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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Nov 03. 2019

큰 방이 안방인 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미약했던 24평 공간배치 계획(안)

 "저는 식탁을 거실에 둘 거구요. 제일 큰 방을 침실이 아닌 제2의 거실로 만들 거예요. 영화관이나 테마룸으로 꾸며서 친구들이랑 노는 곳으로 만들 거예요. 저 혼자 이것저것 하면서 놀기도 하는 취미방으로도 사용하고요. 그리고 두 번째 큰 방을 침실로 하고 가장 작은 방을 옷방으로 따로 둘 거예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안방'이라고 부르는 방의 구조는 침대와 옷장, 그리고 화장대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보통 가장 큰 방을 그렇게 꾸미고 가족이 있는 경우 부모님의 방을 그렇게 꾸민다. 부부가 한 방을 써야 해서 침실로 큰 방이 필요하거나 아이들이 있어 아이들이게 각자의 방이 있어야 하는 경우에야 한 방에 침대, 옷장, 화장대 등을 넣어 그 방의 이용자에게 모든 기능을 제공할 수 있게 한다지만 어차피 혼자 살 집이고 방도 많은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각 방에 고유의 기능을 부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계획을 실행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가장 작은 방을 옷방으로 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지만 두 번째 큰 방이 생각보다 작았다. 슈퍼싱글 침대 하나 넣으면 침대 하나만큼의 공간이 남는 정도의 크기였다. 두 번째 큰 방이라기보다는 두 번째 작은 방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그래도 제2의 거실 만들기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던 나는 그대로 강행하려 했다. 이런 나에게 엄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가 의견 하나만 내도 될까?"

 "뭔데?"

 "가장 큰 방에 침대 두고, 두 번째 큰 방을 옷방으로 하고, 가장 작은 방을 너 하고 싶은 거 하는 건 어때? 자는 방은 그래도 큰 방 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그리고 자는 방이랑 옷방이 붙어있어야 편하지 일어나서 거실을 가로질러 옷방으로 가야 하면 좀 그렇지 않아?"

 "그래도 옷방은 제일 작은 방 할래. 문쪽에 있으니까 들어오자마자 옷 걸고 갈아입고 하는 게 내 동선에는 더 맞아. 그리고 침대는 글쎄.."


 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아빠는 엄마의 옆구리를 툭 치며 '그냥 마음대로 하게 둬.'라고 말하며 나에게도 한 마디 덧붙이셨다.

 "한 번 생각해 봐. 아직 이사까지는 시간 있으니까."

 "알겠어. 한 번 고민해 볼게."


 나는 다시 캐드 파일을 꺼내 가만히 들여다봤다. 사실 나도 큰 방을 비워두기에는 조금 찝찝한 면이 있었다. 제2의 거실이 말이 제2의 거실이지 그 방에 대한 구상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노는 방이라 해도 내가 몇 번이나 친구들을 초대할까 싶기도 했고, 단순한 취미방으로 꾸미자니 그렇게 넓을 공간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미 거실이 작업실 겸용으로 구상이 되어 있었다.


 나만을 위한 24평이 되어야 하는데 결국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24평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시 가구들을 배치했다. 큰 방에 침대를 넣고 그 옆에 안락의자와 테이블을 넣으니 작은 화장실까지 포함해서 나만의 휴게공간이 되는 느낌이었다. 결국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셋이 살든 혹은 넷이 살든 큰 방에 침대를 넣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 듯했다. 그리고 두 번째 큰 방에는 일단 책장을 넣었다. 서재가 될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는 상태. 마지막으로 옷방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사 당일, 부모님께 가장 큰 방에 침대를 넣기로 하기로 했다고 이야기했다. 아빠는 그제야 본인이 생각했던 것을 이야기하셨다.

 "잘 생각했어. 내가 봤는데 여기가 애초에 안방으로 계획을 해서 그런지 베란다와 접하는 창이 이중창이더라고. 다른 데는 그냥 단창인데. 그래서 큰 방이 더 단열도 잘 될 거고, 남향이니까 빛도 잘 들어와서 따뜻할 거야. 또 너 좁은 집 싫다고 이사 왔는데 침대를 작은데 놓으면 결국 똑같은 거잖아. 잠은 넓은 데서 편하게 자는 게 피로도 더 잘 풀리고 좋아."


 그랬다. 아빠는 이런 사람이었다. 아빠는 항상 나에게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고 본인의 생각을 말하기 전에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신다. 본인이 다양한 이유를 대며 나를 설득하지 않아도 내가 혼자 고민한 그 답이 결국 올바른 쪽으로 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런 아빠가 나는 항상 감사하다.


 결국 거창했던 제2의 거실 만들기는 무산되었다. 방 배치는 평범하게 큰 방에는 침대가 들어갔고, 두 번째 방은 책장이 하나 들어갔고, 가장 작은 방에는 옷장과 이불장, 화장대가 들어갔다. 두 번째 방에 책장을 하나 두기는 했지만 책장이 더 늘어날 만큼 내가 책을 살 것 같지는 않았고 거실에 이미 식탁 겸 책상이 있으니 책상을 따로 두고 작업실이나 서재로 하기에는 낭비 같았다. 그러던 중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여기 장비 좀 넣고 홈트 하면 되겠네!'라고 말했고 기존에 다니던 필라테스가 끝난 후 어떤 운동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친구의 말에 힘입어 온라인 PT를 신청하고 두 번째 방을 운동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왼쪽부터 큰 방, 두 번째 방, 가장 작은 방

 각 방을 어떻게 사용할까를 고민하면서 특별한 나만의 공간배치를 기대했던 터라 결국 남들 하는 대로 살게 되는 것인가 싶어 이런 결론이 아쉬웠다. 하지만 남들이 그렇게 하고 사는 데엔 이유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혼자 살기 때문에 가능한 점이 있다면 큰 방 남는 공간에 안락의자와 빔프로젝터가 있다는 것과 거실에 소파와 텔레비전이 있는 것이 아닌 식탁이자 작업대인 큰 책상이 있다는 것 정도랄까. 그리고 운동방?


※ 현재 방 배치 상황

거실: 다이닝 겸 작업실, 디지털피아노를 살까 고민 중

큰 방: 침실, 휴게실(안락의자, 빔프로젝터)

두 번째 방: 운동 방, 책장이 하나 있음

가장 작은 방: 옷방, 무선청소기와 로봇청소기 놓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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