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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준상 Nov 27. 2018

잘 넘어지는 연습

북리뷰 - 에세이

#잘넘어지는연습 #조준호


1.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책 부류가 있는데, 첫째가 내용 없는 감성 에세이, 둘째가 스포츠스타가 쓴 책이다. 이 책은 스포츠 스타가 쓴 감성 에세이다. 근데 재미도 있고 내용 수준도 떨어지지 않아서 잘 읽었다. 글을 엄청 잘 쓴다거나 내용이 굉장히 알차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고 읽은 뒤에 남는 내용도 많다.다른 운동선수들이 쓴 책도 이런 정도면 더 읽고 싶다.


2. 일부러 기름 줄줄 흐르는 감동적인 글귀를 쓰면서 갬성갬성하는 책이 아니고, 유도 선수였던 작가의 경험담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읽으면서 스포츠 선수들이 일반 대중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선수들은 한가지에 온 정신과 육체를 집중해서 최대치를 끌어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좌절도 겪게 마련이니까. 조준호 선수는 유도선수로서 완벽한 성공을 이뤘다고 하기는 힘든 선수인데, 그래서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더 많고 읽는 사람에게 귀감이 될 만한 내용이 더 많았다.


3. 선수들이 들으면 화낼 수도 있겠지만, 다른 분야 중에 스포츠만큼 공정하게 실력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싶다.(물론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협회나 단체들의 정치 싸움도 심한 곳도 있고 약물 이슈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세상 일이란 게 나만 잘한다고 잘 풀리는 게 아닌데 경기장 안에서는 자신의 능력이 가장 절대적인 변수이니까 말이다. 그만큼 압박감도 심하고 자기관리도 철저히 해야하며 결과로 인한 좌절감이나 희열도 다른 어떤 분야보다 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4. TV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조준호 선수는 책을 많이 보는 것 같다. 글에서도 티가 난다. 다른 선수들의 자서전이나 선수가 쓴 책들을 보면 글에서 남이 손을 봐준 티가 많이 나는데, 이 책은 많은 부분이 스스로 쓴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보면서 더 감정이입이 잘 되기도 했고, 군데군데 귀여운 표현도 많아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5.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늘 생각해 오던 어떤 것을 포기하게 되는 순간에 나도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고 있다는것을 느낀다. 그런 때마다 약간의 좌절감과 씁쓸함도 같이 느낀다. ‘그런데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것이고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으니까’라는, 아니면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보다는 내가 좀 더 살기 편하니까’라는 얄팍한 생각으로 위안하면서 지나가게 된다.


책에서도 이런 감정이 많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그 분야에서 완전한 최고점을 찍은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낙법을 가장 먼저 배운다는 유도 선수이기 때문에 ‘잘 넘어지는 연습’이라는 제목에 가장 잘 맞는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가 여러 좌절들을 겪고 거기서 회복하는 과정에 나름의 자기합리화를 하고 ‘이만하면 잘 했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일부러 감성 잔뜩 충전해서 쓴 글들 보다 담담하지만 더 진솔한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6. 다른 책이었으면 그런 자기합리화들에 대해서 ‘또 위로랍시고 말같지도 않은 소리들 써놨구나’ 했을텐데, 그런 부분이 공감이 가고 감정적으로 동조할 수 있었던 것은 조준호 선수가 스스로 자기의 최대치까지 노력을 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의 한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자신감이 밑바탕에 있는 자기합리화여서 한 귀로 듣고 흘릴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위로도 되지만 자극도 되는 책이었다.


7. 감성에세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쓰려면 이런 식으로 썼으면 좋겠다. 곰돌이 푸처럼 사는 것도 행복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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