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현실의 인물이 이세계로 가는가?

하류문화 컨텐츠에서 많아지고 있는 이야기 전개 형식에 대한 작은 생각.

by 마머

최근 하류문화(subculture) 만화나 웹소설 중에는 실제의 현실세계를 살아가고 있던 사람이 창작된 허구의 세계로, 장르에 따라서는 옛 시대로, 즉, "이세계"로 이동해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옛날엔 그런 작품이 흔치 않았습니다. 드래곤 라자(이영도 저), 룬의 아이들(전민희 저) 같은 작품들은 우리들, 독자들이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에 있는 사람이 모종의 환상 세계로 넘어가서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그냥 처음부터 상상의 세계에 속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물론 옛날에도 현실을 환상 세계에 접붙이는 식의 작품이 없진 않았습니다. 가령 불멸의 레지스(가온비, 쥬더 저)의 경우 현실을 살던 소년이 환상의 세계로 넘어가서 여러가지 사건을 겪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현실의 인물, 주로 청소년이 환상 세계로 넘어가는 타입의 작품이 많이 나오면서 "이고깽물"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지요. 시기적으로 비슷하게 게임 판타지물도 등장합니다. 유레카(손희준, 김윤경 저)가 제가 아는 이런 장르의 초기 작품입니다. 현실을 사는 인물이 근미래에 고도의 컴퓨터 기술을 통해 아예 정신을 가상 세계로 옮기는 수준의 생생한 체험을 제공하는 게임 세계에 접속해 그 세계에서 여러가지 일들을 겪는 형식입니다.


이런 구성은 이제 너무나 보편화 되어서, 하류문화 웹소설의 당연한 도입부로 여겨지기에 이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본래 웹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는 아니지만, 최근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접해보고 싶어서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시리즈를 통해 작품 목록을 좀 훑어보았는데요, 이런 구성의 작품들이 대단히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도입부를 읽어본 몇 개의 작품에서는 이 뻔한 도입부를 숫제 대강 써 넘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형식이 범람하게 된 이유가 이것이 독자가 쉽게 주인공에게 이입하고 작품속 세계에 몰입할 수 있게 유도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면 나와 동떨어진 사람같은 주인공이 나올 때에 비해 더 주인공이 겪는 일을 내가 겪는 일 처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인공과의 동일시를 강화하기 위한 장치가 설치되는 것은 하류문화 소비가 모종의 대리만족감 소비가 되어가는 경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근래 많은 작품들은 매우 뛰어난 능력, 강한 힘을 보유한 주인공이 쾌도난마 승승장구 하는 전개를 보이는데, 이는 지지부진하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에 갇힌 독자들에게 약간의 해방감이나 성취, 성공의 쾌감을 제공합니다. 문화컨텐츠를 소비하는 주 목적이 여기에 있다면 독자가 주인공을 자기 자신의 대리인처럼 느끼는 정도가 클수록 소비 목적도 더 많이 성취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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