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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영작가 Aug 25. 2019

뜨거웠던 그 해 여름

사람은 추억을 먹고 성장한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다.”라는 말을 한다. 나는 이 말을 바꾸고 싶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성장하는 존재다.”라고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지나온 추억이 내게 주는 의미가 크다. 비오는 날 창밖을 내다보다가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문득 길을 가다가도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추억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중학교 시절, 너무나 뜨거웠던 여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그때의 열정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살면서 그때만큼 피나는 노력을 했던 때가 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매순간 노력하며 살아가는 나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면 늘 부끄러워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스스로 성취한 것에 대해 잊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성취라 할지라도 말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원하는 결과물을 얻었을 때의 기분은 그 어떤 행복과도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루어낸 성과는 또 다른 성과를 만들어내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워낸다.


 유난히 더웠던 그 해 여름, 나는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외롭지 않았다. 흔쾌히 함께 하겠다던 친구가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버스로 다섯 정류장을 가야하는 도서관을 매일 걸어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니 방학인데도 매일 도시락을 싸주신 어머니께 감사하다. 도시락을 싸는 것이 얼마나 신경 쓰이는 일인지 지금 나는 너무나 잘 알기에. 나의 노력이었다고 해도 온전히 그랬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 그 도서관의 모습, 분위기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던 몇 개의 계단과 도서관 앞마당에 있던 큰 정자 하나, 도서관 안, 벽에 달려 있던 몇 개의 선풍기가 생각난다. 함께 갔던 내 친구는 덥다며 도서관보다 정자에 누워 뒹굴뒹굴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나도 공부하다 잠시 쉴 때는 정자에 엎드려 책을 읽기도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기도 했다. 정자에는 선풍기 바람보다 더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하루 이틀 그리고 그 다음날도 어김없이 도서관에서 지내며 집보다 더 편하다 느꼈다. 공부가 재밌고 도서관의 모든 장소들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먼 길을 친구와 함께 걸으며 우리는 더운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참 즐거워했더랬다. 지금 다시 그렇게 살아보라고 해도 살 수 없을 것 같다. 지금은 더위를 바로 식혀줄 에어컨이 있어서 어쩌면 더위를 더 견디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부족했기 때문에 작은 것도 소중했던 그때 그 시절이 힘들었지만 참 그립다.

 여름 방학 내내 놀러 한 번 가지 않고 도서관에서 살았던 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는 한 달을 보냈다.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개학 후 치른 시험에서 단 한 문제만을 틀렸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너무 기뻐서 친구들에게 간식을 돌렸다. 이 일은 부모님이 내게 큰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나는 뜨거웠던 여름방학을 보낸 후 큰 자신감을 얻었고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것을 내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는 궁금해 할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다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어떻게 그런 열정으로 공부할 수 있었는지를. 사춘기라고 해서 무조건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인생에 회의를 느끼며 철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나로 하여금 열정을 쏟게끔 만든 건 바로 ‘결핍’이었다. 중학교 시절 나는 결핍을 늘 느끼며 살았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 열심히 살지만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하는 삶을 살았던 부모님, 인생에 장애물은 늘 나타나며 그런 현실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장 할 수 있는 ‘공부’가 전부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왜 공부를 해야 하나?”, “나는 진정 누구인가?”이런 고민은 내게 사치일 뿐이란 것을 일찍 깨달았던 거다. 그러니 누군가 내게 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결핍이라 말할 수 있다.


 올 여름, 나는 휴가를 가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있고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틈틈이 휴식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삶이 만족스럽다. 얼마 전 조정래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았다. 요즘 20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는 말이었다. 자신도 그렇게 살았고 그래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쉬지 않고 소설을 집필하며 그동안 두 번의 탈장 수술을 했단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쉬지 않고 매진하라는 그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계속해서 일을 해나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노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을 하는 것이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지도 힘들지도 않다. 내가 쉬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것이 쉬는 것이고 쓰는 것이 행복한 나의 일이다. 


 조정래 작가님은 소설가라면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글을 써야한다고 말한다.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한 글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 열심히 산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외치는 젊은이들이 늘어만 가고 그저 하루하루 즐기다 가겠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달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가 책을 쓰는 이유도 같다. 그저 한 번 읽고 잊어버리는 책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이 사회 속에 존재하는 ‘나’라는 존재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이며 글을 쓰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 열심히 살아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하지만 열심히 살지 않는다면 더 막막한 삶을 살아가겠지. 젊은 사람일수록 더 힘을 내어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최고치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정은 또 다른 열정을 낳고 재능은 꺼내 써 본 사람에게 또 다시 찾아오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의 뇌는 녹슬기 때문에 쉬지 않고 매진해야한다는 조정래 작가님의 말씀처럼 나 역시 그렇게 지금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순간들을 이어가며 살아갈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볼 때, “그래. 우리 둘째 딸, 너무 잘하고 있다!”라고 응원하실 수 있도록 말이다. 중학교시절 내게 큰 기대를 가지셨던 우리 아버지, 지금은 내 곁에 없지만 가슴속에서 늘 함께하는 우리 아버지에게 나는 지금도 그리고 언제까지나 희망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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