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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생기니 밥상이 달라졌다.

이제까지 내가 밥을 안 해 먹은 건 싱크대가 좁아서였다고

by HuwomanB

원룸에 살 때는 퇴근을 일찍 해도 밥을 먹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다 10시가 넘으면 꾸벅꾸벅 졸다 잠들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대아파트에 들어간 후 출퇴근 시간이 원룸보다 1시간 더 길어졌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생겼다. 침대에 누워 시간을 죽일 이유가 없어졌다. 나에겐 거실이 있고, 거실에는 작업대가 있고 노트북이 있다. 빔프로젝터로 영상을 틀고 운동을 할 수도 있다. 더 이상 내 몸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personal space보다 작아 답답한 집을 피해 밤늦게까지 밖에서 시간을 때울 필요도 없다. 집 안의 공간이 이미 나의 personal space보다 넓기 때문이다.


집다운 집, 공간다운 공간이 생기고 난 뒤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밥을 해 먹는다는 것이다.


원룸의 작은 싱크대와 2구짜리 전기레인지, 그리고 전기레인지 폭 정도 되는 조리대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친구들이 적극 추천하는 에어프라이어도 둘 곳이 없어 사지 못했고 아주 가끔 미니 밥솥으로 밥을 하고 김치찌개를 끓이는 것이 전부였다. 대부분 밖에서 음식을 사서 들고 들어왔었다. 입버릇처럼 싱크대만 더 넓었어도, 조리대만 제대로 있었어도 나는 밥을 해 먹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부엌의 크기가 이유는 아닐 거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곤 했었다. 작은 원룸에서도 요리를 잘하면서 사는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밥그릇 두세 개만 들어가면 가득 차 버리는 싱크대로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공간이 생기니 밥을 할 여유가 생겼다. 부엌다운 부엌이 생기니 밥을 해도 제대로 된 그릇에 담게 되고 간단한 반찬이라도 하나 정도는 꼭 만들어서 먹게 된다. 그것이 단순한 계란 프라이나 소시지여도 정성스럽게 그릇에 담아 나름의 플레이팅을 한다. 깎아먹기 귀찮아서, 음식물 쓰레기가 생기는 게 싫어서 사다 놓지 않았던 과일도 사다가 후식으로 먹게 된다. 내가 과일을 잘 깎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 먹으니 몸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계란반숙과 소세지, 열일하는 에어프라이기-문어소세지
엄마가 가져다준 깻잎, 열일하는 에어프라이기-소세지와 버섯, 겉바속촉 스팸, 볶음김치는 프라이팬으로
신나는 과일깎기-안끊기고 성공, 아침은 간단하게-직접 만든 요거트


게다가 원룸에서 설거지하는 것이 불편해 설거지거리를 모아놓고 한 번에 하던 습성이 있어 싱크대가 넓어지면 설거지거리를 더 쌓아놓게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매번 설거지를 바로 하게 된다.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편안하게 설거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기 때문인 것 같다.


주말이 되면 마트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가서 두부, 버섯, 마늘, 양파, 고기 등을 산다. 아직은 재료를 구워서 먹는 정도이지만 조금씩 새로운 요리들을 시도하면서 나 홀로 24평 매거진에 요리하는 이야기도 연재하는 것이 지금의 계획이다.

주말에는 고기반찬, 열일하는 에어프라이기-목살, 통마늘, 그리고 버섯, 시간 조절 실패한 바싹 마른 두부



건축계획에서 말하는 병리적 기준, 사람이 살면서 병에 걸리지 않을 최소한의 크기가 15㎡라 했던가. 내 첫 집은 14.5㎡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에 걸렸었다. 두 번째 집은 19㎡, 감기는 조금 덜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레토르트 식품으로 내 몸을 채운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른 환경은 아니었다. 화장실은 내가 양 손을 뻗으면 벽이 양 손에 닿는 정도의 크기, 수건걸이가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샤워타월 걸이로 설치해 놓은 것이라면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살 수 있는 공간, 그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며 사는 청년들이 몇이나 될까. 나는 이 직업을 갖기 위해 매일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움직이지 않고 공부를 했다. 1년 내내 매일 순 공부시간이 15시간 이상이었다. 강의를 많이 들어 귀는 망가졌고 얼굴은 여기저기 터지고 뒤집어졌고 허리디스크까지 얻었다. 덕분에 빠르게 합격했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만 그 모든 노력보다도 운이 좋아 임대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결국엔 나도 운이 좋았던 것이기에 어쩌면 이렇게 나에게 주어진 공간을 보이고, '나는 이렇게 혼자 살고 있다.'를 쓰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화가 나는 일일 수도 있다. 나는 그 누군가들에게도 나와 같은 운을 경험할 시기가 올 것을 믿는다. 때문에 혼자 살아도 충분한 사람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눈을 낮춰 결혼을 할 바에야 그대로 충분하게 혼자 사는 것이 백번 낫다는 입장을 가진 '아직까지는' 혼자 사는 여성으로서 '나는 이렇게 혼자 살고 있다.'를 보이는 것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나와 같은 공간을 살아낼 시기가 다가온 누군가에게 어느 정도의 용기를 줄 수 있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나 홀로 24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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