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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Oct 20. 2019

나쁜 집주인(2)

엄마, 전 집주인이 나보고 한심한 인간이래..

 보증금 사건 후 일주일 뒤, 내 계좌에서 원룸 관리비가 빠져나갔다. 자동이체를 해지하지 않은 것이었다. 집주인과 더 이상 연락하고 싶지 않았던 터라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일단 연락해보고 무시하면 그냥 말자 하는 생각으로 카톡을 보냈다. 집주인은 본인이 지금 해외여서 돈을 붙여줄 수 없으니 1주일 뒤에 다시 연락해 달라고 했다. 해외에서 돈을 붙여줄 수 없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싶었지만 다시 연락을 달라고 한 것에 최악은 아니구나 싶어 1주일을 기다렸다.


 집주인이 연락하라고 한 날에 다시 연락을 했다. 관리비 추가 납부된 내역까지 사진으로 보냈다. 하지만 읽씹이었다.


 다음 날, 전화를 했지만 집주인은 받지 않았다. 나는 "혹시 제가 어제 너무 늦게 연락을 드려서 그랬나요? 관리비 확인하시고 제 계좌로 보내주세요. 번거롭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라고 카톡을 보냈고 집주인이 연락하라고 했던 것까지 캡처해서 첨부했다. 몇 시간 뒤 1이 사라지고 답은 없었다.


 그다음 날 나는 기다렸다. 하지만 연락은 없었고 연락 없이 송금했나 싶어 계좌를 확인해 봐도 입금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는 조금 강하게 카톡을 보냈다. "저 전화도 안 받으시고 입금도 안 해주시고 혹시 얼마 안 되는 돈이라고 이대로 두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내가 예상한 반응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제가 정신이 없어서 계속 연락을 못 받았어요. 보내드릴게요", 내 말투에 기분이 상했다면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보내드릴게요." 정도였다. 1이 금방 사라졌고 바로 답장이 왔다.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그래도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으니 프로필 사진과 이름은 가렸다.

 "세상은 자기 머릿속 말고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 알고." 라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내가 왜 이런 사람에게 한심한 인간이다, 생각하는 게 수준 이하다 라는 말까지 들어야 하나 싶었고 본인 돈 받을 때만 닦달하고 남의 돈 줄 때는 무관심한 것 좀 고치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다. 보증금을 제대로 줬으면 내가 이렇게 불안해했겠냐고. 해결할 일이 천 가지 만 가지인 중에 관리비 돌려주는 일은 왜 없으신지. 읽고 씹을 정신으로 프로필 사진 누르고 송금 누르면 1분도 안돼서 해결될 일을 2주일이 다 되도록 끌만큼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는지. 그런 정신이면 식사도 못했을 텐데 왜 계속 그렇게 바쁘지 도발하니까 이렇게 바로 답장하고 송금하는 이유는 뭔지 한번 정말 제대로 싸우고 싶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그냥 싸울까. 아니면 둘까. 어떻게 잘 엿 먹이는 방법은 없을까. 내가 고민하고 말을 골라 뱉어봐야 나쁜 기분만 더 길어질 것 같아 그냥 "네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성급했던 것 죄송합니다." 하고 답장을 보냈다. 그랬더니 갑자기 "제가 항암치료 중이어서 기운이 없어서 연락을 못하다가 오늘에야 기운이 좀 나서요."라는 답장이 왔다. 부끄럽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내가 상대방이 연락이 안 되는 것이 암이어서 입원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을 해야 했던 건가. 그렇게까지 넓게 봐야 했던 건가. 아, 그냥 한번 더 참을 걸 그랬나. 아니, 그런 상황이면 미리 말을 하든가. 본인이 연락하라는 날짜에 연락했는데도 며칠씩 읽씹인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못한 것 같다가도 나는 어쩔 수 없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대화 내용을 캡처 해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나를 질책하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참고 좋게 말하지 않고 도발한 건 나였으니까. 하지만 2주일 참고 죄송하다고, 번거로우실 텐데 확인해달라고, 감사하다고 할 때는 무시하고 도발하니 저런 악담을 퍼붓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그 사람 조울증이 심한 것 같아. 그냥 잊어."라고 했다. 보증금 때문에 실랑이를 해 본 엄마는 나의 편에서 이야기해주셨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내가 잘한 것은 아니지만 집주인에 대한 어이없음도 크셨기에 나에게 동조도 질책도 않으시는 것을 택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일을 친구들에게 말하자 친구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A: 00아, 민원인들 중에 암이라고 거짓말하는 사람들 엄청 많아.

 B: 진짜 기운 없으면 핸드폰 자체를 못 들어. 읽씹을 할 수가 없어.

 그렇게까지 최악일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업체들 중에도 일정을 맞추지 못할 것 같을 때 '부모님이 아프셔서.', '상을 당해서.'라는 이유를 대서 뭐라고 하지 못하게 해 놓고 나중에 알고 보면 거짓말인 경우가 있는 걸 생각하면 또 의심이 간다. 보증금을 주지 못한다고 해놓고 10분 만에 줬던 경우도 그렇고. 그래도, 그 말 만은 믿고 싶다. 그냥 내가 성급해서 아픈 사람을 배려하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지금도 나는 내가 살던 원룸 쪽으로는 웬만하면 가지 않으려고 한다. 어딘가를 갈 때 그 근처를 지나야 할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다른 길이 없나 찾아본다. 그 근처만 가도 이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이 너무 싫고 찝찝하다.


 이 일을 겪으면서 친구가 보증금을 주지 않는 집주인과 싸웠던 이야기를 해준 것이 떠올랐다. 그때 집주인이 "아니, 그래도 동네에서 계속 볼 텐데 이러기야?"라고 하기에 친구는 "그러는 아줌마는 동네에서 계속 볼 건데 왜 그러세요?"라고 받아쳤다고 했다. 집주인들은 다 그런 걸까.  


 이 임대아파트에서 나갈 때는 꼭, 빚을 더 많이 지더라도, 내 집을 사서 나가고 싶다. 더 이상 집이 없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이런 서러운 일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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