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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돈균 May 06. 2018

신학기

사건적인 봄

이토록 갑작스러운 사회아닌 타자들


달력의 시작은 1월 1일부터지만, 한국의 학생들에게 한해의 시작은 3월부터다. ‘신학기’라는 특별한 시간 때문이다. ‘신학기’를 특별한 시간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때야말로 학생들은 발본색원적으로 재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가 1월 1일에 다시 시작된다고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자기가 속한 일상의 물리적 상황이 달력 바뀌듯 바뀌는 일은 실제로는 드물다. 이직하는 일처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직장인들은 ‘새해’가 되도 만나던 사람을 그대로 만나고 하던 일을 지속한다. 나누던 얘기를 또 나누고, 읽었던 종류의 책을 읽으며, 비슷한 취미를 고수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그 사람의 고유한 사고와 취향을 동일한 방식으로 유지시킨다. 경험의 내용이나 생활 패턴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사실 이것이 그의 현재 정체성이다.  ‘정체성’이라는 뜻이 ‘아이덴터티(identity)’ 즉 ‘같음(동일성)’이라는 뜻을 담고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기의 ‘같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일, 바로 그것이 그의 정체성이다.

    

그러나 ‘신학기’를 생각해 보라. 이때는 참으로 놀라운 단절과 변화가 일어난다. 학생들은 정말 다시 시작하게 된다. 초등학생이건 중고등학생이건 대학생이건 간에 학생의 ‘신학기’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다. 곁에는 갑자기 새로운 친구들이 무더기로 생겨난다. 이들은 내 곁에 머물 사람들이며, 어쩌면 아주 긴 시간 함께 할 인생의 동료가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 이들 중에 기분과 취향과 신념을 나누고 교감하는 우정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있을 수도 있다. 때로 우정의 공동체는 연인들의 공동체로 바뀔 수도 있다. 이 공동체는 기능적 요소를 지니기도 하지만, 진정한 공동체일 경우 매우 정서적이며 때로는 맹목적일 수도 있다. 신념을 담보하기도 하며 몸을 공유하기도 하고,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누기도 한다.



이 무더기의 새로운 친구들은 신학기에 갑작스럽게 나타났지만 지하철에 동승한 무심한 행인들이 아니다. 신학기의 이 존재들은 지금까지 타자였지만 지금부터는 당신의 아이덴티티에 영향을 줄 ‘비타자’가 된다. 그들은,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 역시 자기와 타자 사이를 유동하며 출렁이는 존재가 된다. '김'의 과거와 아무 상관없던 그들은, 신학기 이후 '김'의 미래 시간을 일정 정도 담보하며 때로는 결정적으로 매개하는 특이한 존재가 된다. 학생 '김'에게 그들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잠재적 미래 시간을 굴절시킬 수도 있는 ‘사건적’ 존재다. 신학기에 만난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사회’가 아닌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묶인 특별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친구'나 '연인'이 된다.      



깊고 넓고 먼 곳을 개방하는 만남의 시간


신학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잠재적 계기를 담지하는 존재로 ‘선생님’이라는 타자가 있다. 학생이란 폭발적 감성과 지성을 잠재적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 존재다. 잠재성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의 현존은 이미 미래로 달리고 있으며 미래에 살고 있는 특별한 현상이다. 그래서 그 시기의 인간 현존은 40대나 50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이 시기에 누구와 만나 어떤 대화를 하는가가 그의 삶을 결정짓는다. 운이 좋은 경우,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타자들 간의 만남은 결정적인 존재론적 사건이 된다. 이 ‘사건’은 때로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초월하여 예상할 수 없이 넓고 강력한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비극 작가가 되려고 했던 플라톤은 시장통에서 젊은이들과 논쟁하고 있던 늙은 소크라테스를 만나 철학자가 됐다. 플라톤이 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인류의 전환을 가져올 이런 특별한 선생님과의 만남이 없으리란 법이 없는 게 신학기다. 우리 시대의 탁월한 시인들 중에는 자기가 시인이 된 것은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만난 국어선생님 때문이었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시인의 시간은 잠재적인 형태로 이미 그 만남의 시간에 예비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만남에서 미래는 그 자신도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미리 당겨진다. 미래의 한 과학도가 신학기를 계기로 중학교 수업시간에 만난 한 선생님의 영향력은 인류적일 수도 있다.  



