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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un 25. 2020

살면서 처음으로 낯선 여자한테 따귀를 맞았다.

인종차별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코로나 19 사태로 해외에서 동양인 인종차별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해외에 나가 있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인들 걱정에 안부 연락을 돌린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대학생 때 겪은 인종차별을 떠올리게 된다.


유학생활 초기에는 영어를 못해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벙어리처럼 놀림받기만 했던 게 너무 쌓여있었는지 영어를 어느 정도 능숙하게 하고나서부터는 말싸움에 자신감도 붙었고 한국이 호주에 꿀릴 게 없다는 자부심도 최고치로 차있었다.


대학생 때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선배와 트램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와 선배는 마주 보고 앉았고 나와 등을 붙이고 앉는 자리에는 술에 취한듯한 (지금 생각하면 분명 약에 취한 거다) 마른 금발 여자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집으로 가는 2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와 선배는 한국어로 조용히 대화를 했다. 막차라 사람도 별로 없어서 적막만 흐르고 있었기에 눈치 보며 소곤댔다. 그러나 내 뒷좌석에 앉은 여자는 그마저도 거슬렸는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너네 그 아시안 좀 닥쳐"


만약 내게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면 난 미안하다고 하고 대화를 중단했을 것이다 (더 이상 작게 말하면 서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이미 조용했기에..). 그러나 인종차별적인 단어에 한껏 예민해져 있었던 난 이번만큼은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뭐라고?"

절대 기에 눌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썩소와 함께 인상 쓰며 되물었다.


"너네 아시안으로 대화하는 거 닥치라고. 호주에선 영어를 써"


고작 한 문장에 욕설이 난무했지만 결국 나한테 하고 싶었던 말은 영어를 쓰라는 것이었다. 내가 본인한테 한국어로 말을 건 것도 아니고 고성방가는 더더욱 아니었는데  왜 시비를 거는지 기분이 별로였다. 서비스직 아르바이트할 때 내가 중국어를 못한다고 해도 계속 중국어로 주문하는 고집불통인 사람들이 간혹 있긴 했는데 그 경우와 너무 다르지 않은가.


절대로 이 말싸움에서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


"아시안은 언어가 아니야. 우리가 하는 말은 한국어인 거고. 아시안은 사람이고 아시아는 대륙이야"

이런 것도 모르냐는 말투로 조곤조곤 설명해줬다. 이때부터 그 여자의 분노 게이지는 차오르고 있었던 것 같다.


"한국어는 한국에서나 써. 너넨 호주에 있으니까 영어를 써야 해"


"네 논리대로라면 호주에서는 쓸 언어가 없네. 영어는 영국에서만 써야지. 호주인들 참 안타까워 자국어도 없고"


말장난을 해버렸다. Korean은 Korea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그 여자한테 그럼 English는 England에서만 쓸 수 있는 거 아니냐고, Australian이라는 언어는 없지 않으냐고 비웃었다.


나의 비논리적인 말장난에 화가 났는지 그 여자는 그대로 손을 들어 내 뺨을 때렸다. 정확히는 손등으로 내 뺨과 귀를 스쳤다. 아프진 않았지만 기분이 너무 나빴고 초점이 나간 그 여자의 공허한 눈을 마주치자 공포가 엄습했다. 앞에 앉아있던 선배도 나도 모두 놀랐고 조금 떨어져 앉아있던 중년의 호주인 여성분이 괜찮냐고 물어보며 호주는 절대 이런 나라가 아닌데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대신 사과를 전했다.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날 때린 여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평온했고 그서야 그 여자 앞에 초점 없는 눈빛과 축 처져 앉아있는 남자도 보였다.


아 잘못 건드렸다.


트램 막차에 기사님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는 약에 취한 듯처럼 보이는 남녀 한 쌍. 분명 이미 경고받고 그 자리로 불려가 있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잠깐, 트램 기사님의 운전공간은 완전히 분리되어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단독 공간으로 승객들이 큰 소란을 피우지 않는 이상 상황을 모를 때가 많다. 그렇단 말은 이 커플이 다른 승객에게 위협을 가했거나 문제를 일으켜서 트램 기사님께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뺨을 맞고 잠시 사고가 정지되었을 때 마침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했다. 트램 기사님은 나보고 괜찮냐며 경찰에 신고해줄까라고 물었지만 솔직히 크게 진정성을 느끼진 못했다.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내리겠다고 했다. 호주 시민권자도, 영주권자도 아닌 내가 경찰서에서 얼마큼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불신도 가득했지만 유혈 사태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괜히 그 여자랑 더 엮였다가 내 얼굴을 기억하고 보복할까 봐 무서웠다.


아파트에 들어서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는 동안 선배는 괜찮냐고 계속 물어보며 걱정해줬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굳은 표정을 숨길수는 없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서는 거실에 불도 켜지 않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서 노트북을 열었다.


구글에서 찾은 호주 수상한테 민원을 제기하는 정부 공식 사이트 링크를 클릭하고 바로 글을 작성했다. 방금 내가 트램에서 겪은 일이 단지 한국어를 사용해서라는 게 너무 억울하고 분했고 이를 표출했야 했다. 인종차별을 겪은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정부 차원에서 캠페인이나 새로운 정책을 세워주기를 바랐다.


물론, 아무런 피드백도 없었고 그 이후로 달라진 것도 없었다. 아, 내 태도는 변했다. 인종차별을 당해도 맞서 싸우지 않고 그냥 무시하게 되었다. 인종차별로 칼부림이 일어난 사건도 전해 들었고, 어떤 미친놈한테 잘못 걸리면 정말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겠다는 위협에 신변 안전을 선택했다. 그리고 주변에도 늘 그런 일이 생기면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도 여전히 인종차별 문제에 누구보다도 더 분노하고 공감하며 관련 기사, 청원 등이 올라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인종차별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라서 호주만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호주가 다문화 국가로 유명해서 인종차별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유럽계 호주인이 많아 백인 우월주의가 알게 모르게 깔려있는 나라에서 본인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꿋꿋이 견디며 살아가는 외국인 모두를 응원하고 싶다.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으로 무엇을 이뤄내느냐가 사람들 간에 차의를 만든다."

- 넬슨 만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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