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학 님의 브런치 글 『심리치료적 통찰(인사이트)에 관한 소고』를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써 보았습니다.
치료자는 내담자로 하여금 숨겨진 (무의식에 있는) 심적 요소, 예를 들자면 어떤 소망 같은 것을 발견하게끔 해 주어야 한다. 이런 발견, 일종의 통찰이 우선 이루어지면 그다음으로 이것을 어찌할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 통찰 작업이 이뤄지지 않으면 치료자도 환자도 (또는 상담자도 내담자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길을 잃게 된다.
그런데 이 통찰은 오직 환자의 내면, 정신세계 속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일이기에 궁극적으로는 환자 스스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작업 중엔 길을 잃기가 쉽고, 치료자는 여러 이론 공부와 경험을 통해 이 길 찾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 더듬어 탐색할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인 환자뿐이다. 환자 개인의 고유한 마음은 치료자가 결코 이론적 지식을 가지고 알아낼 수 없고, 다만 이론이나 경험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 또는 추측일 뿐이고, 반드시 환자로부터 최종적으로 정말로 그러하다고 승인받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짐작은 틀린 것 또는 아직 나올 순서가 아닌 것으로 간주하여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
(요약해 옮김.)
참으로 그렇습니다. 병원에서 이런 작업을 간호사, 다른 심리치료사, 의사, 음악᛫미술᛫운동치료사 등의 동료들과 함께 항상 하게 됩니다. 회의 시간에 환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리고 환자를 둘러싸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각자 관찰한 바를 나누고, 여기서 발견되는 역동을 통해 환자의 마음속에 있되 환자가 의식하지는 못하는 어떤 요소나 구조에 관해 추측하고, 이렇게 벼려낸 가설에 기반해 어떻게 치료할지, 환자와 무엇을 할지 논의하게 됩니다.
이런 가설은 경우에 따라서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제시되기도 하는데요,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실제로 정서적 동요를 겪으며 감정적으로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의식적᛫이성적으로만 이해하면 대개 큰 효과는 없습니다.
내담자들은 상담실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적잖은 경우에 그 내용 자체보다는 왜 그 내용이 상담 상황이라는 매우 특수한 상황 속에서 꺼내놓아 졌는지, 어떤 배후의 마음 때문에 상담실에서 다른 게 아닌 바로 그 내용을 이야기하는 상황을 '스스로 자아냈는지'가 중요하며, 상담사는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조금 고치고 요약해 옮김.)
여기서 언급되는 '자아내진 상황'을 포착하고 이해하는 일이 바로 정신분석 이론에서 장면적 이해라고 (독: Szenisches Verstehen; 영: Scenic understanding) 부르는 것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환자가 하는 말을 포함하되 그 말과 말의 내용 뿐만 아니라 어조, 대화 분위기, 표정과 몸짓 등의 비언어적 표현 등등을 아울러, 환자와 치료자의 담화 상황은 하나의 장면(Scene)을 이루는데, 여기에는 환자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일들, 그 일들을 통해 내면화한 고유의 사고 및 행동 패턴, 치료자의 자체적 성향, 치료자가 환자의 행동에 의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는지 등등이 모두 들어가 버무려져 있습니다. 마치 치료자는 훈계하는 어른, 환자는 혼나는 아이 같은 장면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환자가 치료자로부터 뭔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게 있는데 받지 못해서 당당하게 항의하는 것 같은 장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에 관해서 어떤 방식으로 대화가 이뤄지는가?" - 장면적 이해를 하기 위한 일종의 길잡이 질문을 이와같이 써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금물을 가열하면 물이 펄펄 끓고 김이 나고 하는 번잡한 과정을 거쳐 결국은 소금만 남게 되듯이 심리치료의 다사다난한 여정을 통해 얻어지는 산물로는 (1) 환자의 근본적 욕망은 이것이구나, (2) 환자에게 불안을 불러일으키고 따라서 환자가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는 무서운 대상은 이것이구나, 가 있다. 이것이 심리치료 초기 과정에 달성해야 할 중요한 성과이다. 초기 단계가 지났는데 치료자에게 아직 이것이 명확하지 않다면, 이 치료는 길을 잃고 있는 중이다.
(요약해 옮김.)
환자가 사실은 이러저러한 것을 욕망했기 때문에 현재에 여차저차했던 것이었다, 또는 이러저러한 것을 두려워했기에 현재에 여차저차했다는 이해, 또는 그 두 가지가 조합되어 있는 사태에 대한 이해가 늘 치료의 초기에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저는 유보적인 입장입니다만, 이는 제게 아직 경험과 통찰력이 부족한 탓이 클 수도 있겠습니다.
