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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Sep 23. 2024

[신입의 직격] '충고하지 말라'는 충고

Ⅱ장. 織격 _ 관계관리 4_ 오지랖

두 번째 책을 내고 얼마 되지 않은 12월의 어느 날, 중학교 친구 모임이 있었어


마흔 중반이 넘은 아저씨들의 만남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이번 모임도 두어 번 미뤄지다 1년 반 만에 성사된 터였어. 사는 곳도 제각각인 데다 각자 직장에서도 위치가 있다 보니 개인 약속 시간을 따로 잡기가 쉽지 않은 듯 보였어


퇴사한 지 3년 차, 사실상 백수나 다름없던 나는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그 티를 내지 않으려고 밖에서 조금 서성이다 약속시간에 딱 맞춰 약속장소에 들어갔어. 먼저 온 친구는 한 명 뿐이었어.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먼저 술자리를 시작했고 30분, 1시간이 지나서야 모두가 도착했어. 그 사이 우리는 각 1병씩 소주를 마신 상태였어


오랜만의 외출인 데다 퇴근 시간 이후의 술자리는 또 얼마만인지... 술이 조금 과했고 이런저런 감정들이 섞였던 모양이야. 가장 늦게 도착한 녀석이 회사 이야기를 꺼내면서 팀원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어. L모그룹 주력 계열사에서 팀장과 임원 사이 직책을 맡고 있던 친구였는데 처음부터 모임 자체를 별로 내켜하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어


"아 요즘 애들 말이야 참 내 마음 같지 않다. 조금만 더 열의를 가지고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팀원들보다 리더가 문제라는 생각은 안 들어?"


나는 불쑥 끼어들어 참견을 하기 시작했어. 녀석은 입을 다물고 내 말을 듣기 시작했지. 마침 새로 나온 두 번째 책의 주제가 'MZ세대, 조직문화' 였던 터라 책을 빌미로 마치 폭포수 터지듯 말이 쏟아져 나오더라고


"... 리더십 이론상으론 리더는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야. 긍정이든 부정이든...약속도 못 지키고 기본적인 관계에도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 리더라면 팀원들이 분명 부정적 영향을 받았을 테고... 어쩌면 네가 거울일지도..."


온갖 리더십, 팀십 이론을 꺼내 들먹이고 급기야 약속 과정에서 불성실하고 시큰둥했던 태도를 은근히 꼬집자 녀석의 표정도 슬슬 일그러지기 시작했어. 발언의 수위가 점점 세지고 말이 길어진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도 인지했지만 끊고 싶지 않았어.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됐고 오랜만의 모임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상태로 끝이 났지


알아, 도 넘는 오지랖을 부렸던 거. 왜 그랬을까?

약속을 수차례 미루고 그마저도 1시간씩 늦는 '무늬만' 친구처럼 보이는 대상에 대한 반감? 조직문화, 리더십 이론만큼은 현역인 너희보다 내가 낫다는 뒤틀린 자부심? 어쩌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나 혼자 백수라는 자격지심이 있었는지도 몰라. 그 모든 것이 복합되었던 그날의 모임 이후 마지못해 유지되는 듯 보였던 관계는 조금씩 더 멀어졌고,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지


'요청하지 않은 조언은 조언이 아니'라는 것

'삐걱거리는 관계를 정리하는 데 오지랖만 한 게 없다'는 것


나는 미련 없이 단톡방을 탈퇴했어. 아마도 과한 오지랖을 부리는 동안 이런 식의 끝을 예감했는지 몰라




오지랖

순우리말로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해. 오지랖이 넓으면 그 안의 옷을 다 가리는데, 남들 앞에 나서길 좋아해 불필요한 참견을 일삼으며 따지는 모양새가 꼭 이와 닮아서 나온 말이야 


한때 존경했던 C교수는 [나는 누구인가? Who am i]라는 강연을 통해 알게 됐어. 하필 주제 그대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한창 골몰하던 시기였는데, 우연히 유튜브에서 강연을 발견하고는 별생각 없이 듣다가 순식간에 몰입하게 됐어. 그 하루동안 1시간짜리 강연 전체를 5번 연속해서 다시 들었을 정도로 충격이었지


가장 인상적인 건 '경계에 서라'는 일침이었어. 우리가 배우는 지식, 이론, 사상 등은 이미 오래전 누군가 사유해서 생산해 낸 결과물에 불과한 만큼 절대원칙처럼 평생 신봉해서는 안된다는 거였어. 언제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내적 유연성과 죽은 지식을 도구로 삼아 자신만의 지혜로 승화시키려는 태도야말로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주체성의 원천이라는 전언이었어


그 강연이 너무 좋은 나머지 그 후로도 종종 찾아보곤 했는데 그 횟수가 10번을 넘어가니 C교수의 주장에도 뭔가 허점이 보이더라고


강연 초반을 보면

"나는 절대로 충고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라며 수차례 자신의 성정을 강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는 모순된 지인과의 대화가 눈에 띄더라고


지인 : 나는 요즘 배우는 재미에 빠졌어요. 60이 넘어 배우는 재미로 삽니다

C교수 : 60 넘어서까지 배우는 게 좋다니요. 이제 그만 배우세요. 자신을 표현하세요


이 대화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그동안 배운 것으로도 충분하니 이제는 배운 것을 자기식대로 표현하라는 좋은 의도의 조언이니까. 그런데 잠깐만, 조언이라니? 충고와 뭐가 다를까? 스스로 절대로 충고를 안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강연에서 언급한 다른 일화에서도 이런 식의 충고는 C교수의 일상인 듯 보였어


