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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Sep 30. 2022

책 출간 그게 뭐라고

혼자만의 파티

첫 책을 낸다는 건 의심할 여지없이 인생의 큰 사건이자 이벤트다. 내 글이, 내 생각, 내 이름이 물성이 있는 책으로 만들어져 내 손에 쥐어지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짜릿한가? 성격 급한 사람은 이미 네이버 작가 등록 방법을 검색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엄연히 ISBN이 발급된 정식 책을 출간했으니 작가라 불려도 부끄럽지 않은 자격을 얻은 셈이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까지는 모르겠지만 '나 책 냈어요. 저도 이젠 작가라구요.'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어 진다.


가족들은 당근 1순위고, X알친구, 학교친구, 회사친구, 회사 선후배, 일로 알게 된 사이 가릴 것 없이 일단 안면만 통하면 다 알리고 싶어져 카톡 친구 목록을 몇 번을 뒤지는지 모른다. 마치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돌리는 심정이랄까? 명단을 훑으며 이 사람과는 왜 더 깊은 관계를 만들어 놓지 못했을까? 조금 더 친절을 베풀걸 따위 평소 자신의 인간관계를 객관적으로(혹은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좋은 일이니까 경사니까 다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 모두들 축하해주겠지. 드디어, 마침내 검지 손가락을 바들바들 떨며 핵미사일 버튼을 누르듯 카톡으로 문자로 전화로 출간 사실을 알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책이 나왔습니다."


까톡~ 지잉~

"오, 축하해."

"ㅊㅋㅊㅋ 드디어 나왔네."

"이야 드디어 작가님 되신 거야?


예상대로 주르륵 반응들이 온다. 내 인간관계가 이렇게 빛을 발하나 싶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묘하다. 분명 축하는 맞는데 생각한 것만큼 대단한 반응은 아니다.


대단하다! 작가가 되다니, 내 주변에 작가는 네가 처음이야!!! 따위 열광적일 줄 알았던 지인들은 축하해 정도로 끝이다. 간혹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더 이상은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가족 그리고 가족과 다름없는 베프 등 출간 과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최측근 몇을 제외하면 이 대단한 사건에 '고작 이 정도?'의 반응이 전부다. 가끔 무반응인 사람도 있다. 신경이 쓰인다. 전체적으로 온도차가 분명하다.


한 껏 부풀었던 자의식이 조금씩 빠지면서, 조금씩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래, 책 내기 전에는 어땠지? 투고를 하고 번번이 [귀하의 옥고는 훌륭하나, 저희의 역량에 미치지 못하여...], [원고는 흥미로우나 저희의 방향과 맞지 않아...] 따위 에디터들끼리 진상 투고자 처리를 위한 족보로 쓰는 것이 명백한 회신 메일에 속앓이를 했던 시간이 얼마던가? 투고에 성공해 어떻게든 책만 낼 수 있다면 세상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뿐이었던 불과 몇 개월 전에 비하면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어디 사람의 욕심이란 게 그렇던가? 하나를 얻으면 둘을, 둘을 얻으면 셋을 더 갖고 싶어지지 않던가.

누군가는 나를 꽃가마 태우고 플래카드도 걸고 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책을 낸 작가가 있다니! 경사로세. 호들갑을 떨고 온 세상에 내 이름이 알려져 사생활이 침해되는 건 아닐까? 내심 부담스러운 상상도 하지 않았던가?


떠들썩했던 내면은 어느새 홀로 놀기 시작한다. 너의 일생일대 이벤트 따위 관심 없다는 듯, 잠깐 우~하던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그간 둥둥 떠다녔던 구름 위에서 다시 현실로 내려와 나는 신간을 내기만 하면 10쇄 20쇄를 마구 찍어대는 유명 작가가 아니라는 뼈아픈 사실을 깨달으며 현타가 온다.


뭐 드물게 잘돼서 저자 강연도 요청받고 사인회도 하는 초보 저자들이 왜 없겠냐만 희한하게도 내가 그 안에 들어갈 일은 로또를 맞을 확률만큼이나 희박하다.