최근 EMDR 치료를 배우면서 결국은 내담자가 저절로 중요한 곳을 향해 간다는, 아니,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과정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보거나 만질 수 없으며 언어화되기도 어려운 무형의 것이기에 비유와 은유를 통해 설명할 수밖에 없다. 환자가 알아서 자동적으로 근본적 욕망과 불안을 향해 다가가는 일은 마치 블랙홀의 중력에 각종 천체와 빛 등 우주 만물이 끌어당겨지는 일과 비슷하다. 우리 내면의 어떤 마음들은 크고 어떤 마음들은 작아서, 큰 것들은 더 세게, 작은 것들은 더 약하게 잡아당긴다. 이런 강약 차이는 있지만, 결국엔 모두 잡아당긴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EMDR을 이용한 한 예시를 보여주자면 다음과 같다.
가슴이 답답한데, 원인을 모르겠다는 내담자의 사례.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화면 속 공의 움직임과, 공이 화면 끝에 닿을 때마다 "둥 둥" 하고 울리는 소리 자극이 주어지고, 내담자는 눈을 움직여 공을 주시하며 소리를 듣는다.
내담자: 가슴이 답답합니다.
상담사: 좋습니다. 가슴이 답답한 느낌을 가지고 계속 가보겠습니다.
내담자: (공이 화면 끝에 닿을 때 나는 둥 둥 소리가 마치 북소리 같음.) 북이 떠오릅니다.
상담사: 좋습니다. 북을 떠올리고 계속 가보겠습니다.
내담자: 정글북이 떠오릅니다.
상담사: 좋습니다. 정글북을 가지고 계속 가보겠습니다.
내담자: 정글북을 보는 어린 제가 보입니다.
상담사: 좋습니다. 어린 자신을 가지고 계속 가보겠습니다.
내담자: (어린 자신의 주변으로 어릴 적 살던 방이 떠오르며 어머니가 방 밖에서 무언가 하고 있었던 상황이 떠오른다.) 저는 외롭습니다.
상담사: 좋습니다. 외로운 느낌을 가지고 계속 가보겠습니다.
내담자: (어머니가 뭔가를 하고 있고, 자신은 혼자 TV나 봐야 하는 상황. 자신의 자세가 눈에 띈다.) 아이의 자세가 축 늘어져 있습니다.
상담사: 좋습니다. 축 늘어진 모습을 가지고 계속 가보겠습니다.
내담자: 무기력한 느낌이 떠오릅니다.
상담사: 좋습니다. 무기력한 느낌을 가지고 계속 가보겠습니다.
내담자: (그 무기력감이 지금 몸에서 느껴진다. 엄마 없이는 TV나 볼 수밖에 없는,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어린이의 어쩔 수 없음이 느껴진다.) 네, 저는 무기력합니다.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저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어서 답답한 것이었네요!
(…)
이런 방법은 종래의 임상(Practice)에서 흔히 쓰이지 않는다. 말하기 치료 (Talk-Therapy)의 이름 그대로 말을 주고받으며 내담자에게서 "네, 저는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지난하다. 내담자는 내면의 저런 요소들을 밀어내고 소외시키는 데에 잘 적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를 쓰는 인지적인 작업인 '대화'를 할 때, 진실은 더 깊이 숨어버린다.
내담자의 내면 통찰은 중력에 이끌리는 만물과 같다고 했다. 북소리와 정글북은 아무 의미도 없지만 (심지어 정글북의 '북'은 그 '북'도 아니다), 내담자는 결국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가 닿았다. 정글북이 아니어도 그렇다. 사람은 나무를 봐도, 물컵을 봐도, 지나가는 구름을 봐도 자신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투사하여 볼 가능성이 크다. 가족과 떨어져 가족을 심히 그리워하는 사람이 무엇을 봐도 가족을 연상하는 것과 같다.
내담자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으로 돌아간다. 당장 급한 사정들, 또는 "현실"이라고 불리는 것을 우선하느라 밀어내야 했지만, 상담실에서 상담사의 안내와 함께하면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온다.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이란 사실 사람들 저마다의 소망, 예컨대 돈을 많이 벌거나 아름다워져서 부러움을 사기, 유명세를 얻기 등등을 슬쩍 가리는 말일뿐이다.
통찰이란 무언가 애써서 캐내는 일이 아니라, 중력에 따라 자연스레 몸이 기울어지는 것과 같다.
