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수가없다」 감상문

주의: 본문에 영화 내용이 언급됩니다.

by 느림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했던 생각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주인공 유만수(이병헌)는 영화의 도입부에서 고용된 노동자들의 입장을 변호하는 멋진 말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전혀 들을 생각이 없는 외국 자본의 경영진에게 제대로 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지만요. 상황이 절박해지자 유만수는 일자리 경쟁자들을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처음에는 공감과 동정심이 있는 원래의 삶의 방식과 극단적으로 상충하는 행동(살인)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나중에는 능숙하게 해냅니다. 약자, 을(乙)의 입장인 사람들끼리 연대해 대응해 보려는 슬프게도 무력한 시도와, 줄어든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서 하나는 살고 나머지는 죽어야 하는 (물론 대형마트 일용직이 되거나 하는 방법으로 생존 자체는 도모해 볼 수도 있겠지만, 자존감과 만족감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이라는 차원에서는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연대 대신 경쟁에의 적극적인 (물론 과하게 적극적인) 참여가 주는 대조가 착잡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2. 기술의 도약적 발전, 이를 통한 생산과정 자동화의 초대형 혁신, 그리고 이에 따른 대량 실업 사태, 즉, 다수 인간이 쓸모없어지는 사태는 지금 우리 목전에 있는 엄혹한 현실이지요. 영화는 끝에 가서 기계만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없으니 조명이 필요 없어서 깜깜해진 공장에 혼자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그런 현실을 보여줍니다. 경쟁자를 모두 제거한 후의 유만수는 바로 그전 장면, 면접 장면에서 공장 자동화로 인해 대규모 인원 감축은 "어쩔 수가 없다"는 면접관들에게 "그래도 감시할 사람 한 명은 필요하겠죠?"라고 초조하게 묻습니다. 그는 기존에 해왔던 대로, 그가 자부심을 품고 있는 그의 능력인 거대한 종이 두루마리를 나무 봉으로 툭툭 쳐서 품질을 점검하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동시에 충격 센서가 달린 로봇이 마찬가지의 작업을 하고 있지요. 유만수의 자랑스러운 기술 역시 이제 필요가 없어졌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래도 그는 그 일을 하고 있지요. 그의 존재 이유 중 중요한 한 축인 그 활동을요. 이런 장면들은 우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사태를 보여줍니다. 감독이 이 상황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가까운 미래라는 뜻으로 보여주고자 했음은 확실한 듯합니다.


3. 유만수의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용사인데, 전쟁에서 돌아온 후로부터 이미 정신 상태가 불안정했다는 언급도 나오고, 돼지 농장을 하다가 돼지 역병이 돌아 2만여 마리의 돼지를 스스로 살처분해야 했고, 그 뒤 목을 매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분에서는 2010-2011년의 끔찍했던 구제역 사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청난 수의 돼지들이 거대한 구덩이 안에 밀어 넣어져 켜켜이 쌓이고 짓눌린 채 목청껏 비명을 지르는 장면은 그 일을 직접 한 공무원들, 군인들, 농장주들, 그 외 작업자들은 물론 영상으로 잠깐 접한 사람들에게 까지도 충격을 주었습니다. 작업에 직접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기도 했지요. 이때 전국적으로 살처분된 가축의 수가 물경 350만에 이른다 합니다. 이 때도 "어쩔 수가 없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이었지요. (물론 살처분 자체야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해도, 그 과정 상에 어쩔 수가 있는데도 안 좋은 방식으로 진행된 부분들도 있었고, 그런 점들은 나중에 많은 비판을 받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4. 저는 영화를 잘 알지 못하는 편입니다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대체로 미술적 측면에서의 화면 구성이 개성 있고 뛰어나며, 그다지 사회적 의제에 정치적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없이 예술의 자체적인 미의 차원에 (이야기의 흥미진진함, 시각 및 청각적 아름다움 같은 차원에) 집중하는 편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또, 웃긴 요소를 넣는 경향도 별로 없는 걸로 알고 있었고요. 하지만 이번 작품의 경우에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당면한 사회적 의제를 다루기도 하고, 유머러스한 장면들도 많았습니다. 아주 본격적으로 낄낄거리며 웃을 수밖에 없는 잘 만들어진 웃긴 장면들이 여럿 있었어요. 독일 극장에 걸린 포스터에는 "「기생충」과 비슷한 악마적인 개그 감각"이라는 워싱턴 포스트 지의 소개글 일부가 인용돼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점을 특징적이라고 느낀 모양이에요.