책을 낸다는 건 사실 별일 아니기도 하다. 일단 한 해에 쏟아져 나오는 책만 약 7~8만여 권이다. 한 달에 약 6천여 권 이상의 책이 발행된다는 말이다. 대다수의 신간은 약 2주간 신간 코너에 누워있다가 초판1쇄도 다 못 팔고 쓸쓸히 구석탱이 서가로 밀려난다. 듣기로 초판을 모두 소진하고 2쇄(중쇄)를 찍는 작가는 5% 이내라고도 하니 거의 대부분은 그냥 책을 냈다 정도의 의미만 가진 채 끝나는 모양이다.(작년에 첫 책을 낸 나 역시 같은 신세. ㅠ.ㅠ)


책을 낸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일이기도 하다. 한 해 7만 권이니 한 달 6천 권이니 그 숫자만 보면 책을 쓰는 사람의 홍수 같지만, 전 국민 대비해 보면 10만 명이라 한들, 0.2%에 불과하다. 일단 책을 냈다는 사실 만으로도 상위 0.2%에 든다는 말 아닌가? 그 점에선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문제는 결국 그다음이다. 책 한 권 내고 현타가 와서 더는 글을 쓰지 않겠다 절필한 사람들도 많아 보인다. 생각했던 것만큼 출간이라는 세계가 기회의 땅도 아니고, 책이 팔리지 않아 한껏 자랑했던 지인은 물론 책을 내준 출판사에도 면이 안 서는 일도 다반사다. 그 과정에서 용기나 의욕을 잃고 그냥 하던 일이나 하자는 식으로 체념해버리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 과정을 겪었다. 심지어 첫 책에 대해 '엉망' 이라는 악플성 서평도 들었다. 다시는 회사원으로, 누군가의 대본에 얽매인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사실은 이미 되돌아갈 다리가 불타버린 이유이지만) 무엇보다 이 세계에서 승부를 보고 싶었다.


학창 시절, 회사원 시절을 거치며 상실해버렸던 투지를 먼저 꺼내야 했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오래된 책장에서 꺼내 든 듯 유년 시절 태권도의 기억을 떠올렸다. 서울시 대회에서 2년 연속 체급 우승을 했던 꼬마는 분명 승부욕도 있고 한 번 마음먹으면 독하게 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첫 책 이후 절치부심 더 매달렸다. 읽고 쓰는 날들의 연속. 어쩐 일인지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정체되는 느낌. 아무리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쓰는 글들은 족족 쓰레기 같았다. 여름이 오기 전에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한 동안 무너지기도 했다.


에라이, 그냥 여름휴가 냈다고 생각하자. 끙끙 싸매던 원고가 나아가질 않자. 일주일 정도 손을 놨다. 돈도 못 버는 백수 주제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아무 생각없이 밖으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어린 시절 동네에 찾아갔다. 익숙한 왕년의 거리를 배회하며 추억 놀이를 했다. 초등학교 시절 자주 들렀던 떡볶이 집도 찾아가고, 예전 살았던 집터 근처에 주저앉아 차가운 라떼 한잔을 마셨다. 그래, 그땐 이랬지. 참 어렸는데, 걱정도 없고. 세월이 참 어느새 50을 바라본 중 늙은이가 되었으니.


그렇게 아무 목적 없는 시간을 거리에서 보내고 어린 시절 즐겨 찾던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다음 날부터 글이 풀리기 시작했다. 마음속을 가득 채웠던 답답함이 거치고 새로운 힘이 속으로부터 솟아나는 듯했다. 그렇게 탄력을 받아 첫 출간 이후 1년도 안되어 두 번째 책을 냈다(MZ세대와 라떼 사장님이 함께 만드는 조직문화 - YES24). 떡볶이, 짜장면 파워! 열두세 살의 즐거웠던 내가 마흔일곱의 나를 도운 셈이다.


책 출간 그게 뭐라고!

그 하나에 목맬 필요도 없고 결과가 어떻든 좌절할 이유도 없다. 이 일이 좋다. 그뿐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꿋꿋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을 들어보면 그토록 바라던 세렌디피티 그 어디쯤에 도달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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