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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스키 Dec 29. 2021

<단편소설>오지납전

- 옆 동네 살인사건 ①

"어우 추워 어우."

가게 문을 열자 검은 물체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으악!"  

뒤돌아 보니 삐쩍 마른 고양이 한 마리가 경계 가득한 눈으로 노려 보고 있었다.

"거참, 무섭게도 째려보네."

다시 가게로 들어와서 스토브를 켜고 앉았다.

"들어올 틈이 없는데……." 

'낑낑 낑낑'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구둣방 안 여기저기를 살폈다. 한 평 남짓한, 딱히 일어나서 찾아볼 것도 없는 크기인데 도대체 어디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밖에서 나는 건가?" 

정체 모를 소리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어제 손님들이 맡긴 신발을 수리하기 위해 신발장 쪽으로 손을 뻗었다. 신발 한 켤레를 꺼내려는 순간, 

'물컹'

무언가 손에 잡혔다.

"……어?"

'낑낑 낑낑'

신발 안에는 눈도 제대로 못 뜬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신발 속에서 부둥켜안고 있었다.

"아이고 혼자가 아니었네!"

개미 한 마리 침입할 수 없게 관리해 왔는데 하룻밤 사이에 고양이가 세 마리나 들어오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내 구둣방에 개구멍 아니 고양이 구멍 같은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오직 입구인 미닫이 철문 밖에 없다. 어제 낮에 손님들이 신발 맡기는 틈을 타서 들어온 것 같다. 바깥에서는 고양이가 여전히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신발 속 두 새끼 고양이의 어미가 틀림없다.

"그만 쳐다봐! 네가 놓고 갔지 내가 데리고 왔냐?"

낑낑대는 새끼들을 한 손으로 집어 들어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아버렸다. 

'드르륵 쾅'

막상 내보내고 나니 이 추위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꾸르륵'

"에휴 내 뱃속 걱정이나 하자."

아침을 안 먹고 왔더니 아침부터 뱃속에서 꼬르륵 꾸르륵 난리도 아니다. 날씨가 추운 이런 날은 라면이 최고다. 포트에 라면 물을 올리고 며칠 전에 사뒀던 컵라면 두 개를 뜯었다. 하나는 분말수프를 넣고, 나머지 하나는 그냥 그대로 물을 부었다. 

"고양이도 뜨거운 거 먹을 수 있나 모르겠네."

분말수프를 넣지 않은 컵라면을 들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고양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새끼를 두 마 리나 데리고 멀리 가지는 않았겠지만 내가 지키고 있으면 먹으러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근처에 두고 들어왔다. 문을 닫으려는데 남자 하나가 철문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민다.

"열었어요?"

"그럼요. 신발 맡기실 거예요?"

"그건 아니고…… 경찰입니다."

문틈으로 경찰 신분증이 보였다.

"오 사장님이죠?"

"아……네, 무슨 일로 여기에……?"

미닫이 철문을 활짝 열어 밖을 보니 사십 대 초반쯤에 머리는 벗어지고 키가 백팔십 센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뭣 좀 하나 여쭐게요. 여기서 이십 년 넘게 가게를 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아 저기 부동산 사장님께 들었습니다. 혹시 이런 신발 보신 적 있어요? 수리를 했다거나."

경찰은 족적 사진 하나를 꺼내서 보여 주었다.

"흠...... 아무리 구둣방을 오래 했다고 해도 신발을 다 알지는 못하죠. 더군다나 신발 밑창만 보고라니…… 모르겠네. 근데 무슨 일이에요? 이 작은 동네에 경찰이 다 오고 큰 사건이라도 났어요?"

"아이고! 크게 났죠. 뉴스 못 보셨어요? 옆 동네 방화 살인. 한 달 전 사 건이기는 해요."

한 달 전쯤 옆 동네에서 텔레비전에서도 떠들썩하게 방송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이 경찰의 말에 의하면 방화에 의한 살인 사건으로 추정되는데 유일한 단서는 잿더미 속에 있던 족적이라고 한다. 피해자의 신원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탔지만 화재현장에 발자국만은 선명하게 남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족적 사진을 들고 다니며 주변 구둣방과 신발가게를 하나하나 확인해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경찰 양반, 그 사진 나도 하나 가지고 있어도 돼요? 혹시 알아? 범인이 신발 수리하러 올지?" 

