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고 속절없어 하릴없는 날
그런 날이 있다
지나치듯 흘린 것들이
사무치는 날이
그런 날이 있다
네 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
너의 향기로 채워지는 날이
그런 날이면 견딜 수가 없어
벗은 발로 뛰쳐나가 본다
기억의 조각은 하나 둘
니가 되었다가 수 천의
얼굴이 되어 수 만의
목소리가 되어
나를 보고 스쳐 지나간다
내 이름을 부르며 지나간다
그럴 때면 하릴없이
풀려버린 다릴 안고
두귀를 꼬옥 막아본다
두 눈을 질끈 감아본다
가슴을 쥐어 뜯어본다
흉터 위에 또 하나
생채기가 새겨진다
그런 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