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신경계의 전기・화학적 작용일 뿐이야!"

이런 말, 자주 접할 수 있죠?

by 마머

네, 맞습니다. 정신이라든가 마음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모두 신경계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화학적 작용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기분이나 감정 같은 것들은 신경계의 화학작용에 불과해!" 같은 방식으로, 마치 마음과 정신의 현상이 별 거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마음이라는 현상이 신경계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작용이라는 사실은 그 현상의 중요도나 가치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우리가 느끼는 바도 변함 없는데 말이에요. 이건 "백열등의 불빛은 필라멘트에 일어나는 전기적 작용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맞는 말이죠. 근데 그래서 백열등 빛이 갑자기 없어지거나 하찮은 것이 되나요? 그렇지 않죠. 전등빛이 귀한지 하찮은지랑 전등빛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는 서로 별개의 주제입니다. 여기서도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혼동하는 흔한 모습이 보이고 있을 뿐이라고 정리하고 끝낼 수도 있겠습니다만, 조금 덧붙이고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 "…일 뿐이야!" 또는 "…에 불과해!"라는 폄하의 말 뒤에 숨은 동기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확실한 건 화자가 마음이니 감정이니 하는 것들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왜 그러고 싶어 하는가? 거기엔 이제 사람마다 다른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수 있겠지요. 예컨대 어떤 감정이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그걸 좀 더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 방편으로서 저런 생각을 떠올렸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본인이 이런 배경을 잘 알고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모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자기가 왜 그러는지는 모르는 상태로 그 행동만을 반복하는 상태가 되겠지요. 감정과 이성을 대립항으로 간주하면서 감정을 평가절하하고 이성을 상찬 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마음은 신경계의 화학 작용일 뿐"이라고 역설하는 이들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화의 영향을 강조하며 인간의 인지현상 및 행동을 진화 일변도로 설명하려고 하면서 은근히 정신적 요소의 비중을 낮잡으려는 경향을 보이는 이들도 비슷한 부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요즘은 대놓고 그러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여자를 감정적 존재, 남자를 이성적 존재로 간주하며 이성의 감정에 대한 우위라는 전제를 깔고 이로부터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위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사람들도 비슷한 성향을 품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성팔이 좌파와 차가운 이성의 우파라는 콘셉트를 품고 있는 사람들도 유사성을 띨 것 같고요. 이런 사람들이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에 자연법칙의 칭호를 부여하며 사회복지라는 개념이 대자연의 법칙에 거스르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주장하기도 하죠.


이런 사람들이 보이는 유사성이 만약 정말로 있다면, 그건 구체적으로 어떤 성질일까요? 저는 그게 이해심, 포용, 도와주려는 마음, 호의, 부드러움, 온화함, 따듯함 등등의, 뭉뚱그려서 "좋은 마음"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향한 반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그런 "좋은" 것에 해당할 것 같은 대상이 가짜일 것이라고 여기며, 따라서 그것의 거짓됨을 드러내야 한다, 혹은 더 나아가 사실은 좋은 것이 아니므로 파괴해야 한다는 식의 정념이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마치 좋은 사람일 거라고 믿고 기대를 걸었던 누군가가 나의 기대를 배반하고 내게 등을 돌렸을 때 받은 상처에 시달리고, 그때 느낀 깊은 배신감에 휩싸인 모습 같습니다. 기대했던 사랑을 받지 못했던 탓에 얻은 큰 상처가 마음속 깊고 깊은 곳에 남아 의식하지 못하는 차원에서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결과 앞서 말한 저 성질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는, 그 사람의 성정을 좌우하는 요소는 보통 아주 어린 시절에 주로 부모와의 (부모가 아니라면 다른 주요인과의) 관계 경험에서 형성되게 됩니다. 부모의 삶이 힘들고 스트레스 많을수록 이 경험이 나빠지기 좋겠지요. 그러면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의 마음도 "좋은 것"을 향한 적대감을 크게 갖게 될 것이고, 그 결과가 옛말에 "민심이 사납다"라고 하는 그런 세태로 나타나지 않으려나 싶습니다.


참고할 만한 개념: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에 나오는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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