tempImagehFcw1q.heic 독일에 배포된 영화 포스터.


5. 작중 내내 제대로 된 첼로 연주를 보여주지 않던 주인공 유만수의 딸은 영화의 끝 무렵에 가서 훌륭한 첼로 연주를 하기 시작하는데요, 이때 아이는 자기가 다른 사람들의 첼로 연주 영상을 보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채보한 특이한 악보를 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색깔의 점이 격자꼴로 배치되어 있는 그런 악보입니다. 이걸 보고 저는 은행이 온라인 뱅킹용 앱의 개인 사용자 계정을 활성화할 때 쓰는 알록달록한 암호 그림을 떠올렸습니다.

tempImageoHiFw8.heic Foto TAN이라고 불리는 암호 그림. 은행에서 이걸 제시하면 개인 사용자가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여 온라인 뱅킹 앱 계정을 활성화하거나 기타 금융 작업을 승인합니다.

기계적 문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딸은 극 중에서 보이는 행동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마 자폐 스펙트럼 증후군 환자라는 설정인 것 같습니다. 자폐증 환자는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기능에 중증도에 따라 다양한 정도로 결손을 갖고 있습니다. 딸이 상징하는 것은 미래 세대의 인간이라고 가정해 보고, 딸이 그린 악보를 일종의 기계적 면모의 상징으로 이해해 본다면, 미래 세대의 인간은 기계와 상호작용을 잘하고, 어쩌면 그에 상응하게 기계적인 면모를 많이 띠고,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기능은 앞선 세대보다 떨어지는, 그런 모습이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표현된 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6. 자폐증이 있는 딸아이는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 하곤 하는데요, 아빠 유만수가 첫 번째 경쟁자를 죽이려고 시도했던 날 집에 와서 했던 말인 "벌레가 끓어서 나무가 죽는다"는 말을 영화 마지막 즈음에 합니다. 이때 언급된 나무는 유만수가 희생자의 시신을 묻고 그 위에 심은 나무이죠. 이 말은 만수가 한 행동이 윤리적으로 썩은 행동이고 그의 도덕성이 벌레먹어진 상황임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유만수에게 그의 행동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지요. 줄어드는 일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경쟁, 거기서 이기기 위해 경쟁자를 제거해야만 하는 "어쩔 수가 없는" 상황. 살인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사실 경쟁에 참여해야만 하는 현실은 우리 모두에게 어느 정도는 "어쩔 수가 없는" 것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며 해 온 선택들의 결과로 유만수는 "벌레가 끓는" 종착역에 오고 말았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튼 그 귀결은 벌레가 끓는데?" 이것은 해결하기 어려운 딜레마입니다. 이런 귀결은 과거 수많은 자살자를 만들어낸 쌍용차 대량 해고 사태 때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들과 해고된 노동자들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넓게 보면, 시장주의적 경쟁을 핵심 이념으로 삼는, 자살률과 우울증 유병률이 세계 최고인 우리 사회 전체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무리 어쩔 수 없었다 해도, "그렇지만 결국 네가 죽인 경쟁자의 시체에서 벌레가 들끓어 나오는데?"라는 의문은 주체가 평안에 이르지 못하게 끊임없이 괴롭히는 윤리적 문제입니다. 이 불편함이 결국은 주체를 끊임없이 "정말로 어쩔 수가 없는가? 다른 방도는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궁구하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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