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장. 織격 _ 공감관리 1_ 감정이입
"너 혹시, T야?"
사무실에서도, 카페에서도, TV예능에서도
여기저기 들려오는 통에 MBTI의 여전한 인기를 새삼 실감하는 중이야
MBTI는 꽤나 과학적인 성격진단툴로 보이지만, 사실 심리학자 등 전문가 사이에서는 '정교한 중국 포춘쿠키' 취급을 받는 유사과학에 가까워. 신뢰성, 유효성이 매우 낮은데, 응답자의 39~76% 사이의 사람들이 불과 5주 만에 재검사할 때 다른 유형으로 나오는 데다 측정 항목도 예측동력이 없고 일반화하기 힘들기 때문이야
내 경우만 해도 처음엔 INFP였다가 또 언제는 INFJ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E성향이 절반에 가까워질 때도 있고 일관성이 없긴 하더라고
요즘 인기 있는 '나는 솔로' 같은 예능에 'T는 절대로 안된다'는 자칭 F 출연자가 나오는가 하면, INFP 등 특정 유형을 콕 찍어 절대 채용 하지 않겠다 공언하는 용감한 기업도 생기는 걸 보면, MBTI 과몰입 현상이 심해지는 건 아닌가 걱정될 지경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 자기밖에 모른다는 'mememe세대'까지 등장한 '大개인주의' 시대에 타인의 공감능력에 대해 이렇게나 관심이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싶어서야.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의 감정에 안테나를 세우고 살피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뜻일 테니 말이야
보통의 인간은 내면을 살피고 타인에 감정이입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란 게 있어. 인간관계에서 공감능력이 중요하다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공감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야. 스펙트럼이 있다면 이런 모양일 거야
공감능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문제적 인간도 있고 성인군자 수준의 인격자도 있지. 이런 양극단 소수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적당한 공감능력을 가지고 이런저런 실수도 하고 잘못을 하면 후회도 하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며 살아갈 테지
이 스펙트럼에 속해 있기만 한다면 누구든 공감능력은 강화되거나 약화될 수 있어. T라고 해서 공감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야. 사실과 팩트, 데이터에 기반한 좌뇌적 사고가 상대적으로 발달해서 감정 그 자체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응하는 정도가 조금 떨어진다 로 보는 게 타당하지
T의 공감은 '인지적 공감'이고 F의 공감은 '정서적 공감'이라고 일도양단하듯 구분해서 보는 시각도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해. '인지적 공감'은 공감능력은 없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배우고 익혀서 마치 AI나 로봇처럼 흉내를 낸다는 의미이고, '정서적 공감'은 타인의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 속 감정을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그것처럼 반응할 수 있다는 의미이거든
누군가 정말로 '인지적 공감'밖에 할 수 없어 보인다면 한가하게 T냐? F냐?를 따지며 아이스브레이킹이나 할 문제로 끝나지 않아. '소시오패스'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지
Out of spectrum 영역에 위치한 미지의 존재. 공감능력, 양심이라곤 1도 없는 주제에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본성을 지닌 '생각할 줄 아는 하이에나' 바로 그 종족 말이야
이들은 전체 인구 중 약 4~5% 비율로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어. 이 말을 듣고 있는 여러분 10명 중 9명 이상은 평범한 공감능력을 가진, 상식이 통하는 지구인이라는 뜻이기도 해
샐리-앤 테스트(Sally-Ann test)라는 유명한 실험이 있어
만 5세 이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형극 실험이야. 샐리라는 인형과 앤 이라는 인형 앞에는 천으로 덮인 바구니가 각각 놓여있어. 샐리의 바구니 안에는 구슬이 들어 있지. 샐리가 자리를 뜨자 앤이 샐리의 바구니에서 구슬을 꺼내 자신의 바구니에 집어넣고 샐리가 다시 돌아와 구슬을 찾는 상황극을 연출한 후 아이에게 질문을 해
"샐리는 자신의 구슬을 어디에서 찾을까?"
