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깜깜과 어스름의 사이>
* 2021.04.05에 출간된 독립출판물 <깜깜과 어스름의 사이>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연재합니다.
독립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해방촌, 강남점), 이후북스, 지구불시착, 북극서점, 책빵소에 입고되어 있습니다.
거의 매일 한강으로 간다. 뜨겁게 데워진 여름의 열기가 식을 때쯤, 선선한 바람이 불어 걷기 딱 적당 할 때쯤 한강으로 간다. 한강은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자전거를 타고 갈 때와, 운동화를 신고 걸을 때와, 비가 내리고 난 다음 날과 곧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은 모두 다르다. 마음이 차분할 때도, 신나서 방방 뛸 때도, 또 어떤 이와 함께인지에 따라서도.
어제는 수빈과 갔다. 하루 종일 집에 있다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어 수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자전거를 이제 막 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따릉이를 끌고 신호등 앞에 섰다. 허리쯤 오게 의자 높이를 맞추고 브레이크를 쥐어보았다. 괜찮네, 괜찮은 따릉이다. 신호가 바뀌었다. 딱딱한 안장에 엉덩이를 올리고 손잡이를 꽉 쥔 채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끼릭끼릭, 이상한 소리를 내는 따릉이. 괜찮지 않은 따릉이였다. 속았네.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자전거 타는 사람을 따라 터널로 들어갔다. 환하게 밝은 터널, 그 너머의 새까만 한강. 터널을 지날 때면 다른 세계로 가는 것만 같다.
수빈을 만나기 위해 망원 방향으로 자전거를 굴렸다. 달리는 동안 왼쪽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확인했다. 수빈이 지나갈까, 서로 놓치면 어떡하나. 그러다 순간 멀리서 수빈이 보였 다. 서로 푸헤헤 웃으며 스쳐 지나갔고 나는 얼른 방향을 돌려 같은 곳을 보고 나란히 섰다. 수빈은 내 귀에 이어폰을 하나 끼워주었다.
헤헤, 달려 볼까.
다시 발을 굴렀다. 시원한 바람, 아른거리는 물, 진하게 풍겨오는 풀 냄새, 여름 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 그리고 귀에 들려오는 신나는 노래. 우리는 같은 노래를 흥얼대며 여름밤을 맞았다.
언니, 데려가 주고 싶은 곳이 있어.
뒤따라오는 수빈을 향해 외쳤다. 내가 발견한 장소, 좋아하기 시작한 장소, 보여주고 싶은 장소가 있어. 그곳은 KTX를 타고 갈 때마다 보이던 장소였다. 한강 옆에 웬 이상한 조형물이 보였고, 언젠가 저게 뭔지 밝혀내리라 다짐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한 달 전 드디어 정체를 파악했다.
왜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달팽이, 버려진 배, 고인 돌 조형물, 빨간 펭귄까지. 알 수 없는 조화로 기이하고도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소였다. 그중 펭귄 옆 에는 한강 위에 떠 있는 계단이 있었다. 어두컴컴한 물을 향해 점점 낮아지는 계단이었다.
처음 왔을 때는 멀찍이서 계단을 바라보며 뭐지, 이상한 장소가 있네 했다.
두 번째 왔을 때는 계단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았다. 검은 물이 나를 삼킬 것 같아 무서웠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 보이는 것들이 좋았다. 들리는 것이 좋았다. 일렁이는 검은 강물, 함께 들려오는 잔잔한 찰랑거림, 찌르르 찌르르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살랑살랑 불어오는 여름 밤바람.
세 번째 왔을 때는 어둠이 제법 익숙해졌다. 가만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친구를 데려왔다.
우린 한강을 바라보고 나란히 앉았다. 옆에서는 이따금 기차가 쿠궁쿠궁대며 지나갔다.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사람들, 혹은 어딘가에서 온 사람들. 강 건너편의 반짝이는 불빛들, 누군가 여기 있다는 불빛들.
여기 데려와 줘서 고마워.
언니가 말했다.
한강 물도, 우리의 눈도 검은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일어나는 소리, 흣쨔!
느린 걸음의 산책가이자 수집가.
부러 신경 쓰지 않으면 후루룩 흘러가버리는 일상 속에서, 그는 한 걸음씩 내딛으며 이야기 조각을 수집한다. 조각은 그의 조각이기도 하고 당신의 조각이기도 하다. 때론 그림책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시 같기도 하다. 잠깐 걸음을 멈춘 그는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를 띄워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