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릭스 leex Jul 05. 2024

쫄지마. 그냥 처음 입사하는 것뿐이야

Ⅰ장. 直격 _ Overall

"축하합니다. 최종합격하셨어요. 준비사항은 이메일로 블라블라..."


해가 저무는 삼성동 테헤란로에서 

최종 면접 합격 전화를 받았때를 기억해?


동기들은 대부분 졸업 전에 제 길을 찾았는데

게으른 데다 현실감도 없었던 너는 

발등에 불 떨어진 듯 뒤늦게 취업을 준비했지

대학원을 간다 어학연수를 간다 

우왕좌왕하다 말이야


면접도 여러 번 봤고 

고작 2:1 경쟁률의 최종면접을 뚫지 못해

물먹은 게 몇 번이었는지


그렇다고 딱히 눈이 높았던 것도 아니야

대기업만 고집하지도 않았고


될 듯, 될 듯

애태우던 시간이 1년이 넘어가면서

자존감도 떨어지고 거의 자포자기 심정이었을 즈음

한가닥 희망의 동아줄이 붉은 노을을 뚫고 내려왔던 거야


근사한 정장을 입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사원증을 목에 걸고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를 들고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이제 나도 저 사람들처럼 

출근하고 퇴근하는 직장인이 됐다는 안도감에

왈칵 마음이 놓였어


기억하지? 


그러다 입사일이 다가올수록 

잘할 수 있을까? 쫄았지 뭐야


무려 21년 전의 그날.

새벽 몇 시에 일어나 어떻게 첫 출근을 준비를 했고

첫 셔틀을 어떻게 타고 내렸는지

색은 바랬지만, 그때 순간이 선명히 박혀 있는 

흑백필름처럼 기억해 


셔틀에서 내려, 처음으로 사원증을 출입구에 찍고

등뒤로 거대한 아치 모양의 입구를 뒤돌아보며

박스형의 반도체 공장들이 즐비한 출근길을

수백 명의 사람들(아, 이젠 동료라고 해야 하나?)

과 함께 걸었지

새로 맞춘 양복과 넥타이를 매고 빳빳한 새 구두를 신고


11월 초 초겨울의 빳빳하고도 쨍했던 그날의 공기, 

건물에 들어섰을 때의 냄새와 온도,

안내를 해주던 인사팀 선배의 손짓과,

호기심 어린 사무실 사람들의 시선 또한 

잊을 수 없어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왜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생각하는지 알아?


새로움이 없기 때문이래


하루하루는 긴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1년, 2년, 5년이란 시간이

훌쩍 흐른 것 같거든


나이 들수록

인상적이거나 강렬한 감정, 

이를테면 

놀라움, 두려움, 떨림, 경이로움 따위를 느낄 여지가

많이 없기 때문이래


처음이자 생소한 경험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는

1~20대 청춘의 시간은 그래서 하루하루는 짧은 듯 보이지만

그 시절 전체로 보면 길고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남는대


길거리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넘어져 본 사람은 알아

넘어지는 그 시간이 두 세배는 천천히 흐른다는 것을

아픈 것보다 X 팔린 게 더 크다는 것을


첫사랑에 빠진 사람은 알아

너무나 내 스타일인 이상형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만 보이고 시공이 정지한 듯 느껴진다는 것을




앞으로 인생이 루즈해질 때

언제든 머릿속에서 되돌려 볼 수 있는

강렬한 첫 출근의 기억을 갖게 된 걸 축하해


우리는 앞으로 

신입의 '네 가지의 격'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볼 거야


이제 첫 번째 문을 열었을 뿐

더 많은 미지의 문들이 우리 앞에 놓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때로는 그 문 너머에 벼랑 끝이 기다리거나

끝을 알 수 없는 깜깜한 터널이 놓여있을지도 모른다는

각오쯤은 되어 있어야겠지?


그때 이야기가 

누군가에 밧줄이 될지, 후레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기를 바래


그 첫 번째는 '격'

곧음. '자신을 잃지 않고 나를 나대로 세우는 법'

에 대한 이야기야


생각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몰라

더 놀라운 건 그렇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른다는 거야


자기 자신쯤은 잘 몰라도

누군가 정해놓은 성공의 길을 따라

높은 점수를 받고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만 있다면

성공한 엘리트로 추앙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특히 회사라는 이익집단내에는

차갑고 샤프한 머리를 가졌지만, 

마음 한구석이 텅 빈 엘리트들이 즐비해


그들은 끝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승승장구 높은 자리에 올라, 그들이 추앙받아왔던 방식으로 

결과를 좇고 사람들을 대해왔지


그들이 지난 시간 이룬 업적은 나름 유효했어

돈이 힘이자 권력인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양극화와 극단적 결과지향주의, 인간의 부품화라 따위

갖가지 부작용을 불렀지만,

그래도 양적 성장이라는 확실한 열매를 손에 쥐었으니까


그런데, 하루아침에 시대가 바뀌어버렸어

팬데믹으로 새로운 형태의 일하는 방식을 경험했고,

AI와 로봇이 등장했고, 

인간과 환경,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보다 고차원의 가치를 사람들이 추구하기 시작했어


고객은 '가치소비'에 열광하고

노동자는 '가치노동'에 눈을 떴어


다시, 

인간이 중심으로 떠오른 셈이야


이런 시대에 차가운 머리와 텅 빈 가슴을 가진

엘리트의 유효기간은 이미 종료된 지 오래야


나는 뭘 좋아하고 뭘 할 때 가슴이 뛰는지,

남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 

바로 내가 직접 쓴 나만의 대본(Self script)으로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는 삶


물건의 질과 서비스의 수준이 아니라, 

기업이 추구하는 철학과 존재의 이유 따위가 궁금해졌어

그리고 마침내 그런 기업을 찾으면 

스스로 덕질을 하며 열광하기에 이르렀지


이런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뭘까?

바로 나를 제대로 아는 일이야

이는 '자기 인식'과 '자기 통제' 로 가능해


'자기 인식'은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내면의 욕구, 기질, 감정 따위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이야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싶겠지만

우리가 듣고 겪고 믿어온 것들이 얼마나 주관적으로

왜곡되고 변질될 수 있는지 그 선명한 증거들을 보게 될 거야


'자기 통제'는 

객관적 자기 인식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음을 전제로

내면의 작용에 따라 어떻게 스스로를 적절히 컨트롤하고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고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일이야 


이는 궁극적으로는 타인과의 관계를 맺거나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사회적 관계에 반드시 필요한 단서가 될 거야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지, 

얼마나 오류 투성이인지, 

얼마나 완벽하지 못한 존재인지,

그리하여 결국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구나

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거야


그동안 타인의 대본에 따라 사느라

잊고 살았던 진짜 나를 찾고 

내 대본(Self script)을 쓰는 연습부터

시작하는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신입의 직격(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