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창간한 [보물섬]이라는 만화잡지에 연재된 <아기공룡 둘리>라는 작품의 주인공이야.
당시로선 흔치 않았던 '공룡'을 의인화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이제는 뽀로로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캐릭터로도 자리 잡았지. 잊을만하면 장편 TV애니메이션으로, 또 극장용 영화로 개봉되면서 세대를 불문하고 잘 알려진 캐릭터일 거야
워낙 연재 기간도 길었고 한때 국민적 캐릭터로 화제성이 컸던 만큼 '둘리'에 인생을 빗댄 격언? 들도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건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
라는 말이야
원래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를 패러디한 건데, 작중 둘리가 초능력을 쓸 때 외치는 주문인 '호이'를 이용한 언어유희이면서 위트를 더한 일침이 아닐 수 없어
개인적으로 "고길동이 불쌍해지면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다"라는 또 다른 격언? 에 지극히 공감하고 있는 요즘이야. 3~40대로 추정되는 고길동 씨는 쌍문동 단독주택에서 아내 정자 씨와 영희, 철수라는 남매를 키우는 평범한 가장이야. 알다시피 둘리는 남극에서 빙하 타고 내려와 어느 날 갑자기 고길동의 집에 얹혀살게 된 불청객이지. 이후 도우너(외계인), 또치(타조)라는 객식구들까지 줄줄이 들어와 한자리 차지하고 살아가는데, 고길동은 이들을 구박은 하지만 내쫓진 않아. 방도 하나 내주고 삼시세끼 밥도 먹여줘
어린 시절엔 둘리와 친구들을 구박하는 고길동이 미웠지. '왜 저렇게 구박하나? 좀 잘 대해주면 안 되나?'
어른이 되고 회사원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니 그때 깨닫게 되더라고. '아~ 고길동은 천사였구나'
피 한 방울 안 섞인 군식구 셋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이건 아닌가?) 일이 얼마나 비현실적이면서 고단한 일인지 그때는 미처 몰랐지. 하긴 요즘 같은 시대에 3~40대 가장이 마당 딸린 단독 주택에 산다는 설정 자체도 비현실적이지만. 뭐 만화니까
아무튼 둘리와 떨거지들은 온갖 말썽을 부리는 것도 모자라 길동이 아끼는 전축과 LP판을 부수고, 자동차를 망가뜨리고, 심지어 집까지 날려먹는 만행을 저질러. 이쯤 되면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둘리와 그 일당들이었어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요즘은 더치페이가 대세라지? 초중고 시절이야 동급생들이 교류의 거의 전부였을 테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선배나 교수님 보다는 동기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더 많았을 테니 모두가 대등한 관계에서 각자의 몫만 책임지는 일은 충분히 합리적이지
그런데 직장인이 되는 순간 신세계가 펼쳐져. 바로 위계야.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입사와 동시에자신을 밀착 지도해 주는 존재와의 관계가 시작돼.맞선임이라고도 하고 사수라고도 하고 멘토라고도 하고 뭐 명칭이야 다양하겠지만
직급을 없애고, 영어 이름을 쓰고,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의 대표가 한 손에는 아아를 든 채 일반 구성원들과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는 수평적 조직문화가 트렌드인 듯 보여도 실상은 달라. 조금 더 경험이 많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생기는 수직적 계층은 여전히 굳건해. 뭐 이전보다 옅어졌을 수는 있겠지만, 회사라는 조직은 엄연한 이익추구 집단이기 때문이야. 자유로운 소통이 전부가 아니라 최종단계에 이르면 누군가는 반드시 의사결정을 해야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는 변함이 없어
신입의 1년은 모두로부터 보살핌을 받는 시기이기도 해. 특히 밥을 먹을 때, 회식할 때, 커피를 마실 때까지 웬만해선 내 돈 나갈 일도 거의 없지. 더치페이? 동기들끼리의 모임이면 몰라도 팀 선배와의 자리에선 대부분 얻어먹게 되어 있어. 선배 입장에서 더치페이는 일종의 체면 문제기도 해
신입이라는 타이틀은 일종의 'free pass' 와도 같아서 이 기간만큼은 실수를 해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일을 배우는 과정으로 너그럽게 대하지만 한편으로는 됨됨이를 관찰하는 시기이기도 하지. 주 5일, 하루 8시간 이상을 함께 보내는 직장생활 특성상 신입은 일정기간 동안만큼은 자연스레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어
