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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Nov 30. 2023

똘똘했던 중학생은 왜 수포자가 됐을까?

Environment _overall

어느덧 [밑 MEET]의 세 번째 키워드인 Environment 환경에 대한 이야기까지 왔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땅, 즉 물리적 환경은 평평하고 고른 상태로 안정적이어야 한다. 숨 쉬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공기와 물, 이 역시 오염되지 않은 맑고 깨끗한 상태여야 한다. 삶에 있어 이 세 가지 명제에 대한 중요성을 새삼 거론할 필요가 있을까?


직장인도 회사라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물리적인 환경이라고 하면 사무실이나 출퇴근 거리 따위 직장인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일컫는다. 최신식 건물에 통창 너머로 한강이나 청계천이 내려다 보이고 음이온과 산소가 뿜어져 나오는 쾌적한 사무공간, 안마기구가 놓이고 실내 정원처럼 가꿔진 쉼터, 특 1급 호텔에 버금가는 맛있는 구내식당 등 물리적 환경이 뛰어난 회사들은 이제 이야깃거리도 안된다. 전태열 열사가 분신으로 그 열악한 현실을 알릴 수밖에 없었던 수십 년 전의 노동환경에 비하면 이는 뭐 천지개벽 수준이다. 적어도 환기도 안 되는 골방에서 폐병 걱정하며 일하진 않는다.


물론 물리적 환경이 전부는 아니다. 앞서 'motivation 동기'를 다루면서 살펴봤듯, 외부요인에 해당하는 물리적 환경은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한 때다. 몇 개월만 일하다 보면 인도 시인 까비르의 '물속에 물고기가 목마르다 하여 웃는다' 시구절처럼 당연한 요소로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반대로 웬만한 불편함이 있어도 이 역시 금세 적응 된다.


문제는 정서적 환경이다.

정서적 환경? 그게 뭔데?

여기서는 '안전감' '소속감'의 두 가지 요소를 말한다. 모두 사람과 관계의 영역이다. 더 간단히 보자면 리더십과 팔로워십의 영역이다. 리더라고 해서 어떤 직위를 특정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직, 간접적 영향을 주는 사람을 리더라고 본다면 우리 모두 리더이면서 팔로워다. 오너, CEO 등 가장 높은 직위부터  이제 막 들어온 인턴신입까지 그 영향력의 크기와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서로서로 영향력이란 것을 주고받는다.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그 자체로 타인에게 있어 환경이 된다.


이 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정서적 환경, 안전감과 소속감을 만들 수 있을까? 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입학 후 수업 첫날, 나는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또다시 같은 반이 되고 심지어 옆자리에 앉게 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떠들고 있었다. 첫 시간은 다름 아닌 수학 시간이었는데 수업종이 울리고 자그마한 키의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다. 선생님의 첫인상은 날카로웠다. 양옆으로 쫙 째진 눈매와 콩자반만 한 검은자위, 사각턱, 뽀글뽀글한 파마머리가 특히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상황파악이 안 됐는지 여전히 웅성웅성 소란스러웠고 선생님은 교탁에 출석부와 짧은 몽둥이를 턱 하고 내려놓더니 교실전체를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훑기 시작했다.


"야! 너 일어나."

선생님의 첫마디는 요란하게 총성과 함께 발사되어 공기 속으로 퍼져나가는 산탄총처럼 순식간에 교실을 장악했다. 아이들은 그제야 잡담을 멈추고 일제히 교탁 쪽을 쳐다보았다.

"너 말이야 너"

선생님이 짧은 몽둥이로 가리킨 것은 바로 나였다.

"저? 저요?"

"그래 너. 일어나."

나는 옆자리 친구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선생님이 뚜벅뚜벅 걸어와 내 앞에 섰다.

"안경 벗어."

"네?"

"안경 벗으라고"

영문을 모른 채 오른손으로 안경을 벗은 순간

[짝~!]

별안간 눈앞에서 하얀 별이 튀고 오른쪽 뺨 전체가 통째로 사라졌다가 프라이팬에 달궈져 다시 붙여놓은 듯 작열감이 느껴졌다. 선생님이 따귀를 때린 것이다. 순간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선생님이 들어오셨으면 조용히 해야지!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던?"

