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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투티 Nov 15. 2023

판타지 소설을 쓰게 된 이유 [2]

창작, 애증





지난 글 <판타지 소설을 쓰게 된 이유 [1]>에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글쓰기와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에 글쓰기의 주 동기는 칭찬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의 분출구로 일기 쓰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했고, 창작의 꿈은 입시 공부에 우선순위가 밀려 결국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줄거리다.




글이든 그림이든 창작하고자 하는 욕구는 항상 있었다. 그러나 그림 그리기의 욕구는 좌절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등학생 때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멋진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애초에 잘 그리지 않을 거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한순간에 생긴 게 아니라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서 마침내 그런 사고가 견고해진 것이었다.




살면서 계속 폭발할 것 같은 감정만 있고 그것을 정제해 분출할 틀을 찾지 못했다. 분명 창작 활동을 하면 해소가 되었는데, 마음속의 누군가가 계속 나 같은 아마추어의 창작은 돈이 되지를 않는다는 목소리를 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되는 이유가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창작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없다는 생각이 내가 과정을 즐기는 것을 방해했고 과정이 즐겁지 않으니 더 행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면서 과정이 하나도 즐겁지 않은 공부는 붙잡고 있었으니 모순적이다.




전에는 글쓰기보다 그림 그리기를 더 좋아했다. 하지만 언제나 짝사랑이다. 내가 기대하고 사랑을 준 만큼의 사랑이 그쪽에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에는 그림 그리기에서의 방황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초중고 모두 미술 수업에는 적극적이었다. 지루했던 적은 내신 시험대비용으로 화가 이름을 외울 때 빼고는 없었다. 고등학생 때는 그림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이돌 덕질을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동아리원들 사이에서 그냥 붕 떠 있었다. 그러면 나는 뭘 좋아했냐고? 나도 애니메이션을 보기는 했는데,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의 방향성이 달랐다. 친구들은 보통 캐릭터 사이의 케미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하는 반면, 나는 스토리 진행이 얼마나 매끄럽고 메시지가 잘 전해지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나만 그랬던 거더라.




그렇게 고등학생 시절이 지나가고 드디어 대학생이 되었다. 전공인 체코어 공부를 정신없이 하는 한편 일단 그림 그리는 것을 다시 시도했다.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끄적였지만 생각한 만큼 나오지 않았다. 미술학원에 다니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부모님께 억지를 부려서 보내 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만큼의 아웃풋을 낼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그림 그리는 것은 그냥 고여 있는 연못같이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의 이미 멋진 사람들처럼 그리지 못할 거면 내가 그 안에서 쓸모도 없을 텐데 뭐하러 시간 낭비를 하지? 내가 좋아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그 때 사치로 느껴졌다.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




돌이켜 봤을 때 이 모든 상황의 전환점이 된 때는 역시 대학교 3학년 1학기, 프라하에 6개월 어학연수를 갔을 때였다. 그 때의 내 자세한 상황은 <스물한 살, 프라하에서 6개월 [1]>에서 읽어볼 수 있다. 프라하에 가기 직전까지 체코어에서 도저히 내 진로를 찾을 수가 없어서 나는 수능을 다시 봐야 하나, 자퇴를 해야 하나, 돈을 벌어야 하나 고민하며 거의 자아분열 상태에 이르렀다. 생각과 걱정은 너무 많은데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밤에 침대에 누우면 미래에 대한 고민이 수백 가지가 몰려와 새벽까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프라하에 갔으나 코로나로 원격 수업을 하게 되어서 갑자기 나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그 때 내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서 탐구할 수 있었다. 드디어 나의 질문에 누구의 욕망도 없이 내 욕망대로 대답할 수 있었다. 내가 나 자신에게 가장 궁금했던 건 "그래서 어떻게 살고 싶은데?" 였다. 그리고 내 대답은 "행복하게 살고 싶어."였다.




핸드폰을 켜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검색했다.







쓰다 보니 길어질 것 같다

다음편으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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