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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Sep 27. 2023

15세 케빈은 왜 아빠와 여동생을 활로 쐈을까?

나쁜 종자 Bad Seed _ 5. 케빈에 대하여

주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 결말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즈라 밀러의 눈빛은 내 호흡을 잠시간 멈추게 한다.


극 중 인물이 아니라 실제 이런 존재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그의 연기는 현실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모든 창작물(영화, 드라마 등) 속 악인을 통틀어 첫 손에 꼽는 이유다.


에바(틸다 스윈튼 분)는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여행작가였다. 스페인 여행 중 남편을 만나 뜨거운 밤을 보내고 예기치 않게 임신을 해 원치 않던 아이를 갖게 된다. 케빈을 낳고 망연자실한 현실 속 에바의 모습은 여행에서의 에바와 선명히 대비되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암시하는 듯하다. 관객들 역시 이 장면부터 낯설고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극한 고통 속에 아이를 출산하지만 울음을 터뜨리는 새빨간 덩어리를 부둥켜안고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리는 '모성'의 클리셰에 비하면 낯설고도 낯설다. 슬슬 '저 엄마 별로네, 모성애도 없나?'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아기 케빈 역시 뭔가 남다르다. 젖먹이 시절 시도 때도 없이 울어재껴 에바가 유모차를 공사장 한복판에 세우고 차라리 공사소음으로 위안을 얻는 듯한 장면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앞으로 이 영화의 줄거리가 충격으로 점철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하듯.


갑작스러웠고 더 정확히는 원치 않았던 임신과 출산으로 여행작가로서 성공적이었던 자신의 삶이 멈추게 됐다는 에바의 상실감만큼은 이해의 여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엄마로서의 의무감 역시 완전히 놓지 못한 상태로 케빈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애써보지만 에바의 진짜 속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엄마를 향한 케빈의 엇나감은 점점 더 노골적이 된다. 에바 역시 뭔가 남다른 아들을 향해 "난 네가 태어나기 전 더 행복했어. 너도 알지?'라는 차가운 말을 불쑥 뱉으며 불편한 기류를 부채질한다. '저러니 애가 비뚤어지지'라는 의심을 충분히 살만하다.


아빠 프랭클린은 아이의 교육에 좋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이사를 결정하고 케빈의 가족은 교외에 새 보금자리를 얻는다. 에바는 이사를 계기로 엄마로서 새롭게 거듭나리라 다짐하며 자신의 방을 정성스레 꾸미지만, 케빈의 엄마에 대한 증오는 멈추지 않는다. 마치 엄마만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세계지도와 여행 사진들로 꾸민 에바의 방에 물총으로 물감을 뿌려 난장판을 만들고 그 물총을 짓밟아 버린다.


한술 더 떠 6세가 될 때까지 기저귀를 차고 다니며 일부러 배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해 엄마를 분노케 한다. 그 과정에서 케빈의 팔이 부러지는 사고가 일어난다. 에바는 당황하지만 케빈은 아이답지 않게 팔이 부러지는 고통에도 울지 않고 엄마를 쏘아본다. 두 눈은 마치 먹이를 눈앞에 둔 야수의 그것과도 같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아들을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에바는 처음으로 케빈에게 진정 어린 사과를 하며 마음을 열고 케빈 역시 그 순간만큼은 아이다운 응석을 부리며 엄마의 품에 안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모자간의 짧은 교감은 어쩌면 앞으로 벌어질 끔찍한 사건들에 대한 예고였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여동생 실리아가 태어나고 엄마 에바의 두려움은 더 커진다. 자신에게 쏠려 있던 케빈의 증오가 언제 실리아를 향할지 모르기 때문. 케빈은 에바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겉으로는 아빠 프랭클린과는 둘도 없을 부자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동생 실리아를 대할 때는 엄마의 신경을 의도적으로 자극한다. 급기야 실리아가 키우던 기니피그를 죽여 배수구에 넣어놓는가 하면 배수구 뚫는 약품을 방치해 실리아의 한쪽 눈을 멀게 만든다.


물론 케빈의 소행이라는 직접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모든 정황이 케빈을 가리키고 있다. 특히 에바와 프랭클린이 실리아의 의안을 넣는 문제를 상의할 때 평소 먹지도 않던 리치(눈동자와 비슷하게 생겼다)를 깨물어 먹으며 과즙을 튀게 만드는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오소소 소름을 돋게 만든다.


러닝 타임 내내 에바와 케빈 사이를 부유하던 긴장감은 부침을 거듭해 영화의 결말이 가까워지며 폭발한다. 프랭클린과 에바의 이혼 이야기를 엿듣게 된 케빈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분주해진다. 인터넷을 통해 커다란 자물쇠를 구입하고 그동안 연습해 왔던 활과 화살을 들고 어디론가 향한다.


케빈의 학교. 강당에서는 동급생들이 응원 연습 중이다. 철커덕. 노란색 자물쇠가 출입문을 봉쇄하고 활기찬 연습 구호는 끔찍한 비명으로 바뀐다. 동요하는 사람들, 사이렌소리, 핼러윈 데이를 앞둔 분장한 사람들의 어지러운 몸짓, 흔들리는 카메라워크는 케빈의 학교에서 사고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차를 몰아 학교로 향하는 에바의 불안한 예감을 증폭시킨다.