대학의 신학기에서 새로운 선생님과의 만남은 상대적으로 학생 자신의 능동적인 선택에 의해 가능해질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수업과 교수를 선택할 수 있는 게 대학의 신학기이니까. 이 능동적 선택으로 인해 학생으로서 ‘나’는 한 인간의 학문적 핵심을 만난다. 그러나 강의실의 칠판 앞에 선 교수는 학문을 담지한 존재이므로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한 교수의 수업은 혼신의 전투를 감행하여 인류가 이룬 특정 분야 지금까지 앎의 거의 전체일 수도 있다. ‘나’는 하나의 새로운 강의를 통해 지금까지 나의 정체성을 이룬 지성과 감성의 대전환을 경험할 수 있으며, 그것은 내 정체성의 큰 확장을 이룬다. 자기 아닌 존재와의 조우로 발생하는 내 경험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우선 이는 타자와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타자는 전적인 타자가 아니다. ‘나’에게 개입하고 영향을 주고 운동하게 하고 반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는 나와 타자 사이에서 역시 유동하는 타자다. 이 유동성, 이 운동성이 클수록 ‘나’라는 정체성을 해체하고 확장하고 전환시키는 타자의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새로 쓰는 필기노트는 타자가 겪었던 경험의 시간을 내 시간으로 옮겨오는 일이며, 그가 소개하고 강의한 책의 목록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미지의 세계로 나를 인도하고 여행하게 한다. 나는 한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 선생님이 영향 받았던 또 다른 스승을 만난다. 이때 그 스승은  사람이 아니라 ‘책’일 수도 있다. 그 선생님의 선생님은, 다시 선생님의 선생님의 선생님으로 계속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인류라는 유적 존재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높은 이상과 깊은 지혜의 지점과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만난 타자는 생각보다 깊고 멀고 큰 존재의 바다와 닿아 있다. 그리하여 신학기의 나는 개별적인 ‘나’에서 ‘보편적인 우리’로 연결된다.

        


사건적인

 

신학기는 매우 ‘사건적인 시간’이다.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타자와 갑자기 새로 만나게 되는 시간은 흔치 않다. 이토록 내 삶에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속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타자들이 한꺼번에 출현하는 시간은 인생 전체에서 극히 드물다. 이 경험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내 안에 깃드는 타자들의 출현이다. 그들은 ‘친구’로 ‘연인’으로 ‘선생님’으로 갑자기 나타나서, ‘나’라는 좁은 울타리를 기습하고 침투하며 질문하고 반성하게 하고 운동시키며 어딘가로 함께 가자고 말한다. 이 중에는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누며, 섞을 수 없는 것을 섞으며, 줄 수 없는 것을 주고 받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을 알아듣는 타자와의 만남도 있다. ‘사회’가 아닌 '공동체'라는 비상한 만남이 가능해지는 시간, 그것이 바로 ‘학생’이라는 정체성이 맞이하는 신학기다.


타자는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나도 그들 안으로 들어가서 공감과 우정과 연인들의 공동체를 건설한다. 학생이라는 인생의 가장 유연한 정체성의 시간 지평에서 친구가 된 이들은 서로 가장 깊숙한 지점에 닿으며, 동지와 연인이 된 그들은 은밀하고 위태로운 세계를 함께 모험하는 자들이 되기도 한다. 어떤 선생님, 어떤 수업과의 만남으로 인해 우리에게는 고립된 개인을 넘어서 인류적 고민을 함께 나누고, 인류적 이상에 공동참여하는 길이 열리기도 한다. 폐쇄적이었던 개인은 공동의 지평으로 개방되며, 얄팍한 일상의 시간은 정신의 지층과 닿아 깊어지고, 현재는 미래의 우주로 확장될 수도 있다.

 

신학기라는 시간은 서로의 과거를 모르는 이들이 만나서 잠재적으로 서로의 미래를 탈취하고 선취하며 공유하는 기적이 예비되는 시간이다. 인생의 유연한 시간 지평에서 가장 강력하고 싱그러우며 달콤한 타자를 맞이하는 봄. ‘신학기’는 그러므로 3월에 시작되는 게 맞다.






* cover image: Havard University

** 도서관 이미지: 북경대학교



함돈균: 문학평론가.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를 지냈다. 인문정신의 공공성 실현을 위해 '실천적 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을 설립하여 동료 전문가그룹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공존-세계시민-생명의 가치에 기반한 창조적 사회디자이너 양성을 목표로 지구적 네트워크를 지닌 실험적 융합대안대학을 설계 중이다. 고려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예술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문학과 예술, 철학과 고전 과목 등을 강의해 왔다. 문체부, 교육부, 외교부, 교육청,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삼성리움미술관, 삼성전자연구디자인센터(R&D센터) 등 여러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교육ㆍ문화예술기관, 기업연구기관 등에서 인문예술교육과 융합교육프로그램을 기획ㆍ문ㆍ강의해 왔다.

현재 자유시민대학 전문가위원, 서울시도시건축포럼준비위원회 자문위원, 삼성디자인멤버십 자문위원,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스승이자 친구로서 뜻을 함께 하고 있다. 인문철학에세이집 『코끼리를 삼킨 사물들』 『사물의 철학』, 문학평론집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예외들』『얼굴 없는 노래』, 문학연구서 『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교육대담집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를 출간했다. 김달진문학상젊은평론가상, 고려대문인회신인작가상, 서울문화재단창작기금, 대산문화재단창작기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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