나는 통찰에 이르는 탐색의 과정이 심리치료의 성패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에 대한 여러 논의들을 동료 전문가들과 해 왔고, 여러 이론서를 탐독했다. 결론적으로, 현재 내가 생각하는 통찰에의 지름길은 아래와 같다:
1. 내담자가 자연스럽게 어떠한 느낌, 생각, 감정, 감각 등을 떠올리거나 거기에 머무는 것. (주의점은 생각해내려 하지 않기, 만들려 하지 않기, 분석하지 않기, 해결책을 찾지 않기,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기 등이다.)
2. 그 와중에 마음속에 일어나는 어떤 것이든 포착하기. (주의점: 맥락에 맞는지, 적절한지, 의미가 있는지, 상담사에게 말할지 말지, 무시할지 말지, 잡을지 놓을지 판단하지 않기.)
3. 이것의 반복.
(부분적으로 생략하고 요약해 옮김.)
자연스럽게 심상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의도적 (intentional) 개입을 배제하려는 기법에 대한 서술에서는 프로이트가 제안했던 자유연상 기법, 그리고 부유하는 주의력을 (독: "gleichschwebende Aufmerksamkeit", 영: Evenly-suspended attention, evenly-hovering attention, free-floating attention 등) 떠올리게 됩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나이 많은 분석가가 자기 상담실에 "no desire, no knowledge, no memory" (원하는 바 없이, 지식 없이, 기억 없이) 라는 구절을 써붙여놨다고 수업 시간에 얘기했던 일도 생각났고요. 마치 중력에 이끌리는 사물들처럼, 환자가 스스로 도달해야 할 그곳에 이끌려 갈 것이라는 믿음은 심리치료 과정을 지탱하는 대들보라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로이트가 쓴 글들 중에 특히 유명한 한 구절이 있는데, “Wo Es war, soll Ich werden“이라는 문장입니다. “그것(이드)이 있던 곳이 자아가 되어야 한다”로 해석할 수도 있고,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는 문장입니다. 이드를 환자의 근원적 욕망이랑 비슷한 것으로 본다면, 초자아로부터 용납되지 못하기에 강력한 불안을 야기했고 나아가 무의식으로 추방되어 있던 욕망이 의식화되고 자아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통합돼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것을 환자가 “중력”에 잘 이끌려 가서 “그것(이드)이 있던 곳”에 다다르게 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심적 요소가 숨겨진 데에는 늘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많은 경우엔 그 요소가 강력한 불안을 야기하기 때문), 환자는 그 이유들에 가로막혀 신경증적 증상을 갖게 됩니다. 무의식으로 추방된 요소에 접근하려는 시도, "중력"에 몸을 맡기고 "블랙홀"에 이끌려 가려는 시도들은 여러 가지 강력한 힘에 의해 방해받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방어기제라고 (독: Abwehrmechanismus, 영: Defence mechanism) 불리는 것들이겠지요. 방어기제를 통해 “밀어내” 진 것들은 방어기제가 약해졌을 때 좀더 수월하게 의식으로 떠오를 수 있을텐데, 윤제학님의 글에 나온 EMDR 치료 상황도 그런 것일 수 있을 것 같고, 일상적으로는 잠자는 중이 그런 상황일 수 있겠습니다. 정신이 또렷한 각성 상태에선 전혀 의식에 가까이 오지 못하던 내면의 내용물들이 의식적 정신이 잠든 사이 슬쩍 꿈에 등장할 수 있지요. 물론 자는 중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고 다른 것인양 둔갑해서 꿈에 나타나지만요.
사람들이 무언가를 "현실"이라고 부름으로써 사실은 이런저런 욕망을 은폐할 따름이라는 얘기도 좋은 통찰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은 본인으로서는 달리 손쓸 방법이 없다는 뜻으로 "현실"이라는 말을 쓰곤 할 겁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인걸요!" "그러나 그게 현실이야!" 참 많이 들어본 표현 아닙니까? 때로는 자기 변호를 위해, 때로는 타인에게 뭔가를 강요하기 위해…. 이 어법의 대표적인 대항마는 "no, you always have a choice"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반박은 사실은 몇 가지 선택지가 있으며 누군가가 그중 하나의 선택만이 (강요된) "현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그가 나머지 선택지를 선택하기를 거부한 결과라는 뜻을 함축합니다. 그리고 그가 그 나머지 선택지들을 결코 고르지 않는 (혹은 고를 수 없는) 이유에는 그의 욕망과 불안이 관련돼 있겠지요.
윤제학 님의 글은 신경증자의 심리치료 과정의 중요한 요소들을 참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고, 여러 가지로 일깨움을 주는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