그다음 장면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다시 자리에 앉았고 또 눈물을 멈추었는지, 어떻게 첫날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에 갔는지 따위의 기억은 통째로 사라졌다. 부끄러움, 억울함, 황망함, 뒤늦게 겨울철 호빵마냥 부풀어 오르는 듯했던 오른뺨의 얼얼함 따위 감각과 감정들이 캔버스 위에 총천연색으로 뒤섞여 뇌리에 각인됐을 뿐.


무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그날이 떠오르는데 그럴 때면 오른쪽 뺨이 다시금 화끈거리는 것 같다. 하필 중학교 입학 첫날의 기억이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는 신이라니. 그러고 보니 그 수학선생님의 인상은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최종 보스, 전투력이 53만이라는 변신 전의 <프리저>를 닮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안ㄱㅅ 선생님 잘 계시죠?)


지금이라면 인터넷이 발칵 뒤집힐 일 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사실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복장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엎드려뻗쳐 기합을 받고,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5바퀴를 돌고, 당구 큐대를 잘라 만든 정신봉?으로 엉덩이를 십 수대씩 후려 맞기도 했던 시절이니 뺨을 맞은 건 오히려 가벼운 축에 속할 정도.


그날 이후 수학 시간이 싫어졌다. 그 선생님만 들어오면 가슴이 뛰었다. 수업 내내 집중을 못했고 어떤 불안감과 불쾌감, 종내에는 지루함까지 온통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시간을 견뎠던 기억. 프리저쌤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체벌을 남발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조금만 떠들거나 졸거나 하면 어김없이 일으켜 세워 예의 그 싸대기를 날렸다. 숙제를 해오지 않거나 즉석 문제를 내고 정답을 맞히지 못하는 아이는 책상 위에 무릎을 꿇려 박달나무 몽둥이로 허벅지를 내려치곤 했다.


중1, 고작 13살인 아이들에게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나는 그날 이후 수학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던 것 같다. 중학교 3년의 기간 중 2년을 그 선생님에게 수학을 배웠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그 영향은 이어졌다. 다른 과목들에 비해 수학만은 고전을 면치 못했으니까. 한마디로 수포자가 된 것이다. 결국 수능시험에서도 지금으로 치면 약 3~4등급 정도를 받았는데 수학을 제외한 타 과목들의 성적이 상위 2~4%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 빌어먹을 수학이(그 선생님이) 인생의 발목을 거하게 잡은 셈이다.


물론 그 단 한 번의 사건이 수포자가 된 이유의 전부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문과형에 가까웠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렇게 변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랬던 것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확실히 국어나 영어 역사 사회 등의 과목이 더 편안하고 성적도 좋았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프리저쌤은 수학에 대한 한 학생의 호감도를 현저히 떨어뜨린 분명한 계기이자 핑계였음에는 틀림없다.




회사 조직에는 프리저쌤 같은 사람이 없을까?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모욕적 언행을 일삼고, 그것을 카리스마로 대차게 오인하는 마초적 경영진, 임원, 팀장, 차과장, 대리들 말이다. 아, 누군가 딱 떠오른다고? 그렇다면 심심한 위로의 말을 먼저 전한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 20대 중후반부터 50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황금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직장'이라는 환경이 온통 이런 인간들로 가득해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는 곳이라면? 매일 구조조정 이야기가 오가고, 함께 일했던 동료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권력자의 미움을 사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그런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면? 지옥문이 화알짝 열렸다고 봐야지.


성과니 성장이니 성취감이니 그런 더 고차원적인 이야기는 사실 그다음이다. 당장 내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에 일의 재미나 의미감을 찾기도 어렵다. 실력보다 누구의 사람인가?로 평가받고 행여 실력자에 찍힐까? 눈밖에 날까 말을 아끼고 행동을 단속하며 '가늘고 길게' 살아남는 일만이 유일한 가치가 된다.


일터는 자유로운 소통과 창의적 아이디어가 넘치는 활기찬 공론의 장이라기보다 살아남기 해 나를 다듬고 죽이고 눈치싸움 끝에 누군가에 줄을 설 것인가? 에 전념하는 전쟁터가 되고 그 안의 많은 이들은 불금과 주말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워킹좀비'로 전락한다. 기껏해야 '남들도 다 이러고 살아'라는 자기 합리화 속에 버티는 일이 전부다. 성장은 멈추고 그 어디에서도 불러주는 데 없는 '사회적 난쟁이'로 전락한다.


