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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영작가 Nov 23. 2019

82년생 김지영, 우리의 이야기

모두가 알고 있기에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나와 이름이 같아서인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소설은 읽었지만 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다. 소설보다 더 재밌다는 후기글들을 읽으며 나중에 혼자서라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소설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어릴때부터 보고 들었던 이야기, 내 입으로 늘 떠들어대던 이야기였으니까. 한 언론사의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작가님은 <82년생 김지영>을 보면 화가 많이 나실 것 같아요. 꼭 읽어보세요."


 그녀의 말을 듣고 소설을 읽어보았다. 얼마나 화가 나길래 읽어보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오랫동안 답답했고 내 삶에서 직접 경험했으며 이미 많은 눈물을 흘린 뒤라 그런지 책을 읽으며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여자의 삶에 대해  어릴때부터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마 대부분의 여자들이 같은 마음일것이다. 

 영화관에서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린다고 한다. 여자들에게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는 새삼스럽지 않다. 매일 느끼고 생각하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 책에서 만나고 영화로 만나니 속에 갇혀있던 눈물이 터져나오는 것이 아닐까? 다들 이렇게 산다니까 참고 사는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때부터 여자의 인생에 대해 생각이 많았던 나는 머릿속에 불만이 가득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나는 할 말을 하고 살 것이다', '내 인생에 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이런 나도 막상 현실에서 부딪히니 별 수 없었다.  나는 다를거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나는 어릴때부터 성평등을 외쳤던 사회에 불만이 상당했던 여자였다. 드라마에서만 볼법한 스토리가 내 집에서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어머니의 삶을 지켜보며 늘 가슴이 답답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화는 뭐가 잘못된건지 제대로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70세가 다 되어가는 어머니는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자존감 낮은 삶이었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고 하셨다. 그저 힘들다고 느끼며 살았을 뿐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할 말을 못하고 살았던 세월을 후회하셨다. 그것도 딸이 쓴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참고 견디며 사셨다. 만족했기 때문에 침묵했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내 생각에 내가 어릴때나 지금이나 결혼한 여자들이 힘든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아 더 큰 책임감으로 육아를 담당하는 여자들은 삶의 많은 부분을 양보하고 희생하며 살아가고 있다. 갓난 아기를 키우다보면 제때 씻지도 못하고 아기를 안고 화장실에 가야할 때도 있다. 일을 하더라도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에 늦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여자들. 여자들은 엄마가 되는 순간, 아이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참고 또 참는다. 일상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서조차 동등한 입장으로 살아가기 힘든 현실이다. 그러니 여자들이 결혼과 출산을 원치 않는 현실은 당연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일에 있어서 여자와 남자의 삶이 결혼 후 크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다. 결혼을 하면 남자들은 연애를 할 때보다 일에 더 집중하며 일에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커질테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니 혼자 살면서 일을 할 때보다  더 안정적으로 일에 몰두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이가 생긴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거나 일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 집에 가기 싫으면 늦게 퇴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여자는 다르다. 아무리 사회에서 잘나가는 여자라도 결혼 후 출산을 하게 되면 경력을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결혼 전 능력과 상관없이 어느 순간 하향평준화 되는 분위기다. 

 내 친구 S는 대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임신과 출산 기간동안 그녀가 쉬었던 날은 고작 100일 이다. 만삭때도 출근을 했고 출산 후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직했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오래 쉬면 자신의 책상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악착같이 일하며 자리를 지켰다. 아이를 봐주는 시어머니가 없었다면 엄두도 못낼 일이라고 했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나마 하던 일을 할 수 있는 현실이다.

 미용일을 하는 L은 나를 볼 때마다 하소연했다. 자신은 미용일이 좋아 계속 일을 하고 싶은데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자신을 볼 때마다 일을 그만두라고 압력을 가한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둘이다보니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교대로 아이를 돌봐주는데 친정어머니가 자주 와서 남편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아내가 집에서 아이들만 봐주면 맘편하게 일할 수 있는데 부모님들이 교대로 오가니 신경쓰이고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일을 그만두지 말라고 했다. 일을 하고 싶어하는 여자들이 집에만 갇혀 있으며 견디지 못한다. 가족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결국 자라서 자신의 길을 갈테고 나이가 들어서 일이 없을 때 많이 외롭고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허무하다 느끼기 쉽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의 삶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남자라서, 여자라서 이러해야 한다는 것은 없어야 한다. 남자도 여자도 모두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여성 우월주의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은 딸이라고 해서 불만을 가지는 분위기가 아니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랄 때만 해도 어른들이 아들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아들이어서 더 반겼고 딸이라서 서운해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남자들처럼 당연한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여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학창시절 더 악착같이 공부하는 쪽이 여자들인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이 가지는 불만과 고통은 남자보다 더 많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평등한 존재임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사회에 나오면서부터 예상치못했던 차별을 경험하고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결혼과 출산을 통해 더 많은 불평등을 겪으며 여자들의 행복지수는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여자일수록 자신의 일을 해야하고 능력을 가져야하는 것이 아닐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누가 더 우월한가를 따지며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면 된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어떤 심정일까를 한 번 생각해보면 된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를 두고 이런저런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을 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82년생 여자들의 삶은 소설보다, 영화보다 더 혹독하다. 가끔은 매일 함께 하는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될 때가 있다. 영화가 이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한 번쯤  결혼한 여자의 삶을 생각해보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나 타인이 원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어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좀 더 따뜻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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