C교수는 이후 이런저런 미디어에 출연해 사회 전반의 민감한 현안에 대해 두루뭉술 본질을 비껴가는 발언으로 일관해 빈축을 샀는데, 급기야 모 정치인의 선대위에 합류하면서 난데없이 정치판에도 뛰어들어 구설에도 오른 바 있어


나를 포함해 한때 C교수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봤던 많은 사람들이 그를 향한 관점을 바꾼 듯 보였어. '경계에 서라'는 본인의 가르침은 그저 보신이나 출세를 위한 '개똥철학'으로 변질된 지 오래고 그런 주제에 '이래라저래라' 오지랖 깨나 떠는 '요설가' 취급을 받는 모양이야


'충고하지 말라'면서 자체가 충고인지 조차 모르는 가짜 지식인들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이거 C교수에 대한 '뒷담화' 아니냐고? 맞아. 비록 그 대상이 대중에 이름이 알려진 자이긴 하지만 엄밀히 뒷담화에 가깝지. 사실 뒷담화야말로 오지랖의 최고봉이라고 볼 수 있어. 오지랖의 본질을 '원치 않는' '지나친 참견'이라고 보면,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만큼 당사자 입장에선 원치 않는 참견이 또 있을까?


나 역시 직장인 시절 그런 '뒷담화'에서 자유롭지 못했어. 뒷담화의 대상이 되어 피해를 입은 당사자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쓴소리'라는 명목으로 자리에 없는 누군가의 이름을 들먹였던 일들이 잦았지. 그때는 그게 뒷담화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지.


그저 '걱정이 돼서...'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따위 좋은 의도로 포장했지만 제삼자를 통해 그 일들이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그 자체로 뒷담화가 되는 거였더라고


어떤 이름이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순간, 의도했든 아니든 뒷담화가 될 가능성은 높아져. 설사 칭찬으로 시작했더라도 '그런데 말이야~' 라는 추임새가 따라붙으면 자연스레 부정적 이야기가 추가되는데, 대화의 끝에 이르러서는 대개 앞단의 칭찬은 휘발되어 사라지고 부정적 이야기만 남아 부풀려 전달되기 일쑤였지


나 역시도 얼마든지, 언제든지 '충고하지 말라'면서 충고를 하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어. C교수처럼 대중에 알려진 유명인들이야 앞으로도 언제든 비판도 하고 실망을 표하겠지만, 특히 직장내 주변인들이라면 실명을 입에 담아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은 되도록 자제하려 하고 있어




조언, 3번 요청하면 그때 응하자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정말 생각한다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렇게 시작하는 조언치고 오지랖 아닌 적이 없더라 이 말이야. 그냥 내버려 둬. 내 눈에 미흡한 부분이 보이고 끼어들어 이것저것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도 최대한 참아보는 거야. 방치하라는 게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묵묵히 지켜보되 그렇다는 뉘앙스를 은연중 흘리는 정도면 충분해


정말 답답하면 상대가 알아서 물어올 거야. 물론 그렇게 되려면 나 자신이 조언의 가치가 충분한 사람으로 먼저 포지셔닝돼있어야 하겠지. 선배로서나 그 분야의 실력자로서.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요"


얼씨구나 이때다. 모든 걸 다 아는 전지적 3인칭 시점의 화자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주절주절 떠들지 말고 역시나 뒤로 슬쩍 빠져 영감을 주는 선에서 관심을 표명해


"스스로 답을 알고 있을 텐데. 지켜보니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고민해 봐."


이러한 사전 숙고 과정이 충분했고, 그 끝에 도움이 절실함을 인지했다면 그때, 진심 어린 조언을 줘도 결코 늦지 않아. 인간적으로 개인 성향과 태도에 대한 조언을 주고 싶다면, 그 당사자와 인간적 유대감부터 충분히 쌓는 게 먼저야. 하물며 별 친분도 없고 도움을 먼저 청하지도 않았는데 선의를 베푼답시고 TMI 식 충고를 쏟아내는 것만큼 관계를 망치는 일도 없어


제삼자의 이름은 되도록 담지 말자

뒷담화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석이든 공석이든 회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필연적으로 제삼자의 이름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어. 회사의 일이란 게 사람 간 일이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야


앞서도 언급했지만 좋은 의미, 칭찬으로 특정인의 이름을 거론했을지라도 누군가 그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기라도 하면 어떻게든 부정적인 면이 발화되어 대화의 장으로 튀어나오게 되어 있어


아예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이름 그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 게 상책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지. 공적 관계보다 사적 관계에 더 몰입하는 대문자 E들은 대화에서 타인의 이름이 금지당하는 순간 말문부터 막히는 순간이 올지도 몰라


뉴스 역시 감동적이고 훈훈한 소식보다 자극적인 사건 사고 소식에 더 관심이 가듯 누군가의 치명적인 비밀, 단점, 실수 따위를 주고받는 일이 훨씬 더 흥미진진할 테니 말이야


직장 내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올려야 한다면, 무조건 당사자가 있는 자리에서 꺼내는 게 좋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당사자가 부재하다면, '사실관계' 위주로 언급하고 되도록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려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해. 자신의 관점이나 감정이 개입하는 순간, 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거나 부풀려져 '변질된'상태로 당사자에 전해질 가능성은 매우 높기 때문이야. 뒤늦게 바로 잡으려 해도 버스는 이미 떠난 지 오래야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누군가 자신을 찾아와 특정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이렇게 말한다고 해


"지금 나에게 한 말을 당사자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습니까? 아니라면 저한테도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듣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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