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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Nov 03. 2019

10년 만의 베란다

원룸 쪽창으로 겨우 받던 햇살이 사방에서 들어온다.

 이사를 마치고 다음 날, 벌거벗은 느낌이었다. 남북으로 뚫려있는 베란다와 큰 창으로 모두가 날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집 안을 돌아다닌 다는 것이 어색했고 누군가는 나를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10년 만에 베란다가 생겼다. 그리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선, 빨래의 수준이 올라갔다.


 원룸에서는 세탁기를 돌릴 때 섬유유연제를 쓸 수 없었다. 섬유유연제 냄새가 방 안을 가득 메워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섬유유연제를 쓰지 않으니 수건은 갈수록 빳빳해져 갔다. 따로 스크럽제를 쓰지 않아도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면 저절로 스크럽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부모님 집에서 수건을 교환해 와야 했다.

 세탁기를 돌린 후 빨래를 널면 집안에 습기가 퍼졌고 작은 쪽창으로는 이 습기를 내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 그 작은 방에 빨래바구니를 놓는 것은 사치였기에 세탁기 안에 빨래를 넣어 놓았다가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빨랫감을 다 꺼내 분류해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바닥에 늘어놓아야 했다.

 게다가 젖은 수건은 그냥 넣으면 썩은 냄새가 나기 때문에 항상 건조대에 널어놓았다가 세탁기에 넣어야 했기에 건조대를 늘 펼쳐놓아야 했는데, 안 그래도 좁은 방을 더 좁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이젠 이 모든 것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베란다가 있기 때문에 세탁기를 돌릴 때 섬유유연제를 쓸 수 있었다. 또한 빨래를 널 때 집이 습해질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빳빳했던 수건들이 제 모습을 찾았고 하루 종일 마르지 않던 빨래는 반나절이면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건조대를 베란다에 계속 펼쳐놔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젖은 수건을 말리는 데도 탁월했다. 게다가 세탁기가 있는 북쪽의 베란다에는 수건용과 의류용 빨래바구니를 각각 하나씩 장만해 놓을 수 있을 만큼 공간이 충분했다.

북쪽 다용도실 베란다. 빨래바구니를 놓은 공간, 왼쪽에는 세탁기가 있다.


 또한, 집 안이 햇살로 가득 찼다.


 남쪽 베란다의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상당해서 주말 아침에는 햇살에 눈이 부셔 잠에서 깼다. 원룸에서는 창이 남쪽에 나 있어도 건물이 붙어있어 햇살이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 집에서도 내 방은 북향이라 이런 햇살 넘치는 아침을 겪는 것이 굉장히 생소했다.

 동시에 베란다 공간이 공기층을 만들어 효과적인 단열재가 돼 준 덕분에 바깥은 추워도 집 안은 어느 정도 따뜻함을 유지했다. 바깥의 온도가 곧 내 방 벽의 온도였던 원룸 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었다.

남쪽 거실 베란다. 햇살이 가득 들어와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바닥이 뜨거워진다.


 게다가, 집 안에 바람이 부는 것을 경험하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창을 열어서 환기를 시킨다는 말은 원룸 쪽창 생활권에서는 불가능한 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가능했다. 아빠가 집에서 음식 냄새가 난다며 환기를 시키라고 남쪽과 북쪽 베란다 문과 그 바깥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집을 통과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환기는 이런 느낌이었지.'

 어릴 적 할머니가 여름에 마주 보는 창문 다 열어놓으면 맞바람 쳐서 시원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왠지 이 집은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단점(?)은 건조하다.


 원룸은 항상 습했다. 바람이 나갈 곳도 없고 들어올 곳도 없고 그렇다고 습기를 날려버릴 햇빛도 없으니 늘 습기만 가득했다. 샤워를 하고 몸에 물기를 닦아도 잘 닦이지 않았다. 반면 이 집에는 베란다가 있고, 창이 많으니, 게다가 넓으니 오히려 건조했다. 샤워를 하고 물기를 닦으면 물기가 닦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건조한 느낌이 들었다. 습한 곳에서만 생활을 하다 보니 평균 습도가 건조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큰 방에는 자는 동안 쓸 수 있는 작은 가습기를 두기로 했다.

 '내가 가습기라니.' 가을이고 겨울이고 가습기보다는 제습기가 필요했던 내가 겨울이 다가올 때 건조함을 느낄 수 있는 제대로 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했다.



 원룸과는 다른 환경에 그동안 정상이 아니었던 생활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는 것도 잠시, 당장 인터넷이 필요했다. 풀옵션 원룸에는 와이파이가 있어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인터넷을 이제는 직접 신청해야 했다.

 인터넷을 신청하면서 느낀 것은 눈 뜨고 코 베이는 것이 참 쉽다는 것이었다. 잘 피했다 생각했지만 결국 피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말에는 거짓이 숨어있었고, 나중에 이상하다 생각해 확인하니 그제야 그 뜻이 아니었다며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참 씁쓸했다. 통화 녹음을 들려주며 따져봐야 더 나아질 것은 없기에 '애매하게 말하셔서 오해가 있었나 보네요.'라고 말하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고지서 금액에 대해 상담원과 통화한 후, 나는 '속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그렇게 휩쓸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인터넷 신청 과정에서 내가 겪은 일들을 다룰 때 단순히 나의 이야기로 끝내지 않고 상담원의 말에 대해 정확하게 묻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들을 추가로 집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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