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회사에 다닌지도 벌써 22개월차. 지난 2년간 주변 동료들로부터 말은 들어봤지만 지금까지 써볼 기회가 없던 휴가가 있었으니, 바로 "교육휴가"였다. 독일어로는 빌둥스차이트 Bildungszeit (얼마 전까지는 Bildungsurlaub이라고 불렀었다), 영어로는 educational leave라고 부르는 이 휴가는, 기본으로 주어지는 연차와는 별도로 주어지는 일종의 보너스 연차이다.
연차인 만큼, 회사에 가지 않고, 내가 평소에 관심있던 분야에 대해 연 1-2주간 심도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분야도 본인의 직무와 상관 없이 각종 외국어, 요가, 페인팅 등 다양한 분야가 인정이 된다.
우리 회사는 기본적으로 연간 연차가 30일인데, 빌둥스차이트의 경우 2년 동안 10일이 별도로 주어진다. 2년 동안 10일이 무슨 이야기이냐면, 당해에 내년 것까지 열흘을 한꺼번에 쓰던지, 매년 당해에 주어진 5일씩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2025년을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이렇게 두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1안: 2025년+2026년분을 모아서 2025년에 열흘을 한꺼번에 사용 (2024년에 빌둥스차이트 연차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소급적용할 수는 없음)
2안: 2025년에 5일 사용, 2026년에 5일 사용.
이렇듯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연차이니, 꼭! 없어지기 전에 쓰시길 바란다.
자세한 사항은 베를린 시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찾을 수 있다: https://www.berlin.de/sen/arbeit/weiterbildung/bildungszeit/
말만 들으면 파라다이스 같은 빌둥스차이트이나, 몇 가지 제약 조건이 있다.
1. 시에서 인증하는 프로바이더의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개별 문의는 필수)
2. 5일 동안 최소 30시간 이상의 시수를 이수해야 한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봐도 하루에 6시간 정도 수업을 들어야 하니, 아주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3. 등록비는 본인이 직접 부담해야 한다.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3월 28일에 독일어 시험 중 하나인 텔크 시험이 잡혀있어서, 3월 17일부터 21일까지 한 주를 독일어 랭귀지 스쿨에 다니는 것으로 결정했다.
베를린에는 수십 군데의 독일어 사설 학원들이 있으나, 그 중에서 빌둥스차이트로 인증된 기관은 극소수이다. 나는 폭풍같은 검색과 이메일, 유선문의를 통해 프로그램의 세부사항과 가격을 알아보았고, 최종적으로 GLS라는 곳을 선택했다.
GLS를 선택한 것에는 별다른 이유는 없다. 매주 월요일마다 개강을 한다는 점 (한 반이 개강을 하면 그 달은 쭉 같이 가는 게 아니라, 매주 사람이 바뀌는 시스템)과 가격이 그나마 합리적인 편이었다는 것이다.
여러 프로그램들 중, 주 30시간의 시수를 채우기 위해서 Super Intensive 코스를 수강했는데, 1주일분 수업료 380유로에 + 신규학생 등록비 15 + 교재비 20유로까지 해서 총 415유로를 냈다.
개강 전에 1시간짜리 온라인 레벨 테스트를 보고 A2.2반에 배정을 받았고, 기존에 구성된 반에 추가 인원으로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어떤 학원들은 빌둥스차이트를 신청한 사람들만 따로 모아서 1년에 몇 번 정도 별도의 반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GLS는 매주 사람이 물갈이 되는 시스템이라서 내가 빌둥스차이트를 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
5일간의 시간표는 아래와 같았다.
9:00-10:30: 1교시 (선생님 A)
11:00-12:30: 2교시 (선생님 B)
-> 이렇게 두 교시가 코어 수업 시간이고, 많은 친구들이 이렇게 오전 수업만 듣고 간다.
하지만 나의 경우 수퍼 인텐시브 코스였기 때문에 오후 수업이 있었다
12:30-13:15 점심시간
13:15-14:45: 3교시 (선생님 C)
랭귀지 스쿨이 그러하듯, 반에는 갓 스무살이 된 어린 학생들부터 사회 초년생 정도가 많았고, 인원은 적게는 4명부터 많게는 7명 사이였다. (하필 내가 다녔던 주에 BVG 파업 이슈가 있어서 참석률이 매일 들쭉날쭉했다) A선생님과 B선생님은 연륜이 있는 베테랑 선생님들이었는데 두 분 다 너무 좋으셨고, 수업을 잘 이끌어나갔다. 교재는 Netzwerk Neu A2.2 라는 처음 보는 교재였는데 나쁘지 않았다.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교재는 Menschen과 Momente)
사실 1주일만 공부하고 나갈 학생이라서 대충 봐주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차등 없이 똑같이 숙제도 잘 봐주시고 질문도 많이 해주셔서 좋았다. 1교시와 2교시는 단과반처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세트의 개념이라서 선생님들끼리 서로 진도도 쉐어하고 협동적으로 가르치는 점도 좋았다. 두 선생님 모두 교재 진도를 기반으로 한 액티비티 및 그래머 토픽을 적절히 섞어서 강의를 하는 방식이었다. 스포츠에 관심이 하나도 없는데 그 주 토픽이 스포츠라서 조금 아쉬웠지만, 문법적인 진도는 접속사라서 정말 많이 배웠다. 아무리 들어도 돌아서면 까먹는 독일어 접속사의 세계.....
반면에 오후에 있었던 스피킹 수업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선생님도 선생님이지만, 기본적으로 오후 수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선생님왈, 3월은 아직 로우 시즌이고, 여름 방학 때가 본격적인 하이시즌이라고 한다) 한 반에 너무 많은 레벨의 학생들이 섞여있는 것이 문제였다.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4-6명 정도였는데도 각자의 레벨이 A2.1에서 B1 극초반까지 다 다르다보니, 선생님도 어디에 포커스를 두고 수업을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첫날 이 점에 대해서 피드백을 하자, 최대한 모두가 하나라도 배워갈 수 있게끔 방도를 찾아보겠다고는 했으나.... 선생님의 우왕좌왕 티칭은 마지막날까지 그리 개선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시설도 정말 좋고, 위치와 주변 환경도 너무 좋고, 지하에는 칸틴도 있고 (맛은 별로 없다..), 마당과 휴게시설까지 멋드러지게 조성된, 정말 좋은 랭귀지 스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여력이 된다면 돈을 많이 모아서 2주짜리 프로그램을 듣고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비록 수요일 & 목요일에 BVG 파업이 있어서 택시비를 많이 쓰긴 했지만... 날씨까지 너무 완벽해서 벌써부터 꿈처럼 느껴지는 독일에서의 첫 빌둥스차이트가 이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