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수필
나의 또래라면 한 번쯤은 <그리스로마신화>라는 만화책을 읽어봤을 테다. 전국 초등학교의 도서관에 꼭 비치되어 있던 권장 도서였으니. 나 또한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에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여름방학이면 도서관의 한구석에 앉아 만화 <삼국지>와 그것을 읽었다. 어린 마음이 이유였을까, 학습 만화를 읽어도 나만의 '최애'를 마음속으로 몰래 만들어두었다. <삼국지>에서는 장비가 나의 그것이었고,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헤라클레스가 나의 그것이었다. 두 인물 모두, 남자라면 좋아해 마지않을 만큼 늠름했고, 강했으니까. 더군다나 키만 큰 약골이었던 나는 더욱 그들을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들의 퇴장은 선명히 기억에 남아 있다.
반대로 가장 싫어하는 인물도 있었다. 빛이 있다면, 당연히 그림자가 있는 원리처럼. <삼국지>에서는 조조,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바로 메두사. 그리 큰 이유도 없었다. 생김새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행실도 영 싫었다. 조조는 내가 응원하던 유비의 라이벌이었고, 메두사는 모두 알다시피 만인의 악인처럼 묘사되었으니, 치기 어린 마음에 어쩌면 그럴 만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메두사는 처음부터 괴물이 아니었다는 사실. 메두사는 그저 외모가 수려한 처녀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미모의 인플루언서로 잘 먹고 잘살고 있을, 그런 예쁜 여자. 그러나 역시 고리타분한 신화의 시대라 그랬던 걸까? 당대에서 여성 인권은 눈 뜨고 찾아볼 수도 없었기에, 메두사는 그녀를 흠모하던 포세이돈에게 납치되어 순결을 잃게 된다. 그것도 포세이돈의 신전이 아닌 아테네의 신전에서. 남들이 자기 집에서 그런 만행을 저질렀으니, 당연히 아테네는 열받을 수밖에.
그러나 아테네는 사건의 주동자인 포세이돈 대신 메두사에게 벌을 내린다. 메두사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피해자가 처벌을 받은 꼴이었다. 그 처벌은 모두 알다시피,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모두 뱀으로 변하고, 눈이 마주치는 이들을 모두 돌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하사(?)한다. 그러다 아테네가 보낸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려 죽는다. 죽는 것도 억울할 텐데, 잘린 목은 아테네의 방패 장식이 되어버린다. 조선 시대 같았으면, 메두사는 깊은 한이 서린 악귀가 되어 백 년이고 천 년이고 무고한 시민들을 괴롭혔을까.
그러나 시대가 어떻고 간에, 억울한 사람이 더욱 고통받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은 것만 같다. 지금도 포세이돈 같은 가해자는 잠깐의, 어쩌면 그보다도 짧은 자숙의 기간을 거친 뒤 떵떵거리며 잘 살 고만 있다. 되려 메두사와 같은 피해자는 숨어 지내며, 트라우마 속에서 가슴 졸이며 살아가고. 사람들의 시선도 다르지 않다. 아테네와 같이 가해자 대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은 수천 년이 지났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다. 시민의 눈에는 여전히 부족해 보이는 각종 사법 판결들, 흐려진 본질에 취해 피해자에게마저 비 난을 쏟아내는 사람들, 피해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각종 법과 정책들. 수많은 요소가 피해자의 대척에 서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메두사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포세이돈은 메두사를 범한 이후로도 잘만 먹고 잘만 살았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죄를 저지르며. 심지어 어느 지역에서는 아주 오래도록 숭상받기까지. 메두사는 현재까지도 괴물로 묘사되어 못된 시선을 감내한다. 내일의 뉴스에서는 또 몇 명의 메두사와 포세이돈이 우리에게 알려질까. 어쩌면 그게 우리의 가족일지도, 우리의 연인일지도, 혹은 나 자신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해가 떠 있지만, 두려움이 밀려온다.