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곧 몰아칠까 마음은 조급하지만 그래도 비가, 바람이 불지 않음에 잠시 안도할 때, 그런 때가 있잖아. 결국은 마주할게 될 그 끝이 너무나 뻔한데 잠깐의 느슨해진 그 헐거움에 "휴"하고 숨을 내 쉴 수 있는 그때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그 안도감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더 불편함을 느끼게 돼. 왜 그렇까. 무거워진 공기의 압력에 질식할 것만 같고 짙어진 습기의 불쾌감이 우리의 감정선을 건드리기 때문이야. 그렇게 인내심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많은 일에 잘 견뎌온 우리지만 그래. 맞아 그렇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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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태어나 처음으로 군산을 다녀왔어.
군산은 말이야. 내게는 조금은 특별한 곳이야.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아닌 다른 이와의 추억이 어린 곳이라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그 장소가 무척이나 싫었다고나 할까. 많은 친구들이 군산을 다녀왔고, 볼거리가 많은 예쁜 곳이라 말했어. 나도 한번 즈음은 가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런 곳 있잖아. 정말 가고 싶지만, 애써 외면해온 곳. 그런 까닭에 왠지 꼭 가보아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드는 그런 장소 말이야.
그렇게 가게 된 군산. 내게 군산은 이상하니 회색, 무채색으로 다가왔어. 건물들의 건조함이 모든 습기가 빠져나간 시멘트 가루 같은 그런 느낌. 초록 무성한 나무, 사람들의 생명감 이런 것이 느껴지는 곳이 아닌 쇠붙이가 주는 느낌이랄까? 군부대가 많았던 양구보다도 더 쇠 냄새가 나는 곳이었어.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서래 포구의 바닷가는 온통 뻘. 뻘위에 얹혀있는 배들은 삶의 자리를 상실한 휑함과 퇴색된 그 무엇이었어. 채만식의 "탁류"가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지. 그 제목과 맞아떨어지는 배경이랄까? 물 빠진 포구의 공기에는 입자 하나하나마다 갯내가 스며들어 이미 한 호흡에 비릿함을 맛보게 되지. 그 비릿함은 이미 생명을 잃어버린 죽음의 냄새가 낮게 깔려 있었어. 그런 숨죽임으로 물때를 기다리는 것일까? 다시 물때에 맞춰 회검은 갯벌에 푸른 바닷물이 드리우게 되면 다시금 죽음의 냄새는 물러가고 생명의 향연이 펼쳐질까? 모르겠어. 나는 그 물때를 기다리지 못했거든. 그 비릿함이, 그 회검은 갯벌이 이내 발걸음을 돌리게 했어.
정비가 잘 된 몇몇 시내의 건물들과 과거의 시간이 멈춘 듯 개항 시대의 위상을 떨쳤던 건물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네 삶을 돌아보았어.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결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도 우린 왜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이렇게 분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 창밖이 소요로워지면 태풍이 온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조용하다면 태풍이 비껴간 것이겠지. 우리는 알지 못해.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일기를 예측한다고 하지만 다 맞출 수는 없더라고. 우리의 삶도 그런 것 같아. 일이 잘 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아. 하지만 그런 때도 있잖아. 절대 절망의 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유보되고 새로운 기회를 마주하게 될 때도 있다는 것. 길지도 짧지도 않은 우리 인생인데 예측 가능한 뻔한 인생이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까? 숨겨져 있는 모습에 우리는 쉽게 그 끝을 예상하고, 가늠해볼 수 있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더라고. 쌓아온 시간이 모든 것을 쉽게 허물지는 못해. 더욱이 마음을 다해 성실했고, 사랑해왔다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