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와 존중이 결여된 조직문화와 배금주의
진상 손님이나 진상 민원인 (이하 편의상 손님으로 통일) 때문에 고통받는 공무원이나 교사, 또는 낮은 직급의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이야기가 매우 자주 들려옵니다. 우리 사회 속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상이 아닙니다 — 다소 과감하게 말하자면 비정상이 아닙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상들을 상식을 모르는 자들로 여기며, 이들의 행태를 잘못으로 여기고, 이런 자들을 애써 상대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최근 사건인 화성시 공무원의 교사를 상대로 한 패악질에 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공분했고, 패악질을 부린 공무원을 욕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실제로 진상이 출현하면 그들을 상대하는 말단 공무원, 교원, 서비스직 노동자 등은 그를 간단히 내쫓지 못하고 늘 쩔쩔매게 되는 걸까요?
가장 표층적으로는 진상 손님을 내쫓았을 때, 이런 대응이 조직 안에서 지지받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상급자가 손님이 하급자 말대로 정말 진상이었고 하급자가 온당하게 행동했으리라고 믿으면서 "그래, 적절하게 잘 대처했어"라고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진상을 쫓아낸 하급자를 질책한다는 말입니다. 내 윗사람이 내 편이 아니라 진상 손님 편을 드는 거죠. 직급의 피라미드를 좀 더 높이 올라가면 상급자의 태도는 '왜 이딴 일이 나한테까지 오게 하는 거야? 알아서 잘 처리했어야지. 제대로 안 해?' 같은 식일 수 있을 겁니다. 조직 내에 "우리는 한 팀이다"라는 느낌의 유대가 (그리고 애초에 그런 유대가 있어야 마땅하는 그런 종류의 사고방식 조차도) 없는 상황 속에서, 조직이 갖고 있는 방향성은 아무튼간에 손님의 불만이 없어져야 한다는 식이고, 유대 없는 조직 내부에서 손님의 불만 해소라는 까다로운 작업은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떠맡기는 피곤하고 싫은 일입니다. 윗분들은 아랫것들을 쪼아대며 ‘어떻게든 알아서’ 손님의 불만을, 민원을 해결하라고 닦달하고, 하급자들의 입장은 어떻게든 알아서 전선으로 나아가 적을 해치우라고 권총을 들이대며 윽박지르는 장교에게 떠밀려 겁먹은 채 전선으로 향하는 병사의 처지와 같습니다.
진상 손님은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며, 상대하지 말고 내쫓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손님을 내쫓는 것은 가능한 선택지가 아닙니다. 하급자는 탈출구가 없는 불가능한 미션 속에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사태의 표층이라면, 그 저변에는 조직이 이런 식으로 기능하게 만드는 인간 비존중의 문화와 배금주의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으로 창업을 했고, 직원들을 고용했다고 합시다. 설령 이 회사의 설립 목적이 돈 벌기일 지라도, 돈벌이 이전에 인격을 존중하는 기본적 태도를 지켜 마땅한 무언가로 수용하고 있다면 어떤 손님이 찾아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직원에게 폭언·폭행을 할 경우, 즉, 타인의 인격을 존중치 않고 짓밟는 행동을 할 때, 회사 사람들이 그 미친놈을 내쫓으며 서로를 보호할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가 직원의 인격보다도 돈벌이를 훨씬 더 우선한다면, 직원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회사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도구로만 본다면, 직원의 인격이 짓밟히든 말든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이 손님의 불만이나 해결하라고 채근하기만 할 것입니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어떤 태도는, 사실 돈이 왕이라는 선행 논리를 뒤따르고 있습니다.
1. 돈은 왕이다.
2. 돈은 손님으로부터 나온다.
3. 따라서 손님이 왕이다.
이 같은 사고방식에 기반한 사회적 행동패턴이 사회 전체로, 학교를 비롯한 공공기관으로도 번져서 교사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부모들에게, 말단 공무원들이 진상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는 상황이 만들어진 거라고 저는 봅니다. 그저 잡음 안 나게, 귀찮아지지 않게 알아서 잘하라고 윗분들이 아랫것들을 다그치기만 하는, 유대는 없고 내리 갈굼만 창궐하는 조직 문화는 서서히 번져오는 독가스를 그냥 방치했습니다.
한 편, 인간 존중의 태도가 희박했던 우리 사회의 지난 세월 동안 보통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존중을 경험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사회적 위치는 소비자의 위치였을 것입니다. 소비자(손님)는 왕이기에, 학생 시절엔 교사가 마음대로 몽둥이로 때려도 되는 짐승 같은 존재였던 나, 일터에선 상급자가 멋대로 반말을 하고 욕을 해도 되는 대상이었던 나는 돈을 쓸 때만 인격체로 존중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위계화된 인간관계 문화 속에서 상위에 위치했을 때 (예컨대 연장자일 때), 가부장적-위계적 가정문화 속에서 상위에 위치했을 때 (가장일 때) 등이 존중받을 수 있는 기회였겠지요. 하지만 배금주의적 사고방식이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이런 문화적 위치조차도 돈 없는 빈털터리면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진상 민원인이 흔히 사용하는 "내가 낸 세금 받아먹고살면서 감히 나를 이따위로 대접해?!" 류의 레토릭은 소비자의 위치에서 존중받는 경험이 널리 학습돼 있음을 드러내는 뚜렷한 징후입니다. 갈증이 심한 자가 더 다급히 물을 찾듯, 더 심한 존중의 결핍에 시달릴수록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존중을 얻어내려는 경향도 더 강해질 것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일자리에서 인격체로 존중받고, 상호 신뢰가 있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서로 돌봐주는 환경을 경험하지 못하고 조직의 목적과 상급자의 평안을 위한 도구로만 취급되는 상황에 노출될 때, 진상의 탄생 빈도는 올라갈 거라고 생각됩니다.
정리하자면, 인간 존중이 부족한 사회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인격체로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에 노출돼 살아갑니다. 배금주의에 젖은 사회는 돈의 원천인 소비자를 왕처럼 모시기에, 그 사회에선 소비자가 됨으로써 확실하게 존중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은 인격체로 제대로 존중받고 싶은 강한 갈증에 시달리며, 이들 중 몇몇은 그 갈증에 삼켜져 진상 손님, 진상 민원인이 됩니다. 이렇게 이성을 잃고 물어뜯으려는 충동만 남은 좀비마냥 진상으로 변해버린 동료 시민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업무를 맡은 사람들은 존중이 부족한 사회 문화 속에서 자신을 도구로만 취급하는 조직에 의해 말도 통하지 않는 좀비-진상을 내쫓는 대신 오히려 그들을 만족시키라는 불가능한 과업에 내몰리며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일선 노동자들이 진상 손님들에게 시달리는 상황을 해결하려면 이들이 불합리한 요구에는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게끔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조직 문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급자들의 태도가 "문제 안 생기게 알아서 잘 처리해라" 식의 떠넘기기에서 벗어나 리더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부당한 요구로부터 하급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잠재력은 제가 보기에 충분히 있습니다. 심각한 진상 손님 사건이 언론을 타면 주류 여론은 늘 진상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동료 시민의 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