아이는 앤의 바구니를 가리켜. 자신이 구슬의 행방을 알고 있으니 샐리도 알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만 5세 이전의 아이들은 타인이 자신과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Perspective taking(관점획득)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야
대략 만 5세가 지나면 아이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관점이 생기고 이는 타고난 공감능력을 더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해. 이른바 사회화가 진행되는 거지
문제는 자연스러운 공감의 진화가 어느 순간 멈추기도 하고 심지어 퇴화하기도 한다는 점이야. '높은 자리에 오르면 보이는 게 다르다'라는 말을 들어봤지. 평소 공감도 잘하고 주변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던 사람이 직책을 맡은 순간,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돌변하는 일이 잦은 이유
뇌과학이나 심리학등 학계에서도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공감능력은 떨어지고 윤리성과 도덕성은 옅어지지만 자기 확신은 올라간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지. 즉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메타인지'가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는 데다, 지금의 위치 그 자체가 지난 행적의 성공을 보여주는 '증거'로 작용해 내가 맞다는 '인지편향'이 강해지기 때문이야
너무 많이 알아서 다른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상태, 즉 '지식의 저주'에 빠지는 일과도 일맥상통해
MBTI를 묻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논란도 많지만 MBTI열풍은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을 제대로 알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해
다만, "너 T야?"라는 질문이 '이런 사람은 피해야겠다'라는 스크리닝의 목적이 되어선 곤란해. 유사과학 MBTI로는 정말로 공감능력이라곤 1도 없는, '인지적 공감'밖에 할 줄 모르는 문제적 존재를 판별해 낼 수도 없을뿐더러 그저 나와 다를 뿐인 평범한 사람을 상종 못할 문제적 존재로 오해해 괜한 분란을 조장할 가능성만 높아지니까
한편,
"그래 나 T다. 공감능력 없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대문자 T들의 과도한 이성중심 자기 확신도 위험해 보여. 상대적으로 40대 이상, 고위직 남자들 중에 많은데, 그 본심에는 '정서 결여'를 대놓고 드러냄으로써 스스로를 '이성적인 사람' '스마트한 엘리트'로 포지셔닝하려는 속셈도 읽혀.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깜짝 놀랄 일이야. 공감의 스펙트럼에 속한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자기 고백이거나 세계최초의 인간 AI 출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지
앞서 인구통계학상 비율을 살펴봤듯,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대다수는 상식 수준의 공감능력과 감정, 양심을 가진 평범한 존재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아. 겉으로 보기에 무뚝뚝하고 감정적으로 메마른 사람처럼 보이더라도,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는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감지하고 느끼는 '정서적 공감'이 반드시 잠재되어 있다는 뜻이지. 어떤 이유로 그 원석이 지금까지 미처 발견되지 못했고 보석으로 강화될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야
나는 공감능력이 부족해 뭐 어쩌라고?라는 마인드로는 평생 그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어. 관계에 있어 뭔가 문제가 있다 여겨진다면, 머릿속에 공감의 스펙트럼을 그려놓고 나는 어디쯤 위치해 있는가?를 들여다보는 습관을 가져봐. 타인의 입장을 직접 겪어보는 일이야 말로 공감능력 강화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만약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높은 자리에 오르면 보는 것이 달라진다
"J팀장 그렇게 안 봤는데 팀장 되고 사람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더라고"
일반 팀원 시절엔 인간적이고 온화하고 타협과 대화를 좋아했던 사람이 직책을 맡은 순간 성과중심적이고 공격적이고 일방적인 데다 권력지향적이 되는 경우는 얼마나 잦을까? 그리고 그렇게 돌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높은 자리에 오르면 보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야. 권한은 물론 책임의 범위가 커지기 때문이기도 하지. 이런 일은 생각보다 잦고, 우리 역시 어떤 자리에 올랐을 때 지금과는 어떻게 바뀔지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해
직책을 맡기 전에는 뭘 하든 지붕 같은 존재가 있어 한 발 물러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면, 직책을 맡은 이후로는 스스로 지붕이 되어 위로부터의 오더를 직접 받아내야 하는 입장에 처하다 보니 관점 자체가 윗선에 쏠릴 수밖에 없어.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부하직원, 동료에 대한 관점은 자연 옅어질 수밖에
그 과정에서 Perspective taking 그러니까 만 5세 이후 자연스레 터득하는 '타인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관점획득이 부하직원과 동료의 방향에서 일종의 퇴행을 겪는 것과도 같아
한마디로 높은 자리에 올라 보이는 게 달라졌지만 지극히 경쟁지향적인 그들만의 리그에 매몰되고 차츰 동화되면서 그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야. 특히나 올라갈수록 설자리가 좁아지는 뾰족한 피라미드형 구조인 우리 기업 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성과지향적이 되고 권력지향적이 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J팀장 그렇게 안 봤는데 팀장괴도 사람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더라고"라는 말이 자연스레 돌게 되는 셈이야. 애초에 그런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았던 사람의 변화는 특히 더 두드러져 보일 수밖에
변화 자체를 부인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어.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납득하지 못할 수준으로 돌변한다면 당사자 개인은 물론 조직 전체에도 결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없어. 이해 가능한 선에서 자신의 변화를 모두에게 납득시키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야
바로 "높은 자리에 오르면 보이는 게 달라진다"라는 명제를 절대로 잊지 않는 거야. 윗선 말고 부하직원, 동료들과 소통할 때 늘 그 명제를 되살려 내가 지금 미처 못 보고 있는 건 무엇인가? 를 반문하고 스스로의 내면은 물론 그들을 통해 들을 수 있어야 해. 위로 한 껏 쏠려 천착화 되기 전에, 수시로 두 눈을 내려 주변과 아래를 내려보고 일반 팀원이었을 때의 감각, 공기, 무드를 되살려 보는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해
"너 혹시 T야?"라고 누군가 묻거든 가만히 멈춰 서서 곰곰이 그 질문의 이유와 그에 대한 답을 찾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