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우카 Sep 22. 2020

맛있는 이야기 - 5

부산 발 국수와 냄비우동.

돌아보니 모두 다 발 국수를 먹고 있다. 나도 발 국수를 시킬 걸 그랬나? 재차 묻는 점원의 동그란 눈을 그대로 응시하며 '냄비우동요.' 라고 말한 게 괜스레 후회가 된다. 바깥 온도는 36도가 넘어섰다. 습기가 더해져 느껴지는 더위는 더하다. 이런 날 그냥 우동도 아니고 달궈진 냄비 안의 우동이라니 아르바이트생이 자기의 귀를 의심한 듯 다시금 묻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런 나를 이해 못하는 건 아르바이트생뿐 아니다. 마주 앉아 덮밥을 주문한 남편도 똑같다.
"왜 냄비우동이 먹고 싶었어?"단순한 물음인데도 내 귀에는 "왜 하필 이렇게 더운 날 냄비우동이야? 모처럼 부산까지 왔는데 다른 걸 먹지 왜? 내가 면을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굳이 그래야 해?"라고 해석된 물음으로 와 닿는다. 


부산을 떠난지도 어느새 17년을 넘어선다. 나에게 부산은 유년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을 소환한다. 다정했던 분도 아니고 얽힌 추억이 많은 것도 아니건만 나의 유년시절. 부산에서의 삶은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삶의 결이 켜켜이 쌓여 있다. 횟수로 치자면야 부산에서 산 것은 13-4년이 전부다.. 부산을 떠나 산 삶이 더 오래고 타향에서  그 이상의 나이를 먹었다. 부산에서의 삶, 많은 부분을 잊어버렸고 기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왤까? 삶에 있어 3분의 1의 시간이 나머지 모든 시간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내 피가 살찌우고 내 뼈가 자란 시간. 살아감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고 누릴 수 있었던 시간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부산을 떠난 나의 삶은 늘 부유하는 삶으로 안정도 쉼도 잃어버렸다. 



아버지와 나는 우동을 좋아한다. 찰지고 굵은 면발을 묵직하니 젓가락으로 건져 올리는 것도 즐거웠지만 멸치다시가 아닌 단맛이 느껴지는 일식 다싯물이 입에 맞았다.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에는 아버지와 우동을 먹으러 갔다. 남포동과 부산역 뒤편에 자리한 일식집이었는데 주가 되는 것은 스시였고 계란찜과 우동은 따로 주문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계란이 올려져 반만익은 냄비우동을 나는 바삭한 새우가 올라간 튀김우동을 주문했다. 아버지의 냄비우동에는 때때로 어묵이 삼각모양으로 올라가 있거나 유부가 올라가 있기도 했다. 튀김우동에 비하면 면량도 적은 듯하다. 아버지는 튀김우동에 비해 냄비우동은 기름지지 않고 자연스러운 면맛과 국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하셨다. 어린 나는 어른의  하루의 생활과 입맛은 바삭함도 고소함도 없는 심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나와 함께 일식우동집을 찾던 아버지의 나이만큼 먹었다. 지금은 일식집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우동을 먹을 수 있고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때의 아버지와 같이 "냄비우동"을 시키고 아버지가 아니라 남편을 마주하고 있다. 어린 내가 느낀 어른의 심심함이 아니라 조화를 깨지 않고 자신의 본연의 맛을 드러내는 구성진 "담백함"을 혀끝으로 느낀다. 어른의 맛이란 것은 이런 것이구나. '바사삭' 소리 내는 바삭함도 화려한 고명이 없어도 자신의 맛을 잃지 않고 제 맛을 내는 것. 음식이 담백해진 만큼 내 삶은 나이와 생각과 생활이 제대로 어우러진 담백한 삶, 어른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입맛만 어른스러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기 고집을 버리고 자신에게 갇힌 시야에서 벗어나 다른 이를 배려할 줄 아는 여유를 갖는 것, 자기 자신에게는 엄해지고 다른 이들을 향해서는 유연함을 갖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 아닐까? 평균수명이 길어진 만큼 젊음을 유지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그럼에도 50이 넘었다면 사회에서 제법 어른의 나이에 속한다. 삶과 행동에 책임을 질 나이다. 담백하지만 제 맛을 내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작가의 이전글 볕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