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도 사실은 갈등의 한 종류야. 내적갈등. 오죽 심각했으면 짬짜면이라는 '중재'안이 턱 하고 나왔을까?
우리 일상에서 크고 작은 갈등은 피할 수 없어. 특히나 성장배경도 성격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인 회사라는 조직에서 갈등은 일상다반사야. 물론 갈등이 긍정적 현상은 아니야. 서로의 의견이나 마음, 스타일이 안 맞아서 생기는 관점의 충돌일 테니, 갈등이 쓸데없이 커지면 해결에 소모되는 기회비용이 커지고 때에 따라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남기기도 하니까
그런데 사람일이 어디 좋기만 할 수 있나? 좋을 때 좋은 건 아무것도 아니야. 예측할 수 없는 위기와 갈등은 언제 생길지 몰라. 평소 별 문제없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막상 위기가 닥치면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내재된 문제가 표면화되고 본색이 드러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특히 '나는 절대로 틀릴 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믿는, 자기 객관화가 덜된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데다 결과지향주의가 만연한 조직이라면 개인 간뿐 아니라 조직 간의 갈등인 사일로 현상이 빈번할 게 틀림없어. 한치의 물러섬도 없는 극한 갈등 끝에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쳐도 남는 것 상처뿐이야. 전체의 합으로 보면 반드시 마이너스가 되고 말아
그렇다면 갈등이 아예 없는 조직이 이상적일까? 아니. 이상적이긴커녕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해. 이를테면 병균이 두렵다고 '무균실'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과 같아. 신체의 면역력은 일정한 병원균이 체내에 들어와 항균 작용을 통해 생기고 강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평생 무균실에서 자란 이 아이는 정말로 건강한 걸까?
조직 역시 빈번한 갈등이 두려워 일종의 무균실 같은 '무갈등 원칙'을 세우고 눈에 뻔히 보이는 각종 문제와 의견불일치를 외면한 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가스라이팅으로 일관한다면 건강한 조직이라고 할 수 없지
미국의 위대한 투자가이자 헤지펀드 매니저,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CEO인 레이 달리오는
"갈등은 생산적이다. 갈등을 피하려 하지 마라, 그리고 논쟁에서 이기려고 하지도 마라. 내가 틀린 상황은 매우 가치 있는 경험이다. 한 가지라도 배우지 않았는가?"
라고 말했는데 이는 갈등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수많은 컨설턴트들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명제이기도 해
갈등은 양날의 검이야. 이왕 없앨 수는 없는 기본 값이라면, 어떻게 이 갈등을 활용할 것이냐? 의 문제에 골몰하는 게 더 생산적이지. 갈등을 기회로 여기고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 상호작용할 때, 생각지도 못했던 해결책을 발견해서 win-win으로 이어진 증거와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아. 혹 합의에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는 통찰 역시 조직에 가치 있는 자산으로 남아
웹툰 [미생]의 한 장면,
영업부장은 재무부장과 대치중이야. 영업팀에서 올린 업체 선정 기안이 재무팀에 묶여 있는 탓이지. 재무팀은 숫자적으로 부실한 부분이 있으니 이를 채워 넣거나 업체를 아예 교체하라는 입장이야. 영업팀은 이미 업체 검토를 끝냈고 더 이상 대안은 없다고 사정해 보지만 재무부장은 완강해. 영업팀도 이 건 때문에 발목이 잡혀 일이 진척이 안 되고 있어
영업부장은 기분이 상한 채 사무실로 돌아와 오상식 차장에게 문자를 보내
[자네가 재무팀 부장 좀 만나고 와]
오 차장은 뜨악해하면서도 재무팀 사람들에게 전화부터 걸어
"김 과장. 난데. 자네 팀 요즘 별일 없나?"
"어~박 차장. 부장님 요즘 스트레스가 많으시다며?"
몇 차례 통화를 통해서 재무부장이 신재생 에너지팀과 갈등 상황이라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지
그리고 미팅룸. 오 차장은 커피 한잔을 탁자 위에 놓아두고 재무부장을 맞이해. 눈앞의 커피를 멀찌감치 밀어내고 맞은편에 앉은 재무부장은 이렇게 입을 열어
"자꾸 이렇게 졸라 봤자인데..."