"절차상 하고 있는 거지, 범인이 일부러 남긴 흔적 같은데 이걸 신고 다니겠어요?"

경찰은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아. 뭐 그래도 사장님 말대로 혹시 모르는 거니까 놓고 갈게요."

경찰은 적선하듯이 족적 사진 한 장을 두고 갔다. 경찰이 돌아간 후 나는 한 손에는 족적 사진을 쥐고 이미 퉁퉁 불어버린 라면을 입에 넣었다. 

'후루룩 쩝쩝쩝'

알 수 없는, 억눌려 왔던 무언가가 몸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내가 이 사건을 위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기분. 이 족적과 나는 뭔가 연결되어 있을 거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경찰 앞에서는 잘 모른척했지만 사실 나도 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꽤 많이 보고 들었다. 옆 동네 이야기이기도 하니, 핸드폰으로 틈틈이 확인해 왔다. 그리고 그 많은 기사들 중에 족적 이야기는 읽어본 기억이 없다. 내 기억력이 나쁜 것이 아니다. 이건 수사 기밀일 수도 있다. 경찰은 대수가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비밀 수사를 위한 연기였을 지도 모른다.

'꺼억'

라면을 어떻게 어디로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트림은 잘도 나온다.

"어이 지납이!! 아까 경찰 왔다 갔지?"

자기 가게 들어오듯 불쑥 문을 여는 이 사람은 부동산을 하고 있는 이 씨다. 이 구둣방 자리도 이 씨를 통해서 얻었다. 나도 이 동네에 20년이 넘게 있었지만 이 씨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아이고! 깜짝이야. 놀랬잖아. 왔어?"

경찰이 주고 간 족적 사진을 꺼내어 이 씨에게 보여 줬다.

"이걸 가지고 와서 아는 거 있냐고 물어보던데?!"

"아까 부동산에 왔더라고 이 동네 구둣방이나 신발가게 알려달라고. 뭐 우리 동네에 구둣방은 오지납이 자네 가게 하나밖에 없으니까. 근데 자네도 뭐 아는 건 없지?"

"아는 게 없긴! 내가 딱 보니까 범인은 키가 백육십 센티 이십 대 여자야."

"오메!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

"나를 못 믿는 거야? 내가 구둣방 경력 이십삼 년이야 딱 보면 딱이지. 봐봐 여기 이 사진! 이 오지납이는 신발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다고. 이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범인의 신발은 꽤 새 것인 것을 알 수 있고, 뭐 아니면 밑창을 간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꿈치 쪽이 사진에 흐리게 나온 걸 보면 범인은 팔자걸음일 확률이 높아. 그리고 이 얄쌍한 신발 모양은 젊은 여자들이 요새 많이들 신는 디자인이야. 발 사이즈는 이백사십. 그렇다면 키는 백육십 센티 초반으로 예상된다~ 이 말이지. 머릿속에 범인 몽타주가 그려진다니까."

"하! 우리 지납이가 웃기는 재주도 있고만. 이 참에 범인도 잡고 사설탐정으로 직업도 바꿔보면 어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고 있는 내가 바보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

나는 이 씨의 비꼬는 말에 빈정이 확 상했다. 

'쾅!'

구시렁대는 이 씨의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척하고 미닫이 문을 닫아 버렸다.

"내가 잡는다……라."

이 씨에게 화를 내기는 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범인이 진짜 우리 가게에 왔다면, 아니 온다면 저 신발을 신고 있지 않더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범인을 찾으면 신문에 뉴스에 다 나오겠지. 그럼 용감한 시민상도 꿈은 아닐 테고, 가게도 더 좋은 동네로 옮길 수 있고 그러면 명품 신발만 고치는 가게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아무리 잘 되어도 초심을 잃으면 안 되는 법이지. 그래도 좋은 동네로 가게를 옮기면 요금은 올릴 수 있을 거야. 그건 그렇고 방송에서 인터뷰하러 오면 동네 사람들이 잘 말해줘야 하는데 그동안 내가 실수라도 한 것은 없는지 잘 생각해 봐야겠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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