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릭스 leex Sep 27. 2022

퇴사 후 2년, 십만 원으로 한 달 삽니다.

저축하라. 다시는 돈 벌지 못할 것처럼

퇴사를 하고 보니 가장 힘든 점은 뭐니 뭐니 해도 돈 문제였다.


매달 숨 쉬듯 당연히 들어오던 수입이 끊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살벌하게 삶을 흔들었다. 그것은 통장에 돈이 얼마가 들어있는지 와는 관계없는 또 다른 문제였다.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와도 계좌는 스칠 뿐이라는 대소비의 시절에 수년간 무소득으로 40대 중후반을 보내는 일은 어쩌면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한창 퇴사를 고민하고 있을 때, '일단 나가고 우선 퇴직금으로 버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얼마를 버틸 수 있을까? 6개월? 1년? 그다음은? 솔직히 '어떻게든 되겠지' 였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은 신의 영역이지만, 뚜렷한 대책도 없이 감행한 '퇴사'라는 결정은 뭇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무모함 그 자체였다.


퇴사 이후 재취업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약 1년간 최종면접도 세 차례 있었다. 회사 조직이 싫고 내 대본대로 살아보겠다며 박차고 나올 때는 언제고 불과 몇 개월 만에 또 다른 회사(그것도 이전 회사보다 한참 떨어지는)에 기웃거리다니, 자존심도 없나? 자괴감도 들지만, 눈앞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흔들리니 자기대본이니 고유한 삶이니는 개뿔, 태풍 힌남노 우측 반경에 놓인 나룻배 속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제발 살려달라고 목놓아 우는 신세였달까?


"우리 회사에 왜 지원했죠?"

"먹고살려고 지원했습니다. 이젠 계좌에 돈이 다 떨어져 가거든요"


회장님의 최종면접에서 이런 흰소리를 거침없이 늘어놓을 정도로 맛이 가도 한참 가버렸던 모양이다. 지금에서야 진지하게 복기해보면, 돈이 떨어져 지원했다는 마흔 중반의 지원자를 뽑아줄 회사는 그 어디에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 당연한 일도 당시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멘탈은 걷잡을 수 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유지해오던 책 읽기, 글쓰기 루틴도 무너지고 이도 저도 아닌 무력한 시간이 면접에 오고 가고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 속에 속절없이 흘러갔다. 


세 번째 최종면접 결과가 나왔다. '탈락' 

12월 23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이브를 앞둔 날이었다. 전 회사의 지인을 통해 리퍼런스 체크까지 들어갔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재취업이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했다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징글벨, 징글벨 요란한 캐럴들이 징글징글하게도 울려 퍼졌다.


어떻게 연말을 보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렇게 신년을 맞이하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순간 마음속이 잔잔해졌다. 마치 태풍이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후 고요해진 망망대해에서 "그렇게 비바람을 퍼붓고도 나를 침몰시키지 못한 거냐!! 이 x만한 세상아!" 라고 외치듯 만신창이가 된 나룻배의 선장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는 그 무엇도 성취할 수 없다. 만만하게 여겼던 중견기업의 최종면접조차 뚫어내지 못한 현실이 지금의 나였다. 퇴사 이전에 비해 성장하지도 않았고 새로운 무기 또한 갖추지 못했다. 그 일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뛰쳐나와서는 정작 엉뚱한 곳에서 싫다는 사람 팔을 붙잡고 매달리는 꼴이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재취업은 포기한다. 무엇보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부터 면해야 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우선 계좌부터 살폈다. 불안감이 절정에 달해 이성을 옥죄기라도 했던 것일까? 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인다면 한 동안은 그럭저럭 생활이 가능할 것 같다는 희망이 보였다. 습관적으로 무비판적으로 유야무야 나가고 있던 비용들이 얼마인지 대충 두들겨 보니 상당했다. 무엇을 줄이고 쓰지 않아야 할지 대략 그림이 그려졌다. 계좌에 남은 돈과 최소한으로 줄인 생활비를 계산해보니 얼추 1년 이상의 시간은 버틸만하다는 이성적 판단이 나왔다.


숨쉬기만 해도 돈이 나간다는 말은 엄연히 사실이었다.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외출을 자제하며 생필품을 제외한 모든 물건은 당분간 사지 않는다고 쳐도 그 비용은 상당했다.


