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준상 Aug 21. 2018

태백산맥 (1-10권)

북리뷰-소설

1. 나의 외할아버지는 625 참전용사이시다. 입대직후 여순사건 진압에 투입되었고 한국전쟁을 오롯이 겪으시고 휴전 후에 제대하셨다. 책을 읽는 내내 지금은 병상에 누워계신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들여다 보는 기분이었다. 특히 1.4후퇴와 중공군 개입 부분은 할아버지에게 직접 들었던 이야기들이 대입되면서 실감나게 읽었다.


2. 조정래 작가의 책도 처음이지만, 10권 되는 소설을 완독한 건 난생 처음이었다.(내 또래 애들은 한때 해리포터 다 안읽으면 이상한 애 취급 받았는데, 그게 나다.) 흡입력이 너무 강해서 읽는 한 달 정도 되는 기간동안 이야기에 푹 빠져 살았다. 염상진-염상구 형제, 하대치, 심재모, 외서댁, 정하섭 등 많은 인물들이 내 생활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기분이었다.


3. 줄거리를 간략히 추리자면 여순사건부터 휴전직후까지 벌교를 비롯한 전남지방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좌익세력과 빨치산들의 이야기이다. 여러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들도 간간이 등장하는데 소설 속의 주요인물들이 더 실존인물 같은 느낌이다. (태백산맥 드라마에서 배우 김갑수가 염상구 역할을 맡았는데, 나는 조재현을 상상하며 읽었다 ㅋㅋ)


4.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역시 역사책에는 드러나지 않는 사회 밑바닥 민중들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점이다. 역사 교과서에서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기간은 이승만 입장에서 쓰여진 몇 줄로 끝나는데, 실제로 땅주인이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일가족이 몰살되는 상황에서 농사 짓고 사는 민초들의 모습을 보면서 진짜 교과서를 읽는 기분이었다. 부모님 세대를 통해 전해들은 것들이 고스란히 책에 담겨있었고, 특히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소작인이 지주를 해하고, 지주 가족은 소작인에 다시 복수를 하면서 이념 차이 배경차이가 실제 원수사이로 변하는 과정은 가슴이 많이 아팠다.


5. 기본적으로 좌익세력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우리가 익숙한 국군의 입장이 아니라 그 반대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보도연맹사건, 거창 양민학살 등의 사건들이 등장하고, 북한군의 만행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좌익세력은 의적과 같은 이미지로 묘사된다. 그런데 이건 진영논리로 보기보다는  소설 자체가 좌익의 이야기이고, 역사를 균형적인 관점에서 보게 한다는 정도로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6. 소설 자체를 많이 보는 편도 아니고, 국내소설은 고등학교 이후로 잘 읽은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학생 때는 오히려 읽기 힘들다고 생각했을 부분들이 재미있게 와닿는 경우가 많았다. 대화에 전라도 사투리가 80프로 이상인데, 사투리와 욕설들의 찰진 느낌이 바로 옆에서 누가 읽어주는 것 처럼 생생하게 전달된다. 문학적 가치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7. 태백산맥이 와닿고 생생했던 이유는 그 당시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현재의 한국사회를 여전히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주와 소작인의 대립, 기득권의 권력욕과 비리, 시대정신에 조소하는 지주의 자식들 어느하나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 국민방위군 사건 부분에서 수만명이 아사하는 상황에서도 책정된 예산을 빼돌리려는 권력자들, 그리고 그것을 개인의 안위를 위해서 실제로 자행하는 중간 관료들의 모습은 지금도 현재 진행중이지 않은가. 책을 읽던 중 아시아나 기내식 하청업체 사장의 자살 기사를 보면서 지금 한국사회도 그 당시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많이 아팠다.


8. 써놓고 보니 무거운 이야기만 있는 것 같지만, 다 읽은 지금 가장 기억나는 건 정하섭과 소화, 하대치와 장터댁, 염상구와 외서댁의 이야기다. (역시 소설이든 영화든 애정씬이 있어야...)무거운 이야기는 무거운대로 가벼운 이야기는 가벼운 대로 잘 묻어 있어서 술술 재미있게 잘 읽었다.


9.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20세기 격동의 시기에 이념에 치이고 권력에 고통받고 담장 바로 옆 집 사람 조차 믿을 수 없는 시대를 살았던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게 드는 존경심과 감사함이었다. 재미없는 얘기지만 그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아직 우리는 갈 길이 먼 것 같다. 그들이 말했던 그런 시상이 오겠지.


#태백산맥 #조정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