 나와 두 뺨을 간지럽혔다.


분명 처음 듣는 노래인데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은 멜로디, 퇴근길 북적거리는 천호동 거리와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해 밝음과 어둠 사이 그 어딘가의 시간, 하필 낮동안 불편했던 마음까지 한데 뒤섞여,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더란 말이지. 마치 오다가다 처음 마주친 사람에게 통성명부터 시작해 나고 자란 사연을 훌훌 털어놓는 일처럼


이 노래!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스마트폰을 열어 검색을 시작했다. 혹여나 그 사이 끝나버릴까 싶어 앱을 열어 작동하는 시간이 초조하기까지 했으니. 스탠딩 에그의 '오래된 노래' 라고? 아, 이런 가수, 이런 노래가 있었어?


술 한잔을 마시고 취기가 오른 상태로 집에 돌아와 유튜브를 검색했다. 듬직하게 생긴 가수가 야외 푸르른 잔디 정원 위에서 스탠딩 마이크를 세워 두고 '오래된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 가수가 나윤권 이란 사실도 몰랐지. 그 풍부한 성량과 푸르고 탁 트인 야외에서 오는 시각적 청량감이 주는 쾌감이란... 음악이 지친 영혼을 치유해 줄 수 있는 묘약이란 사실을 깨달았던 그 밤.


"잘 밤에 무슨 노래야!"

면박을 듣고는 문득 헤드폰이 갖고 싶어졌다. 중고나라를 뒤져보니 마침 집 근처에 미개봉 AKG y50bt 제품이 나와 있었다. 5만 원. 헤드폰이고 스피커고 음향 기기에 대해 일면식도 없이 그저 삼성에서 인수한 AKG라는 브랜드 하나만을 보고 덜컥 구입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귓바퀴에 맞지도 않는 동그란 이어컵에 음질 역시 뛰어나다고 볼 수 없는 저가형 블루투스 헤드폰이었지만, 약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그래서 음악에 조예가 깊어졌냐고?


헤아려 보자면 한때 영화로 난리가 났던 퀸, 오아시스, 이글스 등 추억의 올드팝 몇 곡과 존레전드, 제이슨 므라즈, 브루노 마스, 마룬5, 아델, 테일러 스위프트 등 요즘 팝 몇 곡과 뜬금없이 듣게 된 닥터드레, 스눕독의 갱스터 랩 몇 곡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왈츠 no.2 등 누구나 알법한 클래식 몇 곡과 인생의 회전목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지브리 OST 몇 곡과 정태춘 최백호 송창식 등 90년대 치열한 어느 날에 통기타 음율이 어울릴 노래 몇 곡과 대금으로 연주된 비익연리와 우리 가락과 미국인 교수가 부른 가곡 봄처녀, 그리운 금강산 까지 그저 귀에 좋으면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으로 닥치는 대로 들어왔으니, 이런 무근본도 없을지 모른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 마니아고 광고인 박웅현은 클래식을 치켜세웠다. 영감과 창의적 생각의 발원인데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그 정도는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라는 뉘앙스를 느꼈다면 일종의 피해의식일까? 남들은 명반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들어도 내 귀에는 와닿지 않는 그런 음악들은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므로, 그저 내 맘대로 리스트를 만들어 닥치는 대로 들을 뿐. 챗 베이커가 어떻고 라흐마니노프 3번 피아노 협주곡이 어떻고 연주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어떤 피아노를 치느냐에 따라서 음 하나하나가 달라지는 맛이라던지 이런 지적 허영의 수준에 이를 자신은 도무지 없다.


막걸리 한잔에 뽕짝을 듣더라도 온몸에 소름이 돋고 마음이 샅샅이 풀어지는 순간을 경험하는 일. 삶이 턱까지 차오를 때, 두 귀를 완전히 감싼 헤드폰을 끼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몸을 맡기는 일. 그걸로 됐다.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장렬히 산화한 무명의 군인처럼, 구석에 처박혀 이어캡이 해지고 여기저기 몸체가 긁힌 5만 원짜리 AKG 헤드폰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네 덕에 무직 말고 뮤직이 내 삶의 일부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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