수십 명의 학생을 활로 쏘아 살해한 범인은 다름 아닌 아들 케빈. 케빈이 경찰에 끌려가며 에바를 향해 쏘아 보내는 서늘한 눈빛은 과연 무슨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온 에바는 또 한 번의 끔찍한 비극을 눈앞에 둔다. 프랭클린과 동생 실리아 역시 화살에 맞은 채 정원 잔디밭 위에 숨져 있고, 스프링쿨러는 물을 사방으로 뿌려대고 있다. 에바의 세상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순간.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2011년 개봉된 이래 숨겨진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시각적, 심리적 코드들과 '희대의 살인마가 된 케빈을 그렇게 만든 건 누구의 탓인가?'라는 책임 공방과 도무지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케빈의 범행 동기에 대한 분분한 해석으로 여전히 핫하다.


원제목이 We need to talk about Kevin 인 만큼 영화를 수차례 반복하며 보는 동안 '케빈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궁금증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가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라는 사실이다. 그거야 뭐 다 아는 사항 아닌가?라고 하기엔 뭔가 개운치 않은 해석들이 많다.


2011년 칸 영화제 인터뷰에서 케빈 역을 맡은 에즈라 밀러는

"모성애, 아동발달 이런 것들은 엄청나게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예요. 그리고 누군가 잘못되거나 방황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누가 에바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동시에 우리 어깨에도 분명한 책임이 있는 거잖아요."

라고 인터뷰에서 답했는데, 케빈이 소시오패스가 맞다면 에즈라 밀러가 말한 대로 엄마인 에바의 양육방식은 1차적 원인이 아니게 된다. 온전히 모성이 부족한 엄마 탓인가?라는 논쟁이 생명력을 잃는다는 말이다.


소시오패스(=사이코패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이미 내 아이가 평범한 아이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무리 달래도 그치지 않는 울음소리, 반려동물에 대한 잔혹함, 거짓말, 절도, 폭력 등 보통의 아이들 장난이라기엔 선을 한참 넘는 반사회적 행동들이 마치 재채기하듯 수시로 돌발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케빈이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이 특질은 마치 복사해서 붙여 넣기를 한 듯 고스란히 묘사되고 있음이 그 증거다.


학계는 아이들에게 소시오패스라는 서슬 퍼런 딱지를 붙이지는 않는다. 정신분석의학회에서 내놓는 DSM-Ⅴ(Diagnosis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개정 5판)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들에게는 '품행장애'라는 별도의 진단명을 붙인다. 품행장애는 다른 사람의 기본 권리를 침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을 위협하거나 때리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나 동물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는데 이는 소시오패스의 특성과 고스란히 연결된다.


그렇다고 품행장애 판정을 받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정상인이 된다는 뜻도 아니다. 치료나 교육을 통해서 좋아질 수도 없다. 스스로 환자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누구보다 정상이며 심지어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과장된 자기애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소시오패스에 대해 설명했듯 https://brunch.co.kr/@hurator/381

이들은 타인과 공감하고 애착을 나누는 대뇌의 시스템 자체가 결여된 채 태어난 존재들이다. 배선 자체가 안되어 있으니 전기불을 켤 수 없는 상태와 같다.


온전히 유전자 때문이냐?라고 한다면 이 역시 no다. 육아 환경 역시 소시오패스(사이코패스)의 발현에 영향을 미친다. 유전자가 씨앗이라면 환경은 크기와 열매다. 타고난 성향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좋은 육아 환경이 유전자의 발현을 최대한 억제해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도록 관리할 수도 있고, 반면 열악한 환경이 트리거가 되어 희대의 살인마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요는 에바의 모성이 부족했고, 자신의 삶이 더 중요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진심 어린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일련의 잘못이 전적으로 악인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굳이 그녀의 잘못일 가능성을 찾자면 케빈이 갓난아이였을 시절, 충분한 사랑과 교감을 나누지 못한 점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신생아들은 태어나서 약 1년여간 부모와의 교감, 예컨대 시선, 접촉 등을 통해 덜 자란 뇌의 배선을 만들어가는데 이 시기를 놓치면 뇌가 정상적으로 배선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모두가 케빈처럼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 역시 이를 증명한다. 사이코패스 연구의 권위자인 로버트 D. 헤어 박사에 따르면 사이코스패스가 아닌 범죄자의 경우 가정환경이 초범 시기 및 심각도와 연관이 있어 대략 15세~24세 사이에 법정에 서게 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이코패스의 경우 가정환경이 어떻든 일관되게 평균 14세에 법정에 서는데 이는 초범의 특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영화의 숨겨진 코드를 모두 맞게 해석할 의지도 능력도 내겐 없다. 다만 케빈은 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찾아본 결과는 나름 명료했다. 케빈은 그냥 악인인 거다. 생각하는 하이에나다. 생선가게를 맡은 고양이다.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이다.


마지막 장면, 에바와의 면회에서 "예전에는 그 이유를 아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모르겠다"라고 말한 맥락 역시 이와 같다. 그런 종자로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저 그뿐. 이들에게서 이유를 찾으려 하지 말라. 내 주변에 케빈 같은 종자가 있다면 충고한다.


즉시 도망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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