우선 오롯이 나를 위해 쓰는 비용은 월 최대 10만 원으로 한정했다. 교통비(아무리 외출을 자제한다고 해도 월 4~5번은 전철 탈 일이 생긴다. 2 정거장 정도의 거리는 걸어 다니기로 한다)를 포함하므로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약 7만 원 안팎이다. 좋아하던 커피도 끊었다. 마침 빽다방의 2500원짜리 라떼가 3000원으로 올랐으므로 미련 없이 포기한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결론은 월 10만 원으로도 살아지더라는 사실이다. 월급을 받던 회사원 시절을 생각하면 놀라자빠질 일이다. 한 달 10만 원으로 살다니. 물론 먹고, 생활하는 비용은 별도로 들어가지만 내 개인을 위해 쓰이는 비용을 철저히 통제하니 그 돈마저 남는 달이 있기도 했다. 


물론 삶은 말할 수 없이 팍팍해진다. 특별한 날이 오는 것이 두렵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린 적도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누굴 만날 수도 없고 혹 어쩌다 만나더라도 2만 원 이상 지출하기가 겁난다. 면목없는 일이 자꾸만 생긴다. 그나마 사정을 잘 아는 최후의 지인이 불러내어주지 않는다면, 바깥세상에 나갈 일은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돈은 책 구입(주로 당근을 이용하지만), 1~2회 정도의 외식비, 끝까지 참다 월말에 한잔씩 사 먹는 라떼 값으로 쓰인다. 옷과 신발은 2년 8개월 전 구입한 것을 그대로 입고 있다. 비참함을 느낄 여유 따위는 없다. 삶의 유지가 최우선이니까. 돈 되는 물건들은 진즉에 내다 팔아 마음에도 없는 미니멀리스트가 된 것은 덤이다.


돈은 곧 자신의 행동반경을 의미했다. 돈이 없다는 것은 움직이지 못하고, 누굴 만날 수 없고, 최소한의 자존감을 위해 필요한 재화들을 좀처럼 갖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먹고사는 문제, 삶이 끊어지지 않도록 잇는 1차원적 문제에만 매달려 나라는 존재는 사회성을 잃고 점점 고립되어 간다.


그러나 어둠이 깊어질수록 인내와 고립이 무거워질수록, 점점 밝아지는 것이 있다. 내가 내손으로 쓴 대본이 점점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로소 지금보다 수백 배는 밝게 빛날 넥스트 라이프를 믿게 됐다. 정말 오긴 할까? 싶었던 일들이 하나 둘 현실이 됐다. 책도 냈고, 광탈이 기본이었던 최대 광고공모전 본선에도 진출했다. 


언젠가 자신들을 위한 구원자가 바다를 건너올 것이라 믿고 수백 년을 버텨온 일본의 가쿠레 기리시탄(에도 시대부터 명맥을 유지해온 숨은 가톨릭 신자, 그 후손)의 그것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일단 희망이란 것을 품게 됐다. 이 기간을 겪지 않았다면 결코 꿈도 못 꾸었을 인생 후반전 나는 차근차근 내 손에 쥐어질 무기를 만들어나갔다. 


인간의 수명이 100세에 이르는 시대에는 '다시 새롭게 배우는 일' 이 매우 중요한 논점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기술의 발달이 두드러지는 사회에서는 한번 배운 지식이 금세 진부해지고 마는 경향이 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자신의 경험을 초기화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타블라 라싸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야마구치 슈의 말처럼(사실은 존 로크의 견해이지만) 우리는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 40대에 이르러 기존의 삶을 고수했다간 앞으로의 수십 년이 더 비참해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언제 가는 반드시 자신의 대본에 의해 살아가야 하는 삶을 선택해야 할 시간이 온다. 


안온한(그렇다고 믿어지는)삶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스스로 암흑기를 갖는 일 따위 익숙하지 않다. 머리는 알고 있지만 마음이 차마 움직이지 않는다. 당장 50대의 삶이 그려지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발을 벌벌 떨며 마침내 새로운 삶에 도전장을 던지기로 마음을 먹은 '돌은 자'가 있다면 먼저 돌아본 자의 말을 꼭 들어달라. 


준비되지 않은 퇴사, 아서라, 엎어라. 굳은 결심? 체력? 따위 다 필요 없다. 적어도 2~3년은 아무 일도 안 해도 먹고 살만큼의 돈이 없다면 무책임한 도피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현실이라는 괴물 앞에 속수무책이다. 


저축하라. 마치 다시는 돈 벌지 못할 것처럼. 


술 한번 덜 먹고 돈을 아껴라. 주식에 코인에 부동산에 투자할 종잣돈도 좋지만 가장 확실한 투자인 나를 위한 돈을 비축해둬라. 그 돈이 얼마가 되었든 그 자체로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기에 턱없다. 단, 암흑의 시간을 버텨내기에 충분한 정도라면 묵묵히 인내하라. 반드시 빛의 신세계가 기다릴 터이니 그 영광스러운 날을 위해, 나를 위해 써라.


믿어도 좋다. 

작가의 이전글 마흔일곱, 여덟 번째 광고공모전에 나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