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레 수필
한 동네에서 20년 하고도 몇 년을 더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는 어린이집부터 초중고를 모두 한 동네에서 거쳤다. 그는 대학교마저 자신의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통학할 수 있는 곳으로 입학했다. 쉽게 말해, 그의 모든 뿌리가 이곳에 있다. 가족, 추억, 친구, 하물며 원수와 트라우마까지도. 그는 그의 두 눈으로 그의 고향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목격하며 자랐고, 친구들과 함께 오래도록 성장했다. 그는 지겹도록 자신의 고향에서 살았기에, 이곳에서 멀리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반대로 자신의 고향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오래 눌러앉고 싶다는 마음 또한 품고 있었다. 애증이었다.
3인칭으로 쓴 나의 소개 글. 정확히 말하자면, 한 동네에서 20년도 넘게 살아온 나의 이야기다.
내가 사는 칠곡 지구는 뭐라고 해야 할까, 내륙에 자리한 섬과 같다. 이곳은 대구에 편입되기 전에는 칠곡군의 한 부분이었지만, 대구에 편입된 이후로도 여전히 칠곡으로 불렸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 또한, 자신이 대구의 어느 지역에 산다고 말하는 대신 칠곡에 산다고 말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개발돼왔기에 여느 번화가처럼 있을 건 다 있고, 그렇지만 조용하고 평화롭기에 사람들은 칠곡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는다. 나의 친구들 또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곳에 남아있으며, 익숙한 공간 모두 이곳에 있다. '모태 거주민'의 시선에서는, 연예인 볼 일 없다는 점 외에는 꽤 살기 좋은 동네다.
그렇기에 되려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자주도 느낀다. 너무 오래 살아버렸으니. 사람이 한 곳에서만 지나치게 오래 살게 되면, 매일같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매일 같은 카페, 매일 같은 산책 코스, 매일 같은 창 너머의 모습. 언제, 어떤 타이밍에 신호등 신호가 바뀌는지 저절로 익힐 만큼 모든 게 지루하리만치 익숙해졌다. 이곳은 내게 호흡하는 일처럼 당연한 공간이다. 더는 새로운 자극이 없었다. 이곳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자주 느낀다.
떠나려는 계획을 수차례 세웠었다. 그러나 모두 실패. 아주 먼 도시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려는 계획은 진작에 실패했고, 지난해 휴학하고 모아둔 돈으로 무작정 상경하려는 계획 또한 여러 사정으로 어그러졌다. 이따금 서울이나 제주로 떠나지 않는다면, 나는 365일 중 대부분을 칠곡에서 지내게 되었다. 영영 칠곡을 떠나지 않는다면, 더는 성장 없이 정체해버린다는 두려움이 오래전에 심어진 탓이었다. 더 큰물에서 놀고 싶었다.
그런데도 요즘은 잘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이곳에 남는 게 좋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근래 들어 자주 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살아서 존재하지만, 나의 뿌리를 두고 무작정 떠난 이후가 두렵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이곳에 있다. 좋아하고 탄성을 자아내는 공간이 팔공산 너머에도 많지만, 내게 평안을 주는 공간은 나의 고향에만 있다. 떠날 마음과 동기는 존재하지만, 떠날 용기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런데도 앞으로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향을 떠날 수도, 떠나지 않을 수도 있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나의 첫 직장이 어디일지 모르는 걸 보면, 그보다도 더한 거주의 문제를 쉬이 짐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최선이었기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