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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준상 Nov 02. 2018

징비록

북리뷰-역사

#징비록 #유성룡


1. 역사 관련 책은 몇 권 읽어봤지만 실제 역사서를 읽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보통 삼국유사 같은 우리나라 역사서들은 쉽게 쓰여있지 않아 잘 안읽히는데 해설이 달린 책을 보는 것보다 원본을 보는 것도 제법 유익한 점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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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선 재밌다.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한국전쟁의 진행과정을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면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진행과정을 볼 수 있는데,그 서술이 딱딱하지 않고 소설을 읽는 것처럼 부드럽게 읽힌다. 임진왜란에 대해 말은 많이 들었어도 대부분 수업시간에 배운 것이라 전후의 국제정세나 우리나라의 정치상황 같은 딱딱한 내용 외에 아는 바가 없었다. 징비록에서는 그 당시에 조정에서와 백성들의 분위기가 어떠했고 왜적의 침입에 대해 공포감이 어땠는지, 선조는 어떻게 피난을 했고 얼마만에 한양과 평양이 함락됐는 지 등 경과와 감상에 대한 내용들이 실감나게 쓰여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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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전에 읽었던 ‘역사의 역사’와 연관지어 생각해보게 되는 점도 있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고위관직을 지내고 있던 사람이 난이 끝난 후에 쓴 회고록이다. 자신이 직접 겪은 것들과 전해 들은 것들을 모아서 쓴 책이다보니, 역사의 역사에서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전쟁사들이 생각나는 부분이 많았다.내가 읽은 책이 다이제스트 버전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 두 역사서에 비해 최근에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사실 징비록은 뛰어난 역사서는 아니다. 어쨌거나 비교할 만한 부분들을 떠올리면서 읽는 재미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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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상의 문제겠지만 지금의 국제정세나 국내 정치상황도 조선시대와 현재가 그닥 다를 게 없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임진왜란의 정명가도가 300년 뒤에 결국 경술국치로 돌아 온 것도 그렇고, 지금의 국제정세를 보더라도(물론 올해는 좀 달라지긴 했다만) 한국이 열강들 사이에서 힘을 못쓰는 가운데 국내의 무능한 관료들 때문에 무고한 백성들이 고통받는 부분도 그랬다. 

_여러 인물들이나 전쟁의 과정들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세세하게 알 수 있었다. 임진왜란 하면 이순신이나 권율, 곽재우 정도만 떠올릴 수 있었는데, 원균이나 배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영화 명량에서 처음 접하긴 했다), 선조가 피난 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다.

_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이 한국전쟁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서 흥미로웠다. 방심하고 있다가 전쟁이 터지자마자 왕이 먼저 도망을 가는 것도 그렇고 외세의 도움을 받아서 전쟁을 끝내게 된 것도 그랬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일이 일단 터지고 나서 수습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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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물론 생각보다는 읽기 쉽게 쓰여진 책이긴 한데, 역시 옛날 책이라 읽으면서 적응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면 서술에 시간 순서가 좀 뒤죽박죽이다. 결과를 먼저 말하고 그 결과의 배경부터 순차적으로 다시 설명하는 식이다.

_”권율을 행주에서 왜적을 패퇴시키고 파주로 이동했다. 그 전에 권율은 광주 목사를 지내고,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 행주에 진을 치게 된 것이다.” 이런 식이라, 초반에 좀 적응이 필요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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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역사적 가치도 있는 책이지만, 한 국가의 재상을 지내면서 임진왜란을 지휘했던 인물이, 왕을 비롯해 자신과 다른 관료들이 잘못했던 점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 책을 썼다는 사실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회고록에서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후손들이 다시 저지르지 않았으면 하는 잘못들을 적어 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물론 결과적으로 대부분 되풀이 되기는 한 것 같지만) 그리고 실록에서는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을만한 선조나 그 주변 관리들의 잘못들이 기록되어 있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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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읽으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라고 하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살던 시대같은데 막상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지금 사람들과 비슷한 심리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 간의 갈등이나 관리들의 보신주의 같은 것도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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