그 과정에서 아주 약간의 차이도 크게 보이곤 하는데, 특히 인성이나 태도적인 측면은 두드러지게 되어 있어. 같은 신입이면서도 선배와 주위로부터의 호의를 고맙게 여기고 어떻게든 보답을 하려는 친구들도 있고, 눈치 따위 개나 주고 얻어먹는 일 포함, 누군가로부터 돌봄 받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어
웬만해선 신입이려니 하겠지만,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고 기대치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벗어나는 두 부류에 대해서는 마음속 어딘가에 담아두고 볼 때마다 떠올릴 테지
'K는 실력도 실력인데 무엇보다 인성, 기본이 된 애야'
'C는 뭔가 싸한데? 아무리 신입이라지만 저밖에 모르고,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어떤 팔이 안으로 굽을지 안 봐도 뻔해
조직문화파트 리더(과장)였을 때의 일이야
교육과 조직문화 업무 특성상 팀원들과 외부에서 함께 하는 시간(점심, 저녁 회식 등)이 잦았는데 늘 1차는 팀 리더인 내 몫이었어. 2차는 대리급 두 명이 번갈아 내고, 그 이후(3차 이상)까지 이어지면 또다시 내가 내는 식이었지. 팀원은 총 8명이었는데 나를 포함한 대리급 이상 3명이 돌아가며 밥과 술과 커피를 사는 패턴은 수년간 반복됐지
어느 회식 날이었어. 여느 때와 다름없이 1, 2차 술자리에 3차 노래방까지 이어진 회식이 끝나고 흩어지는 시점이었지. 마침 편의점 앞에 모여 앉아 대리운전, 택시 등 돌아갈 차편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말했어
"S가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S는 사원 직급이었지만 팀에 합류한 지는 3년째로 나름 선임축에 들었어
"제가요?"
쭈뼛거리더라고. 뭔가 곤란한 표정으로 그러겠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 거야
"아 됐어. 내가 살게"
잠깐의 어색한 침묵을 보다 못한 L대리가 나섰어. L이 사 온 돼지바를 입에 물고 S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3년 넘게 같이 일하면서 수없이 밥 먹고 술 먹고 하는 동안 커피 한잔 사는 걸 못 봤는데, 몇 천 원 아이스크림이 그리 아까웠던 걸까?'
한번 그런 인지가 생기자 그 이후에도 '어떻게 하나 보자' 싶은 생각으로 지켜보게 되더라고. 몇 년 후 팀을 떠나는 날까지 S가 지갑을 여는 일은 없었어. 공교롭게도 그날 이후 S에 대한 타 부서의 평판도 솔솔 들려오기 시작했어. 업무 협조에도 인색하고 뚱한 표정과 귀찮은 듯한 말투, 이래저래 비호감으로 통한다는 뒷말들 말이야.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까?
애덤 그랜트의 명저 [Give and Take]를 보면 조직 안에서 인간은
주기만 하는 기버 Giver,
주고받는 매쳐 Matcher,
받기만 하는 테이커 Taker
세부류로 나뉜다고 해
'이 세 유형 중 과연 누가 조직 내 성공의 사다리 꼭대기에 오르는가?'를 주제로 세심하게 관찰하고 실험한 결과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어
성공 사다리의 가장 밑단, 그러니까 실패에 근접한 유형은 바로 기버Giver 였어. 기버들은 대체로 성과를 내지 못 냈고 남들을 돕는데 시간을 허비하느라 제 실력을 효과적으로 키우지도 못했어. 자연히 조직에서 도태되고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지. 한마디로 퍼주기만 하다 호구가 된 셈이야
그럼 성공 사다리 꼭대기엔 누가 있을까? 테이커Taker? 매쳐 Macther?
놀랍게도 이 역시 기버 Giver였어
이들은 매쳐, 테이커 보다 많게는 20% 이상 높은 성과를 냈고, 역량에 대한 평가도 유의미한 수준으로 높았어. 물론 절대 수치는 많지 않았지만 주변인들로부터 하나같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신뢰까지 얻어 오랜 기간 롱런 하는 사람들이었어
왜 이런 극단의 결과가 발생했을까? 애덤 그랜트가 발견한 비밀은 바로 Give의 대상이 누구였는가? 였어
기버 Giver들은 대개 자신이 가진 것(정보, 돈, 도움 등)을 필요한 사람에게 조건 없이 제공하지만 그 대상이 받기만 할 줄 아는 테이커Taker인 경우 선의의 '호의'를 되돌려 받지 못하고 오히려 철저히 이용당하면서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곤 했어
반면 도움을 받은 대상이 주로 매쳐Matcher 혹은 같은 기버Giver 라면 자신이 준 것 이상으로 '호의'를 되돌려 받으면서(물론 그것을 기대하고 베푼 것은 아니지만) '평판'이라는 심리적 자산까지 얻게 돼 결국 성공의 사다리 꼭대기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어
누군가 아낌없이 '선의'를 베풀고 있는가? 그 '선의'를 또 다른 누군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용하는가?를 살피는 문제는 개인은 물론 조직전체의 성공과 실패를 예측하는 결정적 요인일지도 몰라.
