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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Aug 11. 2019

나는 왜 쓸 데 없는 외국어를 배울까

내가 온전한 나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쓸 데 없는 그 순간이라면

 나는 영어를 잘한다. 외국인과 대화하면서 어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고 듣기도 마찬가지다. 조금 오래 걸리긴 하지만 원서를 읽는 데도 큰 무리는 없다. 집안 사정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남들처럼 영어를 위해 어학연수나 해외유학을 다녀올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무슨 똥 배짱인지 영어 부심이 좀 있다.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어릴 적부터 탄탄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 속에서도 난 굴하지 않는다. 그들을 이길 자신은 없어도 형편없이 밟히지 않을 자신은 있다. 애초에 영어를 정말 넘사벽으로 잘하는 사람들은 나와 만날 일 없이 이미 어딘가로 가 있을 테니 내 생활 반경 안에 남아있다면 솔직히 해볼 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피 터지게 공부해 온 국내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원에서 그룹 회화 레벨 테스트를 봐도 늘 상위 반에 배정이 된다.


 이 영어 부심은 어머니께서 어릴 적부터 만화영화를 볼 때도 한국어 더빙판을 보지 못하고 한글 자막이어도 꼭 원어가 나오는 만화영화를 보게 하셨던 것에서 시작된다. 심지어 집에 있는 디즈니 비디오 테이프들은 다 영어자막이었다. 알라딘 한글자막판을 이번에 개봉한 영화로 처음 봤다. 덕분에 토익이나 텝스의 듣기 정도는 노력하지 않아도 만점에 가까이 나왔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성문 기초, 기본, 종합 안에 있는 모든 단어를 외웠고(시험을 보면 틀린 개수 X5로 맞았다.) 그 책의 모든 독해를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했다. 그래서 우리 집엔 모든 책이 다 두 권씩 있었다. 한 권은 공부용, 한 권은 깨끗한 테스트용. 그 책들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 중학교 1학년이었다. 성문영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그 덕인지 토익은 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고 통학시간 70분을 타이머로 설정해 문제집을 계속 풀고 시험을 계속 보는 것으로 점수를 올렸는데 대학교 1학년 때의 점수가 880점이었다.

 대학교 때는 과제를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나서 잠을 줄여가며 영화나 드라마의 대사들을 반복 재생하고 가장 흡사하게 될 정도로 따라 하면서 발음 연습을 했다. 외국인을 보면 항상 말을 걸고 대화를 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봐서 그런지 외국인이 두렵지 않았고 대화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오는 대로 막 뱉었다. 외국인들은 늘 나에게 "정말 어학연수를 다녀오지 않은 것이 맞냐.", "그런데도 이렇게 발음이 좋을 수 있냐.", "비결이 뭐냐."라고 물었다. 친구가 프리토킹이 되면 오픽을 보라고 하기에 오픽을 한 번 보러 갔었는데 예술 관련 질문이 나와서 마티스와 몬드리안과 그들의 사조에 대해 신이 나서 설명했다. IH가 나왔다. 사교육 없이, 외고를 나오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 낸 성과였다.

 이런 노력이 쌓여있었기 때문인지 영어 때문에 기간이 길어진다는 공무원 시험도 7급을 면접기간 포함 10개월 만에 합격했고 그 해 치른 모든 시험의 영어과목 점수는 모두 90점 이상이었다. 수험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공무원 영어는 일반 영어와 달라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어려워한다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못한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공무원 영어시험에서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를 문제로 내는 것으로 점수를 가르게 하는 것에는 나도 분노한다. 차라리 제대로 된 지문을 길게 해서 독해능력을 보든가. 아님 맞는 영작 고르기를 하든가 해야지 사전 저편에 있는 단어를 가져와서는 그걸 변별력 있는 문제라고 내는 꼴이란.



 

 그런데 문제는 직장을 구하고 나서 이 영어를 쓸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릴 땐 손바닥을 맞으면서, 성인이 되어서는 내 뺨을 때려가면서, 죽어라고 쌓아 온, 그렇게 자랑하던 영어실력이 점점 무너져감을 느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을 잘 가기 위해서, 대학교 때는 취업을 잘하기 위해서 영어를 놓지 않아 실력을 유지했었는데 직장을 구하고 나니 업무에서 쓰지도 않고 더 이상 영어를 잘할 이유가 없어져 나도 손에서 놓아버렸다. 여행을 갔을 때 점원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려는 데 말문이 막히는 나를 보고 당황했고 정말 크게 실망했다.

 지금 내가 쓸 곳도 없는 토익과 텝스 점수를 주기적으로 경신하고 학원을 다니며 원어민과 대화하려는 것은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아까운 마음에서 오는 발악이고 그 노력을 지키면서 자기만족을 얻기 위함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엉망인 실력을 가리기 위한 '나 영어 잘했었어.' 등의 과거 이야기로 추태를 부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전 없는 공무원 사회에서 그들과 똑같이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지 않다는 몸부림이다. 

 

 내가 배우는 외국어는 영어뿐만이 아니다. 중국어를 막 배우기 시작했고 HSK 5급이 목표이다. 그 이후에는 독일어나 프랑스어 중 한 가지를 골라서 더 배울 생각이다. 퇴직하기 전까지 5개 국어는 완벽하기 배워놓고 싶다. 이런 나를 직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웬만하면 먼저 외국어를 배운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이런저런 일정을 조율하다가 내가 학원을 가는 것을 알게 되면 직원들은 늘 이렇게 묻는다.


배워봐야 어디 써먹을 데도 없는 걸 굳이 돈 들이고 시간 들여가며 힘들게 왜 배워? 단순한 자기만족을 위한 투자가 너무 과한 거 아니야?


 이게 나를 보는 직원들의 일반적인 시선이다. 우스갯소리로 '내 꿈이 파리의 늙은 웨이트리스다. 마음이 여유로운 나라로 이민 가서 여유롭게 살 거다.'라고 했는데 그런 이유라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직원들은 진짜 그걸 믿었다. 

 사실 나도 내가 왜 외국어를 배우려고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내리지 못한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는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반복되는 업무가 주는 편안함에 취해 내가 가진 다른 능력들을 허비하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외국어를 배우고 있는 순간만큼은 어딘가에 묶여있는 사람이 아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꼭 어느 나라에 갈 계획이 있어서만, 혹은 업무에서 그 언어를 필요로 해서만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온전한 한 사람의 나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외국어를 배우는 그 순간이라면, 나는 계속 그 순간을 만들고 싶다. 그런 순간이 나에겐 외국어 공부이듯 다른 사람들에겐 또 다른 것들이겠지. 우리가 만들어가는 순간들이 나중에 쓸 데가 있을지 없을지는 그때 가서 판단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순간들이 그때 가서 남들이 판단하는 외적인 기준으로 정말 쓸 데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 순간들 속에 살았던 우리 자신이 스스로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히 쓸 데 있었던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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