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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Oct 20. 2019

나쁜 집주인(1)

보증금 제대로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건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9시가 되자마자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저 000 전 세입자인데요, 혹시 오늘 보증금 언제 내시기로 했나 해서요."

 "아 네, 지금 세입자분한테 연락드려볼게요."


 잠시 후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지금 집주인분한테 돈 보냈다고 하거든요, 한번 연락하시면 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집주인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른 시간이라 그러나 싶어 30분 뒤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받지 않았다. 부동산에 다시 연락을 했다. 

 "죄송한데요, 지금 집주인분이 전화를 안 받으셔서요. 혹시 연락 좀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저도 한번 연락해 볼게요."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혹시 집주인분이 평소에도 연락이 잘 안 되셨나요?"

 "그런 건 아닌데, 11시쯤 연락이 오는 경우가 많긴 했어요."

 "아, 그래요? 아니 제 전화도 계속 안 받고, 새로 들어오시는 세입자분들도 돈 보내고 확인해달라고 연락을 했는데 그분들 전화도 안 받으신다고 해서요. 참 답답하네요.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할 것 같아요."


 원룸에 들어가기 전 돈이 필요하다고 중도금을 좀 달라고 할 때와, 이번에 나올 때 복비를 달라고 할 때 등 본인이 돈을 받아야 하는 것들에서는 연락을 몇 번이고 하던 집주인이었다. 본인이 받아야 하는 돈에 대한 전화는 신호음이 두 번 이상 울리기 전에 받았었다. 때문에 보증금도 제 때 처리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세입자에게 직접 돈을 받고 영수증을 써 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주인이 계속 전화를 받지 않는 상황이 되자 나는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엄마, 집주인이 내 전화도 안 받고, 부동산 전화도 안 받고, 세입자 전화도 안 받는대. 엄마가 한번 연락해주면 안 될까?"

 "응. 알겠어. 기다려봐."


 잠시 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좀 정신이 없는 사람인가 봐. 내가 전화한 건 바로 받았는데 누구냐고 묻더라. 그래서 000 전 세입자라니까 계속 기억을 못 하대. 확인해달라고 했어."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다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집주인이 돈을 받긴 받았는데, 그게 이 아줌마 말고 남편한테 보냈대. 그래서 오늘 못주겠다고 하더라고."

 "그게 말이 돼? 받았으면 주는 거지 남편 계좌라고 못줄 건 뭐야?"

 "뭐 주말이라 돈을 뽑을 수가 없다나. 남편 계좌에는 손을 못 대나. 계속 횡설수설해. 게다가 보증금 받기 전엔 비밀번호 못 알려준다고 했더니 '그러든지 말든지 암튼 지금 못줘요.' 이러더라. 내가 방법 어떻게든 찾으라고 했어.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


 어이가 없었다. 남편 계좌로 돈이 들어갔으면 부부간에 연락 한 통 하면 되는 것을 남편 계좌라서 못주겠다니. 남편이 어느 병원 부이사장이라고 자랑할 때는 언제고 부이사장이 그 정도 돈도 못 빼나 싶었다. 또 주말이라서 돈을 못 뽑는다는 게 말이 안 됐다. 대체 왜 이러나 싶고 너무 불안했다.


 그런데 더 어이가 없는 건 10분 뒤 돈이 바로 들어왔다. 정말 못주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전기비와 가스비 정산한 문자가 오면서 바로 돈을 붙여달라고 했다. 내가 알겠다고 했지만 몇 분 뒤 다시 바로 붙여달라고 문자가 왔다. 보증금은 그렇게 못주겠다고 버티면서 본인이 받아야 하는 몇만 원은 또 닦달을 하는 게 참 자기 입장밖에 모르는 사람이구나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전화와 부동산 전화, 그리고 세입자 전화는 아는 번호여서 일부러 받지 않고 있다가 모르는 우리 엄마 전화는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또 만약에 나였으면 돈을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주말엔 주지 못할 것 같다고 하면 '아 그러세요, 그러면 어떡하죠.'라고 대답했을 것이고 그러면 다음 주에 줄 테니 비밀번호를 일단 알려달라든가 하는 수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그럼 방 비밀번호 못준다. 알아서 방법 찾아라.'라고 강경하게 나가니 어쩔 수 없이 바로 돈을 붙여준 것이 아닐까.


 그날 저녁 부모님은 우리 집에 들르셨고 엄마는 " 이 아줌마 진짜 나쁜 여자네. 통화 녹음된 거 들어보면 진짜 가관이야. 네가 왜 집주인이랑 통화하면 자꾸 페이스에 말린다고 했는지 알 것 같더라."라고 이야기하셨고 아빠도 "옆에서 듣는 나도 어이가 없더라. 말이 앞뒤가 하나도 안 맞아. 진짜 못주는 게 아니더라고. 그리고 그렇게 본인이 일처리를 제대로 못할 것 같으면 부동산에 위임을 해야지. 그런 사람은 집장사하면 안 돼."라고 덧붙이셨다. 웬만하면 다른 사람에 대해 '다 사정이 있겠지.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라고 하시는 부모님이라 얼마나 실랑이를 했으면 저러실까 싶었다. 엄마는 "에휴, 액땜했다고 치자. 잘 끊어냈어."라며 잊으라고 하셨다. 



하나 더.

 보증금을 받고 비밀번호를 집주인과 부동산에 알려준 후 저녁에 부동산에서 비밀번호가 맞지 않는다고 전화가 왔고 세입자로부터도 전화가 왔다. 왜 부동산은 남의 개인정보를 타인에게 마음대로 알려줬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일단 나는 세입자에게 그 비밀번호가 맞다고 했다. 세입자는 나에게 "제가 10번 넘게 해 봤는데도 안돼요."라고 따졌다. 순간, 집주인이 입주청소를 하고 바꾼 게 아닐까 싶었다.

 "죄송한데, 저는 그 비밀번호가 마지막이거든요. 혹시 입주 청소하고 집주인이 리셋했을 수도 있으니까 집주인한테 전화해보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 뒤로 비밀번호가 안 맞는다는 전화는 오지 않았다. 예상대로 집주인이 입주청소를 부른 후 비밀번호를 리셋하고 세입자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었다. 여러모로 정말 본인 돈 버는 것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는 집주인이었다. 그 건물 CCTV가 1년째 고장 난 채로 그대로 있고, 집주인이 집 계량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현관 비밀번호도 모르는 것을 보고 집주인이 정말 그냥 장사꾼이구나 했지만 이 정도로 무책임할 줄은 몰랐다. 장사꾼이면 그래도 돈 처리는 철저하겠지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내 뒤에 들어간 세입자도 첫날부터 이런 일을 겪었으니 2년간 불안하겠지 하는 생각에 안쓰러워진다. 



 이 날 나는 '내 집이 없고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집을 빌린다는 것이 이렇게 서러운 일이었나.', '이래서 전세 사는 사람들이 전세금 돌려받지 못할까 봐 보험을 드는 것이었나.', '그래도 설마 진짜 그럴까 했는데 정말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구나.', '이래서 엄마가 전세는 불안하다고 했던 거구나.', '이 아파트에서 나갈 때는 어떻게든 내 집을 사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뭐 일단 보증금은 들어왔고, 더 이상 연락할 일 없으니 이걸로 됐다고 생각했지만 일주일 뒤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내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집주인에게 그런 소리까지 들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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