나는 기버인가? 매쳐인가? 테이커인가? 우리 회사에, 우리 팀에 기버, 매쳐, 테이커 어떤 부류가 많은가? 를 깊이 있게 살펴보면 나 자신은 물론 우리 조직이 얼마나 성공에 가까이 갈 수 있는지, 혹은 실패로 추락하게 될 것인지, 그 선명한 답을 얻게 될 거라 믿어
스타벅스를 얻어먹으면 백다방이라도 사
"내가 대접받기를 바라는 대로 상대를 대하라"
거의 모든 종교 경전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한다는 이른바 '황금률'이야
우연의 일치라 보기엔 너무도 명백한 진리인지라 그 어렵다는 종교 대통합이 이루어진 것 아니겠어?
우리는 대부분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주는 매쳐matcher에 가까워. 이 말은 곧 일상생활에서 '내가 하나를 주면 상대도 나에게 그만한 대가를 줄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는 의미지. 기대치. 회사에서 신입의 기대치는 어떨까? 일정 한도 내에서는 테이커Taker 처럼 굴어도 그런가 보다 할 거야. 신입이니까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고. 그 기대치가 거의 없거나 낮은 상태의 대상에게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를 되돌려 받는다면 그 임팩트는 어떨까?
"선배님이 지금까지 다 사셨으니까 이번엔 제가 사드릴게요"
"야 됐어. 신입이 무슨 돈이 있다고."
사실 그쯤에서 끝나더라도 괜찮아. 선배 입장에선 그 친구가 다시 보일 거야
'그래도 얘가 생각이 있긴 하네'
오히려 기분 좋아진 선배가 더 베풀 수도 있지. 물론 그런 상황을 계산해서 이용하라는 말도 아니야. 다 같은 직장인 처지에 '베풂'의 행위가 당연한 일일 수 없고, 자신의 씀씀이를 제한해야 하는 일종의 '희생'이라는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 해
기버가 되라고 강요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나 역시 기버는 아니니까. 타고난 기버들은 누구의 강요나 가르침에 의해서 계산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거든. 진정한 의미의 기버, 아낌없이 퍼주는 나무가 되기는 좀처럼 쉽지 않아
단, 남의 호의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말자는 거야. 고마움을 알고 언젠가는 되돌려 주겠다는 마음자세를 갖는 것, 그것 하나로도 실제 드러나는 행동은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선배로부터
스타벅스를 얻어먹었으면 세 번째쯤에는 백다방이라도 사는 거야
삼겹살을 얻어먹었으면 세 번째쯤에는 김밥천국이라도 사는 거야
조금은 손해 본다는 마음으로
계산하는 삶, 일견 당장 손해 보는 일 없이 남는 장사 같지만 일생 전체로 보면 그만큼 피곤한 삶도 없어. 뭐 하나라도 악착같이 받아내려는 태도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고 엄청난 주의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야
무엇보다 눈앞의 내 이익에 우선한 계산적인 생각은 곧 그 밑천이 드러나게 마련이고 하루하루 그런 이미지가 쌓여 '자기밖에 모르는 놈'이라는 '나쁜 평판'이라도 갖게 된다면, 그동안 계산적 행동을 통해 얻은 그 알량한 이익이 무의미할만큼 치명적 오점으로 남게 될 테니, 결국은 밑지는 장사야
물론 당장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는 일이 여전히 쉬운 선택은 아니야. 다만 '어떤 관계든 조금은 손해 보고 산다'라는 마음을 먹으면 삶이 편해지더라고. 그런 태도가 익숙해지다 못해 진정성 있는 삶의 철학으로 자리 잡기라도 하면, 주변으로부터 그릇이 넓은, 큰 사람이라는 평판까지 얻고 종내에는 성공 사다리 꼭대기에 오를 수도 있겠지. 그야말로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어
결국은 TPO야
어느 타이밍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맥락에 상대의 호의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내 호의를 보여줘야 하는지를 아는 것. 개인으로서도 팀의 일원으로서도 적절한 타이밍에, 장소에, 맥락을 파악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알고 있고, 주변 사람의 기질과 마음, 욕망을 캐치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