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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Aug 26. 2023

우린 어쩌다 길 에서 칼 맞을까 걱정하게 됐을까?

나쁜종자 Bad seed _4. 지피지기 백전불태

요즘 뉴스보기가 겁난다. 핵오염수 방류 논란부터 대낮 도심 묻지마 칼부림까지 일반 소시민 입장에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것 같다. 특히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범죄는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쇼핑몰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다 보니 길을 걷다가도 조금만 수상한 사람이 보일라치면 멈칫거리게 되더란 말이지. 어디 그뿐인가? 인터넷상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상식밖의 갑질을 일삼는 진상들이 넘쳐난다. 인간혐오가 생길 지경이다.


세상이 갈수록 흉흉해지는 탓일까? 인간이란 원래 악한 존재이기 때문인 걸까? 그렇다면 누구나 그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뜻일까? 매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며 가볍게 목인사 하던 이웃이 혹시 그런 사람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하면, 이래서야 도무지 맘 편히 살 수 없다.


나는 성선설도 성악설도 동의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선하게 태어나고 누군가는 악하게 태어난다는 랜덤설이 보다 합리적이다. 그 비율은 대략 9.6 vs 0.4 정도로 본다. 앞선 글에서 다뤘던 전사유전자를 가진 호전적인 주폭을 악으로 볼 것이냐?에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상습적으로 음주 운전하는 행태의 주범임을 감안해 본다면 선vs악 비율은 대략 9:1 정도로 확대된다. 10명 중 1명꼴이란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과 악은 칼로 무 자르듯 천사와 악마, 절대선과 절대악을 나누는 개념이 아니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양심'이라는 감정적 애착과 책임감, 의무감을 가졌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다.


애초에 타고난 특질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다고 믿지만 그 특질이 환경에 의해 특정 방향으로 발현되거나 강화되거나 약화될 여지는 충분하다. 애초에 선하게 태어났어도 자라온 환경이 녹록지 않으면 나쁜 짓을 저지를 수도 있고 애초에 악하게 태어났어도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자라왔다면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평범하게 살다가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일에 100%의 확률, 절대 진리란 없으므로 예외는 언제든 존재한다.


[사이코패스 뇌과학자]의 저자이자 스스로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타고났음을 고백한 제임스 팰런 박사는 사이코패시 발현이 이른바 세 다리 론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대뇌의 감정처리결함, 전사유전자, 불우한 환경]의 세 요인이다. 우리가 흔히 뉴스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접해온 끔찍한 범죄자, 진짜 악마는 이 삼박자를 모두 만족시켰을 때 비로소 등장한다. 각각의 경우를 모두 만족하는 경우는 확률적으로 극히 드물기에 실제 삶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이들을 마주칠 확률은 의외로 희박하다. 묻지마 칼부림 난동이 뉴스에 나오는 그 자체로 뉴스에 나올만큼 드문 사건이란 반증이기도 하다.


제임스 팰런은 실제로 자신이 사이코패스의 특질과 전사유전자를 모두 타고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사랑과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자란 덕에 그 특질이 범죄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는 실제로 범죄자가 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성공한 의사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동료,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를 평범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신뢰하지 않았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점은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주변에 나타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류가 집단생활을 해온 이래로 꾸준히 일정비율로 존재해 왔고 지역과 문화를 떠나 어디에나 있었다.


1950년대 개봉된 [The Bad seed]는 현대적인 사이코패시라는 성격적 결함의 개념을 최초로 대중에게 알린 상징적인 영화다. 이 책(매거진)의 타이틀인 Bad Seed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 10살 로다는 전형적 사이코패스다(물론 현대 정신의학에서 18세 이하 미성년자에게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 반사회적 인격장애 진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금발에 귀여운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어린 소녀가 하는 짓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입이 떡 벌어진다. 영화 속 캐릭터라고 치부하기엔 주변 어딘가에 그런 인물이 실제로 있을 법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로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가장해 거짓말을 하고 연기를 해서 모든 사람을 속인다. 로다의 악행은 점점 심해지더니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른다. 메달을 갖기 위해서다. 메달을 주지 않는 친구를 밀어 물속에 빠뜨리고 허우적대며 살려달라 손을 내미는 친구를 야멸차게 외면한다. 친구의 죽음에 대해 캐묻는 엄마와 선생님에게는 천역덕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눈물까지 펑펑 쏟는다. 딸의 살인을 알게 된 엄마가 추궁하자 자신의 잘못이 아니고 메달을 주지 않은 친구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떠넘긴다. 영화 말미, 한밤 중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친구를 죽이면서까지 갖고자 했던 메달을 건지러 사건의 현장으로 향하는 로다의 모습은 어린 악마가 그 자체다.


그렇다고 로다의 가정환경이 어려운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해군 장교인 아버지와 교양 있는 상류층 부인인 엄마 사이에서 각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설정에서 환경과 관계없이 타고난 기질을 발화할 가능성이 높은 사이코패스의 특질을 포착하고 새삼 놀란다.


지역과 문화에 따른 차이도 크지 않다. 인류심리학자 제인 m 머피는 알래스카 이누이트족의 '쿤랑게타'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해야 할 바를 알면서도 하지 않는 사람. 거짓말을 반복하고 사람들을 속이고 물건을 훔치고 여자들을 농락하는 문제아를 뜻하는데 이누이트족은 쿤랑게타를 교화 가능성이 없는 존재로 단정한다. 이들이 쿤랑게타에 내리는 조치는 벼랑에서 밀어 죽이는 것뿐이었다. 쿤랑게타를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바꿔 불러도 사실상 어색함이 없는 이유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일삼고 극단적인 결과주의에 빠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해 내려는 사람들의 광기에서 그 정체를 의심해 볼 수 있다.


날마다 쏟아지는 악인과 그 악행에 대한 뉴스, 영화와 드라마 소설 속에 등장하는 끔찍한 괴물들의 존재는 우리를 움츠려 들게 하고 정상적인 관계를 위축시킨다. 이들은 분명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런 존재가 있음을 인정하되 세상이 온통 악하거나 혹은 선하거나 어느 극단적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당연한 진리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방심해서도 안되지만 괜한 두려움에 떨 필요도 없다. 대다수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상식을 가진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다. 때론 실수도 하고 예기치 않은 잘못도 저지르지만 곧 후회하고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을 구분해내려면 검증된 근거와 충분한 경험적 확신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함부로 낙인을 찍어서도 안된다. 누군가로 인해 내 삶이 유독 괴로워질 때 주어진 증거들을 교차검증 하며 정적 확신을 가지고 스스로를 보호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그저 나와 스타일이 다를뿐인 평범한 이웃을 섣불리 그들로 단정해 불필요한 오해를 낳고 감정 낭비하는 일은 무엇보다 피해야한다. 대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태라 했다. 그들은 어떤 비율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지 그들의 본성은 어떠한지 제대로 알아야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이들과는 처음부터 엮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어쩌다 얽혔으면 빨리 알아채고 그 즉시 도망쳐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맘 편하게 살아도 좋다. 경계하고 조심하는 것이 나쁠 건 없지만,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내 이웃에까지 괜한 거리를 둘 필요는 없다.


그들은 분명 티가 난다. 다만 자세히 봐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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