"조르다뇨. 그렇지 않습니다"
오 차장은 신재생 에너지팀과의 이슈를 먼저 꺼내며 재무부장의 편을 들어. 재무부장은 기다렸다는 듯 고충을 털어내고 오 차장은 경청해. 중간중간 추임새도 넣고 맞장구도 쳐. 한참을 하소연하던 재무부장. 문득 자신이 제쳐둔 커피잔에 손을 뻗어 제 앞으로 가져오지. 그리고는 한 모금 마셔
"음...맛 좋은데요? 자 그럼 투덜거림은 이 정도로 하고 업무 이야기 할까요?"
"아닙니다. 듣고 보니 저희 역시 이해와 설득에서 좀 서툴렀던 것 같습니다. 다시 준비해서 찾아뵙겠습니다."
"일단 봐요..."
오 차장은 마지못한 듯 자료를 건네
결과는 예상대로야. 영업팀 안은 재무팀을 통과해. 사무실로 돌아온 오 차장. 장그래와 김 대리는 놀라워하며 오 차장에게 질문해
"와 차장님 어떻게 설득하신 거예요?"
"나는 들어보고 정말 안될 것 같으면 다른 업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러고 보니 오 차장은 '승인 부탁'의 ㅅ도 꺼내지 않았어
갈등은 기회야
신입이라면 조직 내 갈등에서 비교적 자유론 편이지.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만 '아직 신입이니까' 일종의 신입 프리미엄?이 유효한 데다 실제 갈등이 생겨도 기껏해야 동기 거나, 사수인 맞선임일 텐데 그 경우라면 쉽게 갈등을 표면화하지는 못할 테니 말이야. 물론 주니어 시절을 벗어나는 즉시 이런저런 이해관계에 차츰 얽히면서 갈등의 양상은 점점 더 다양하고 복잡해질 거야
얼마나 좋은 기회야? 커리어 초창기부터 조직 내 '갈등'의 반작용과 순작용을 인지하고 선배들의 갈등 상황 그 과정과 결과를 '훈련'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면 말이야
회사의 모든 일은 우선순위가 있고 우선순위가 높은 일일수록 어떻게든 '되게' 만들어야 해. 그 의지가 넘쳐 '강박'이 되면 타인을 생각하지 못하고 내 입장만 강요하게 돼지.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다 감정이라도 상하면
"이거 사장님이 지시한 일이에요"
라고 최후의 카드를 들이밀지만 안 먹혀. 자신들에겐 별로 안 중요하거든. 어찌어찌 들어준다 해도 Due date직전까지 끌어서 애를 끓게 하는 일도 잦아. 쉽게 갈 수도 있는 일이 괜한 갈등으로 감정싸움으로까지 치닫는 이유는 언제나 상대의 입장을 먼저 보지 않고 자기 욕심을 앞세우기 때문이야. 일은 무조건 되게 만들어야 해
그러려면 내 속내를 철저히 뒤로 미루고 먼저 듣고 헤아리는 자세를 습관이 중요해. 감정싸움에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일이 되게 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 되어야 하니까.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꺼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더라도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아. 그리고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 지금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최소한의 정보를 가지고 미팅에 참여해. 상대가 들어줄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이야 말로 어떻게든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야 마는 '무서운 사람'이 되는 지름길일 테니 말이야
갈등은 창의적인 충돌이자 확장이야
무엇보다 갈등은 좁아터진 내 시야를 상대방의 관점에서 획득하고 마침내 그 수준으로 넓히는 일이기도 해.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을 잘 알 거야. 좁은 우물에 처박혀 그 안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편협한 사람을 일컫지
그런데 여기서 발칙한 의문이 생겨. 개구리인 상태로 우물밖으로 나오는 건 괜찮을까? 굶주린 독수리, 뱀, 오소리들이 득실거리는 바깥세상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개구리는 과연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우물 안에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개구리인 것이 문제가 아닐까?
갈등은 자신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를 충돌시키는 일이야. 원시지구와 충돌한 외계의 혜성들이 일으킨 화학작용이 생명탄생의 기원이라는 가설을 감안하면,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충돌은 좁은 시야에 갇혀 있는 개구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지. 갈등을 포함한 관계의 희로애락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 자신의 내면과 외연을 확장하는 일이야. 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충돌이라는 이벤트 없이 결코 일어나지 않아. 갈등은 배움의 장이자 나를 확장할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이렇게 좋은 '갈등'
무조건 부정적으로 여겨 회피하려 들지만 말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내 내면을 성장시킬 절호의 기회로 잘 활용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