누구의 이야기인가? 나와 내 일터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두려움도 없이 내 이야기를 자유롭게 꺼낼 수 있으며 내가 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없는가? 나와 함께 일하는 리더, 선배, 동료, 후배들은 함께 하기에 괜찮은 사람들인가? 이들과의 관계는 상식적인가? 굴곡을 겪지만 그래도 '우리'라는 인식 속에 어떻게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인가?라는 질문에 답해보라. yes라는 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면 이거 야단 났다.


구글은 2012년부터 4년간 약 250여 개 팀을 분석해 '가장 성과가 뛰어난 팀은 어떤 특성을 가질까?'에 대한 답을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름하여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

4년간의 관찰과 분석 끝에 그들이 내놓은 결론은 우리의 예상과 상식을 완전히 빗나갔다. 뛰어난 인재? 탁월한 보상? 선명한 목표? 아니다. 최고의 팀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1순위 요소는 바로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었다. 그 다음을 신뢰, 조직구조의 투명성, 일의 의미 등이 뒤를 이었는데 이들 요소 역시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 상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무엇이 최고의 팀을 만드는가] 대니얼 코일 또한

"당신은 이곳에서 안전하다. 소속 신호는 늘 경계 태세에 있는 두뇌를 향해 위협을 느끼지 않아도 좋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두뇌는 이에 반응해 교류 모드(connection mode)로 전환한다. 심리적 안전이라 불리는 상태로 접어드는 것이다." 말했는데, 심리적 안전감이 최고의 팀을 만드는 핵심 요소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 아닌가?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 자체가 안정화되지 못하고 조금만 실수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환경이라면, 그 누가 제 일에 스스로 몰입하고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을까? 기대 이상의 성장과 성과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원하는 바 목표 근처에라도 접근할수 있을까?


어린 시절 추석날이면 어김없이 방영됐던 [머털도사]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나는 못 가요 이런 낭떠러지를 어떻게 가요~"

"웅. 이런 어찌 눈으로만 사물을 보느냐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야지!"

"마음으로 느끼라고? 마음에 무슨 눈이 있고 발이 있나요 뭐~"

"겁내지 말고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봐라"

"어? 잔디밭. 잔디밭이잖아요~"

마법으로 낭떠러지를 잔디밭으로 바꾸었건, 마음의 눈으로 다르게 보는 마인드 셋을 가르쳤건, 리더는 구성원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덜어줄 안전망을 만들고 몰입을 방해하는 장애요인을 제거해 과감하게 도전하도록 용기를 북돋는 사람임을 감안하면 누더기 도사야 말로 참 스승이자 리더라고 부를만하다.

 

트리거는 확실히 리더들이 쥐고 있다. 뭘해도 괜찮으니 일단 시도해보라며 용기를 북돋고 실패해도 '우리'라는 소속감 속에 툭툭 털고 일어나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성장의 디딤돌로 활용케 하는 일.


[두려움 없는 조직]의 저자 에이미 애드먼슨은

"리더가 마치 모든 정답을 안다는 듯이 군림하는 분위기에서는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반면 겸손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무엇이든 배우려는 리더와 함께라면 구성원은 자연스럽게 안정감을 느끼고 더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게 된다."

라고 말했는데, 일터라는 환경조성에 절대적인 리더의 역할을 재차 강조한다.


30여 년 전, 중학교 1학년 생에게 따귀를 날리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프리저쌤의 행동은 무엇을 위한 조치였을까? 분명한 건 학생들에게 수학이라는 과목의 재미를 느끼게 해 주어 잘하도록 만들어야겠다는 본질적 가르침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리더, 선생님이 있는 조직, 교실의 직장인 학생이라면 참으로 불행하다. 그런 사람 밑에서 일하거나 공부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내가 그런 리더나 교사는 아닌지 가만히 멈춰 서서 내 주변을 찬찬히 되새겨 볼 일이다.


밑MEET 의 세 번째 키워드, Environment 환경의 이야기로 본격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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