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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Sep 10. 2024

[신입의 직격] 내가 찾지 말고, 나를 찾게 하라

Ⅱ장. 織격 _ 관계관리 1_ 라포(rapport)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계획 대로 되는 게 없어


보이 그룹 TWS(투어스)의 타이틀 곡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의 가사 중 일부야


노랫말처럼 처음은 뭐든 어렵긴 하지. 첫사랑, 첫 키스, 첫 출근 등등

'첫'자가 들어가는 일치고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묘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일이 있을까?


첫 만남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라포Rapport'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야. '라포Rapport'는 친밀한 관계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야.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이지. 타고난 외향형이라면 처음 본 사이라도 몇 년은 알고 지낸 것처럼 붙임성 있게 관계를 만들고 이끌어갈 수도 있지만, 대개 첫 만남의 그림은 쭈뼛쭈뼛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간 보고 탐색하는 장면으로 그려지잖아


소개팅이라던지, 면접이라던지, 첫 출근이라던지 이런 경우라면 그나마 사정은 좀 나아 '저 사람은 나를 모른다. 나도 그렇다'라는 사실을 서로 충분히 '인지'하는 특수 상황이기 때문이야


문제는 직장에서 일을 할 때야. 직장인은 자신이 하는 일에 정당성이 있다고 믿으면 처음 본 사이거나 별다른 친분 관계가 없어도 그 일을 그냥 밀어붙이려는 경향이 있어


특히 인사나 기획 등 핵심부서의 일일수록 그렇지. 이들 부서의 일은 회사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만들거나 프로젝트성 업무가 많은데 연관 부서가 다양하고 협조를 구해야 할 일도 많아. TF(Task Force)가 구성되면 아예 인원 차출을 요청하기도 하고, 전사 교육이나 워크숍 등을 진행할 때는 현장 업무 스케줄을 조정하는 일쯤은 당연하게 여기지


보통 이 과정에서 지원조직(사실상 인사)과 현장 간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마치 현장 위에서 군림하듯 뻣뻣한 자세로 일관하는 지원조직 담당자들이 일부 존재하기 때문이야. 분명 협조를 구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메일' 한통을 띡 보내 통보하는 듯한 태도에 분개하지


재밌는 건 일 돌아가는 생리를 어느 정도 안다 싶은 3~5년 차 시니어 사원~대리급들이 이런 실수를 종종 저지른다는 거야. 서로 얼굴은 알지만 업무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지 않았을 경우,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처지에 가타부타 자세한 설명이나 최소한의 성의도 없이  


"이거 사장님이 시키신 일인데요?"

"전사 중점 사업인 만큼 ~까지 자료 보내주세요"


'명령'을 하달하는 식이라면 그 당장 반발심부터 일게 마련이지. 내 일이 급한 만큼 상대도 자기 일이 있을 텐데 말이야. 이 상황에서 마음을 활짝 열고 '회사의 중요업무를 수행하는 당신, 원하는 걸 알려주세요' 라며 너그러이 받아줄 현장 조직은 얼마나 될까?


나 역시 그런 실수를 더러 했지

교육팀 시절, 나는 대리 2년 차였고 회사에 경력직으로 합류한 지 3년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어. 입사 3년쯤 됐으니 회사가 돌아가는 메커니즘은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났고 전사교육과 조직문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던 만큼,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나를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있던 시기였어


회사는 크게 3개 사업부(호텔사업부, 면세사업부, 외부사업부)로 운영됐어. 그중 면세사업부는 회사의 cash cow로 매출 규모와 영업이익이 커서 일정 부분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지. 자체 지원조직이 있어 전사 조직과는 직접 교류가 많지 않았고 사내 교육도 자체적으로 진행했어. 단 그룹 공채 교육, 조직문화 내재화 등 전사 공통 프로그램만큼은 전사 지원조직에서 맡았어


'조직문화 내재화' 면세사업부 과정을 진행했을 때의 일이야. 교육생 중 평소에도 시니컬한 표정과 툭툭 내뱉는 말투로 분위기를 흐리는 J가 있었어. 그의 직책은 무려 팀장. J팀장은 아니나 다를까 워크숍 시작과 동시에 쓸데없는 농담을 하며 흐름을 끊고 주변의 집중력을 흩트리기 시작했어. 나는 벼르고 있다가 퀴즈를 냈고 예상대로 답을 맞히지 못하자 일종의 망신을 줬어


"팀장님. 과정 내용을 다 아셔서 그렇게 지방 방송을 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네요. 우리 그룹 팀장님이라면 의례 아셔야 하는 내용 아닌가요? 팀원들이 지켜보고 있잖습니까?"

부끄러운 줄 알라는 일침이었어. J팀장은 귀까지 빨개지며 씩씩대기 시작했고, 급기야 강의장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어. 나는 개의치 않고 워크숍을 마무리했고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했지


과정이 모두 종료된 후 면세사업부 지인으로부터 들려온 이야기는 놀라웠어. 내가 지나쳤다는 거야. 별 친분도 없는 타 부서 대리 주제에 감히 한 부서의 팀장을 망신 주다니, 개념상실 건방진 녀석이라는 뒷말이었지. 심지어 팀원들이 더 분개를 했다는 거야. 그때야 그럴 수 있겠다 싶었어. 당연히 J팀장과 팀원들은 한 팀이라는 유대감으로 라포rapport 가 형성된 '내집단'이었고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외집단' 사람이었을 뿐이었을 테니 말이야


한동안 면세사업부 사람들에게 나는 비호감 담당자로 찍혀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 했지

  


 

라포를 형성하고 유대감을 맺는데 꼭 필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어


그 첫 번째는 첫인상이야

첫인상은 약 3초 만에 이미 결정되고 그 첫인상을 바꾸려면 40시간 이상이 필요하다고 해


매러비안 법칙에 따르면 첫인상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바디랭귀지(보이는 것), 목소리(들리는 것), 논리(내용) 세가지야. 첫인상에서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영향력이 무려 93%라는 말이지. 무슨 말을 하는가? 즉 내용은 고작 7% 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해. 그 사람이 누군지 내밀히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려면 적어도 외형이나 말투 따위가 호감형일수록 유리하다는 건 상식에 가깝지


물론 첫인상이 전부는 아니야. 사실, 외적 조건만으로 단박에 모르는 사람의 호감을 사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차은우' 급 외모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대개는 낯선 사람 효과로 심리적 거리감과 경계심을 유지하며 첫 만남을 가질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으니까 말이야


첫인상이 좋으면 라포rapport를 형성하고 유대감을 맺는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는 있지만, 인간관계란 자기 자신의 내면을 적절히 드러내고 상대에 대해서도 깊이 알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복잡다단한 과정이란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 해


두 번째는 연(連)이야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속담이 있어. 사람은 같은 값이면 나와 조금이라도 공통점이 있는 대상에게 더 끌리게 되어 있어. 오죽하면 'LMX(Leader Member eXchange)'라는 '조직행동 이론'이 있을 정도니까. 리더 개인의 주관적 호감도에 따라 구성원들을 인그룹(In Group)과 아웃그룹(Out Group)으로 분류해 대한다는 이론인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의 단위조직에서 이런 일들은 손쉽게 관찰할 수 있어


이른바 학연, 지연 각종 연과 끈들이 작용해 만드는 사내정치의 실체지. 현실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사내정치가 없는 회사가 있을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뭔가 공통점으로 엮인 연대의 일원이 되는 일이 손해일 건 없어


물론 지나칠 경우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해. 역량과는 상관없이 주로 '누구의 사람이냐?' 사내 정치로 평가와 승진 등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회사라면 미래는 어둡다고 봐야지. 구성원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조직 전체의 투명도나 공정성은 이미 심하게 훼손되었을 테고, 무엇보다 실력은 제자리면서 누구에게 잘 보일 것이냐? 에만 몰두한 '사회적 난쟁이'들이 판을 치고 있을 테니 말이야




라포 Rapport 부터

직장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는 '라포rapport'를 맺는 일부터 시작해. 특히 회사의 일이라면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관련된 사람들과 기본적인 유대감과 교감부터 쌓아야 무리가 없어. 회사의 일은 태반이 타 부서, 동료들과의 협업으로 진행되고 이루어지니 말이야.


신입으로서 당분간은 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접하는 일들이 대부분일 테지. 내 첫인상을 결정하는 무수한 moment들이 있을 테고, 그때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상대에게 명확히 주지 시키고 인간적 호감으로 바꿀 수 있다면 앞으로의 직장생활이 조금 더 수월해질 것임은 자명해


지나치게 사적 관계를 깊이 만들 필요는 없지만 아니 위험하지만, 적정 수준의 사적 관계를 만들어 유지하고 공적 관계 속에서 균형을 만들어 가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야


"나는 내향형이라 그런 거 못해요. 그냥 내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회사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야. 제 아무리 능력자라도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팀 내는 물론 팀 밖에서 협조를 구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할 일은 수도 없어. 서로 유대감이 있는 관계에서라면 업무 협조도 더 자연스럽고 이견을 좁히는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어. 그 과정 자체가 자원의 낭비를 줄이는 일이야. 쓸데없는 이견대립과 자존심 싸움으로 '되게 해야 하는 일'이 어그러지면 그 손해는 회사 전체는 물론 고스란히 나 자신에게로 돌아올 테니 말이야


지나친 관계지향은 타인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내면의 안전지대를 만들어 게으름에 몰아넣고, 급기야 성장을 방해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적절한 교류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넓히고 그릇을 확장해 '사회적 거인'이 되도록 돕는 지렛대로 얼마든지 활용 가능해


조금만 연관관계가 있어도 내집단, 외집단으로 구분하려는 인간의 습성을 지혜롭게 활용해 보라고.

'에이 그런 게 어딨어'라고 외면하고 무시할 게 아니라 이용할 건 이용하고 조심할 건 조심하는 태도로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이야말로 긍정적 의미의 '사내정치'가 아닐까?  


내가 찾지 않고 나를 찾게 하는 일

라포 Rapport가 생겼다고 끝은 아니야. 오히려 시작이지. 사람만 좋다고 일이 저절로 되진 않아. 회사는 엄연히 성과를 내야 하는 공적 조직인만큼 뛰어난 역량과 눈에 보이는 성과를 동시에 증명해야 해


"사람은 좋은데..."

이런 말이 동료, 상사의 입에서 나왔다면 화들짝 놀라야 돼. 반쪽 짜리라는 '한탄'이기 때문이야. 사람만 좋은 직장인은 여러모로 민폐야. 이제 막 입사한 신입이라면 '가르치면 되겠지?'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지만, 입사 수년차 시점에서 나오는 이야기라면 그 무게가 달라져. 성과에 도움은 안되고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명백한데도 내쫓기엔 어딘가 미안한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선 곤란해


결국 실력으로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수밖에. '내가 찾지 않아도 나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게' 하는 일이야. 그 일은 '호감 가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라포rapport, 유대감으로 시작하지만 오직 탄탄한 내 분야의 전문성과 실력을 눈에 보이는 증거로 증명할 때 완성돼


인간적인 매력은 물론 내 직무에 대한 명확한 대표성과 전문성을 가졌다면 조직 사람들은 굳이 내가 찾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나를 떠올리고 찾게 돼 있어. 술자리든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 회의 자리든 말이야


현역 시절,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자체 조직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브랜딩 하는 역량만큼은 뚜렷하게 각인시켰던 것 같아. 조직문화 프로젝트에 BeaN, 비타민, Chain-G 등 브랜딩을 시도해 각각 호평을 받았고, 마케팅 상품에도 계절채비, 감동(感童) 같은 직관적이면서도 감각 있는 네이밍을 제시해 CEO로부터 '작명소'라고 불리곤 했으니까. 사내에서 브랜딩, 네이밍 하면 '이 XX'이라는 공식이 내부에서 생긴 셈이야

(동료들과 충분한 라포rapport를 형성했다....고는 안했..)



'첫 만남'에선 무조건 어떻게 라포rapport부터 먼저 형성할지 신중히 고민해 봐. 그리고 약간의 연결 고리라도 찾아서 유대감을 쌓을 수만 있다면, 그게 누구든 첫 만남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게 될 거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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